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중생의 죽음을 추모하며>

 

한 소녀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영화를 보았다. 난간에 올라선 소녀의 얼굴에 비친 울렁거림은 무엇이었을까. 소녀가 날아갈 듯 몸을 던지는 뒷모습에 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바닥에 엎드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소녀의 등과 팔, 다리를 부감하듯이 들여다보는 카메라가 현장을 목격한 내 시선인 것만 같았다. 어떤 사연일까, 비극을 짐작하면서도 더 알고 싶었다. 땅을 누를 무게도 없는 것처럼 가라앉은 소녀가 한없이 가여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11번째 생일을 맞은 소녀. 온 가족이 한껏 흥에 겨워 소녀의 생일 파티를 즐기지만, 정작 주인공은 즐겁지 않았다. 가족들이 춤을 추며 사진을 찍는 사이, 베란다로 천천히 걸어가 난간에 걸터앉는 소녀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뛰어내렸다. 소녀의 사건 이후, 가족 모두 큰 상실감에 빠지지만, 가족의 가장인 아버지는 의연히 대처하며 남은 가족인 아내와 딸, 손주들을 보살핌에 여념이 없었다. 한편 경찰과 사회복지사는 소녀의 자살 원인에 대해 수사를 착수하지만, 가족 모두 그저 사고였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시작된 한 가족의 은밀한 비밀이 낱낱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허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오창의 어느 아파트 화단에서 추락해 숨진 두 여중생의 기사를 읽었다. 자신의 의붓딸을 학대하고 딸의 친구까지 성폭행한 계부가 사건의 가해자였다. 두 친구는 웃고 떠들며 삶의 근심조차 모를 나이에 겪지 말아야 할 너무나 참혹한 일을 겪었다. 기사를 읽어 내려가는 순간에도 손발이 떨리는 사건이었다. 여린 심장이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을까. 지켜낼 책임이 있었다고 느끼는 어른이라면 기사를 읽는 내내 먹먹함에 짓눌렸을 것이다.

두 여중생을 보호해 줄 어른은 없었다. 얼마나 더 간절하게 도움을 청해야 했을까. 검찰은 가해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지 않고 계속 재수사를 지휘했다고 한다. 죄책감에 벌벌 떨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해야 할 가해자가 버젓이 주변을 맴돈다고 생각하면 나라도 온몸이 경직되고 숨을 쉴 수조차 없을 것 같았다. 두 여중생은 피해자라는 이름이 가해자가 두려워 숨어야 하는 존재인 줄 알지 않았을까. 분노해도 모자랄 상황에 이중삼중의 고통은 아마도 어른에 대한 불신으로 남았을지 모른다. 긴급조치를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고 심리적 지원을 우선 했더라면 안타까운 죽음까지는 막을 수 있었으리라 본다. 절차만 따지다 눈앞에서 살려 달라고 허우적거리는 손을 뿌리친 격이었다.

피해 사실을 밝히기도 어린 나이에 너무나 어려웠을 것이다. 공포와 당혹감, 배신감과 수치심이 뒤섞인 감정을 무어라 해야 할까. 목 놓아 소리치며 괴로운 심경을 쏟아낼 일에 얼마나 주저했을지. 학교 내 상담 기관에서 성폭력과 아동학대 관련 상담을 받았음에도 교육 당국은 학생들이 숨지고 나서야 관련 피해가 있었음을 인지했다는 사실에 목구멍을 타고 뜨거운 것이 차올랐다. 누군가의 친구일지 모를 두 여중생의 사건을 접한 또래 학생들의 반응이 궁금하면서도 차마 물을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부끄럽기도 했다. 안일한 대처였다. 설마 하는 미련한 자만심이 부른 결과였다. 자살 사건이 아닌 사회의 무관심이 낳은 타살이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명백한 사실이었다. 두 여중생의 사건은 가해자로 둔갑한 가족의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기도 했지만 무능한 어른과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영화에서 소녀의 아버지는 가족 위에 군림하는 지배자였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능력 미달의 가장이자 비열한 사회 계층이었다. 딸과 손자들의 양육 수당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가족 내에서만은 어른 행세를 했다. 아버지는 돈이 필요하면 딸들을 성적인 학대의 대상으로 내몰았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은 아버지를 또다시 경제권 있는 가장으로 서게 했다. 소녀의 어머니도, 아이가 둘이나 있는 큰 언니도 딸과 동생을 위해 어떤 손도 써 주지 않았다. 소녀는 스스로 삶에서 내려오기로 했다. 더 이상 자신은 인간으로서 존엄하지 않다는 사실, 자신을 보호해 줄 어른이 없다는 사실이 소녀를 체념하게 했을 것이다. 어쩌면 소녀는 자신을 위협하는 가족을, 비겁한 어른을 고발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순간, 카메라를 응시하는 소녀의 얼굴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무표정은 무참한 심정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었다. 영화가 재현하는 현실을 언제까지 담담하게 지켜볼 것인가. 피어나지 못하고 져버린 두 여중생의 죽음이 모두의 기억에서 잊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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