무심천 말없이 흘러만 가매 무심천이라 부르던가 <임병무>
무심천 지명의 유래
우암산(牛巖山)이 청주의 아버지라면 무심천(無心川)은 청주의 어머니이다. 서원문화는 바로 무심천을 젖줄로 하여 피어난 것이고, 보다 넓은 범주의 중원문화는 남한강과 금강을 어머니로 삼았다.
때로는 젖 꼭지가 말라 하천 바닥을 드러내지만 홍수 때가 되면 성난 물살이 밀려와 문화의 전답을 흠뻑 적신다. 청주시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무심천은 천년고도 청주의 영욕을 간직한 채 어제도, 오늘도 까치내(鵲川)로 흘러든다.
" 그 옛날 어느 분이 애 타는 무슨 일로/ 가슴을 부여안고 이 냇가에 호소할 제/ 말없이 흘러만 가매 무심천이라 부르던가// 눈물이 실렸구나 보태어 흐르누나/ 원망이 잠겼구나 흐르는 듯 맺혀 있어/ 지금도 여흘 여흘이 목이 매어 우느나"
노산 이은상의 시 '무심천을 지나가며' 에서 보듯 냇물은 인간사의 숱한 사연을 쓸어 내리며 행로를 재촉한다. ꡐ무심ꡑ이라는 말이 의미하듯 사바세계의 시시콜콜한 사연들은 흘러가는 냇물처럼 부질없는 것이요, 한번 흘러가면 돌아올 수 없는 것이 인생살이다.
이런 면에서 봤을 때 '무심천' 지명은 상당히 철학적 의미를 내포한다. 수질오염에서 깨어나고 있는 무심천은 예나 지금이나 유유히 흐르며 문화를 일으키고 추억을 수놓는다. 철부지 하동(河童)들이 피라미떼를 쫓고 물장구를 치며, 한 겨울이면 물을 가두어 놓고 스케이트를 타던 추억의 편린들이 유년의 영사막에서 꿈틀거린다.
아련한 기억들이 둥실 떠다니는 무심천. 그러나 '무심천' 이라는 내의 이름이 언제부터 그렇게 불렸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명이란 오랜 세월을 불특정 다수인에 의해 불려지다가 굳어지는 게 통례다.
무심천 이름의 보다 직접적인 근거는 고려중기의 고승,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1178~1234)의 사상과 행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눌(知訥)에 이어 선종(禪宗)의 법맥을 이은 혜심은 한때 무심천변 사뇌사에서 여름 수련회격인 하안거(夏安居)를 하였는데 그가 바로 유명한 ꡐ무심론자ꡑ였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는 마음가짐에 있어 무엇보다 '무심' 을 중히 여긴 것이니 이 무심이야말로 참다운 마음이라 한다. <국사편찬위 간, 한국사 7권>
"무심이라 함은 마음을 허공처럼 비우게 하여 놓은 상태이지만 비우게 한다는 그 마음도 없애야 하며, 다시 나아가서 비우게 한다는 그 마음을 없애는 그것조차도 또한 없애야 한다." 다소 난해한 법어이지만 무심의 에스컬레이터 현상을 읽을 수 있다. 이로 보면 공식명칭은 '대교천' 이라 했고 별칭을 '무심천' 으로 했음직도 하다. 또한 고려시대에 무심천으로 부르다가 대교천으로 바뀌었고 5백년이 지나 다시 무심천으로 환원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을 해 볼만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설에 불과한 것이다.
무심천의 발원지
무심천 발원지는 청원군 낭성면 추정리와 가덕면 수곡리, 내암리 일대이다. 충북도지에는 무심천의 발원지를 남일면과 낭성면 경계에 있는 선도산(仙到山)이라고 적고 있는데 실제와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어 좀 더 조사해볼 과제다. 상당산성에서 발원하여 선도산 근처를 감도는 냇물은 운암~어암을 지나 괴산 목도(牧渡)를 거쳐 달천(達川)으로 흘러드는 남한강의 지류이기 때문이다.
추정리 산꼭대기에 달라붙은 마을을 자연지명으로 '산정말' 이라고 한다. 산꼭대기인 산정(山頂)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마을 어귀에는 작은 옹달샘이 있는데 이곳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벽계수와 합쳐져 무심천의 원류가 된다. 가덕면 내암리 일대를 흐르는 벽계수는 물이 맑기로 이름나 피서객들이 종종 찾아드는 곳이다. 추정리와 내암리의 냇물은 계곡을 솟구쳐 흐르다가 금거리에서 서로 합친다. 이곳서 무심천은 물길의 방향을 서쪽으로 돌려 문의면 남계리에 이르고 다시 고개를 꺾어 북류한다. 여기까지 흐르는 무심천 연변에는 문주리, 은행리 부근과 남계리, 상대리 부근에 하곡(河谷) 평지가 발달해 있으나 토양이 비옥하지 못하다.
남계리에서 북류하는 무심천은 하상(河床)이 완만하고 넓으며 상류에서 운반된 모래가 바닥을 높여 본격적인 천정천(天井川)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고은 삼거리에서 북쪽으로 펼쳐진 대머리 평야는 토질이 비교적 비옥하고 물꼬대기가 좋아 예로부터 살기 좋은 마을로 소문나 있다. 고은리, 신송리, 효촌리 일대 무심천 변에는 오창 뜰과 거의 맞먹는 산간분지가 잇따라 펼쳐져 청원군 일대의 유수한 곡창지대로 손꼽힌다.
▲ 무심천 물길 옆웅로 비옥한 농지가 조성돼 유수한 곡창지대를 이루었다. | ||
무심천의 작은 지류 하나는 분평동, 산남동에서 발원하고 미평동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있는데 실개천에 불과하다. 두 하천은 분평교(속칭 분동다리)아래서 합쳐져 영운동 원마루 앞서 무심천 본류와 합친다. 금천동에서 내려오는 '쇠내' 는 꽃다리 부근서 본류와 몸을 섞는다. 결국 큰 가람(강)도 시작은 이처럼 한 방울의 물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임병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