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가 왔어요, 달고 아삭한 사과가 왔어요.” 꽃 보따리 풀어놓는 춘삼월 바람에 사과 팔러 나온 장사꾼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실려 온다. 확성기를 통과해 나오는 소리는 모호하면서 울림이 좋다. 그 울림이 기억에 파장을 일으킨다. 파장은 흘러가 버린 어떤 날로 나를 되돌려 준다. 그날의 온도, 공기의 선율, 바람의 색을 떠올리게 하고 시간을 멈추고 싶었던 장면을 선명하게 한다.

십오 년 전, 아들이 두 돌을 갓 넘긴 시절이 춘삼월이었다. 사람 꼴 되느라 그런다지만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아들의 잦은 병치레는 부풀어 오르는 커튼 밖 세상을 들춰 볼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며칠을 앓던 아들 곁에서 나는 쪽잠이 들었나 보다. 이름 모를 나라의 언어처럼 모호한 소리에 무거운 눈을 뜨지 않을 수 없었다. 내복이 후줄근하도록 땀에 젖은 아들은 커튼 사이로 들리는 소리에 반응하듯 “엄마 따곽, 따곽 뚜세요” 하는 것이었다. 물에 퉁퉁 부은 허연 소리로 애달프게만 하던 아들이 내뱉은 말은, 금싸라기처럼 명명한 소리였다.

나는 무릎을 꿇고 아들과 함께 창문에 매달렸다. 볕이 수그러지는 아파트 주차장에서 들리는 소리가 궁금해서였다. “사과 사려, 사과, 맛 좋고 때깔 좋은 사과.” 별것 아닌 단어마다 끝 음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사과 장사의 목소리는 들을수록 맛이 있는 음색이었다. 두 돌배기가 보여준 그토록 충천한 사기에 어떤 엄마가 못 들은 척 할 수 있을까. 아들을 등에 업고 그 위로 철 지난 외투를 덮었다. 텅 빈 겨울 같던 집을 빠져나와 좁은 복도에 서자 봄과 겨울의 중간쯤에 도착한 듯했다. 잔잔한 공기를 밟고 달리는 발걸음은 얼마나 가볍던지.

“맛있게 드세요” 하며 건네는 사과 봉지를 내가 더 고맙게 받아 들었다. 사과 장사는 포대기에 싸인 아들에게 사과 하나를 더 쥐여주었던가 보다. 볕이 희끄무레한 초저녁인데도 춥지 않았다. 사방이 봄이었다. 향기 그윽한 차 한잔처럼 동그랗게 고인 봄 하늘이 그렇게 머리 위까지 내려와 있을 줄이야. 아파트 화단의 꽃나무들은 상냥한 흰색으로 수줍은 노란색으로 장난기 어린 자주색으로 만개해 있었다. 작고 나풀나풀한 꽃잎은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는 환영을 보여주고 때로는 덩어리로 뭉쳐지며 몽환적인 풍경을 만들었다. 오색찬란하지 않아도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꽃나무 아래에 서니 벌어진 꽃마다 날아다니는 벌들의 노동요가 시끌시끌하게 들렸다. 나뭇가지에 앉아 꽃향기의 품평회라도 하는 양 새들도 왁자그르르 떠들어 댔다. 등에 업은 아들만 조용하다 싶어 목을 빼고 살폈다. 덤으로 얻은 사과를 움켜쥐고 어떻게든 먹어보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태어나 두 번째 맞는 봄이 얼마나 향긋하고 달콤했을까.

아들이 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춘삼월에 들리는 사과 장사의 알림음은 잊고 있던 그 날의 기억을 듣고 보고 만지고 맡아보게 하는 감동의 소리로 남아있다. 엄마가 되어 마음을 다한다고 하지만 미숙했고, 잘한다고 하지만 엄살이 많았던 안타까운 시간을 그리워지게 한다. 아픈 것이 무엇인지 아는 듯 찡그린 까만 눈, 조급하게 울리는 비상등처럼 달아오른 작은 이마, 빠져나가는 열에 흠뻑 젖은 손바닥 만 한 등, 엄마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따곽, 따곽” 을 노래하던 꽃잎 같은 입술이 담긴 애달픈 마음의 사진을 꺼내 보게 만든다. 그리고 평온한 마음으로 바라본 아름답게 흐드러진 춘삼월의 절경 속으로 나를 데려다 놓는다.

사과 장사의 울림이 꽃바람처럼 아득하게 흩어진다. 손에 들린 사과도 그날의 사과처럼 입맛 돋우는 맛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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