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하우스 내 가설건축물 농가, 별도 숙소 마련해야 ‘한숨’
고용노동부, ‘외국인 근로자 주거시설 강화책’ 6개월 유예
농민단체 “농촌 현장 실정과는 거리가 먼 탁상행정” 분노

외국인 근로자가 거주 중인 음성군 생극면 소재 채소농장 '하우스 내 가설건축물' 임시시설 내부 모습. 1인 1실을 사용한다.
외국인 근로자가 거주 중인 음성군 생극면 소재 채소농장 '하우스 내 가설건축물' 임시시설 내부 모습. 1인 1실을 사용한다.(사진제공=음성타임즈)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안전한 근로환경을 제공하겠다는 정부의 조치가 심각한 농촌 일손부족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는 분노가 터져 나오고 있다.

“농촌 현장 실정과는 거리가 먼 탁상행정의 전형”이라는 지적과 함께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잇따르고 있다.

앞서 지난해 말 고용노동부는 외국인 근로자 주거시설 강화 방침을 정하고, 올해 1월 1일부터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조립식패널 등을 숙소로 제공하는 경우 외국인 고용허가를 불허한다고 밝혔다.

유예기간도 없이 기습적으로 발표된 정부 정책으로 인해 비닐하우스 내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고 있는 농가는 외국인 근로자 신규 배정신청에서 거절을 당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등 반발이 커져 나갔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이달 2일부터 숙소 개선을 전제로 재고용 허가신청 시 검토를 거쳐 허가받은 경우 6개월간의 이행기간을 부여한다며 방침을 일부 변경했다.

이행기간은 3월 2일부터 9월 1일까지이고, 숙소 신축에 한해서는 6개월 범위 내에서 추가 연장이 가능하다.(최대 1년)

변경 내용에 따르면 비닐하우스 내 가설 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는 농가주는 6개월 이내에 농지 밖에 합법적인 인허가를 받은 별도의 건축물을 숙소로 마련하든지 최장 1년 이내에 신축해야 한다.

기존의 비닐하우스 내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사용하는 농가주는 6개월 이후부터는 재고용허가 신청 시, 고용허가서를 발급받을 수 없다.

이 때문에 해당 농가들은 새로운 땅을 매입해 숙소를 지어야 하는 또 다른 부담을 떠안게 됐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정책 철회를 요구하는 글이 등장하고 농민단체들이 “규제만이 능사가 아니다. 일방적이고 농촌 어려움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다.

최범진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대외협력실장은 농민신문을 통해 “결국 기존 숙소를 활용하지 말라는 것인데, 숙소를 신축할 경우 소농은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이 들 뿐 아니라 농지 전용으로 행정 부담도 커진다”면서 “필요한 시설이 갖춰진 숙소는 활용할 수 있도록 관계부처가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농촌의 고령화, 일손부족 문제 무시한 일방적인 정책”
이와 관련, 지난 5일 음성타임즈의 현장 취재에서는 농촌 현실을 무시한 일방적인 정부의 규제 조치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이날 해당 농가들은 정부의 방침에 대해 “농촌의 고령화, 일손부족 문제 등을 고려하지 않은 현실성 없는 정책”이라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생극농협 채소작목회 김근수 회장은 “유예기간도 없이 갑자기 현재 기숙사를 불법으로 지정해 (외국인) 근로자를 받을 수 없게 됐다”면서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E9(체류비자) 동남아시아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었으나, 올해 1월부터는 가설건축물 문제로 고용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김 회장은 “비닐하우스 내 임시 숙소지만 화재경보기, 소화기, 화장실, 냉난방, 주방시설 등 편의 시설을 모두 갖추고 있었고, 매년 고용노동부로부터 실사 점검을 받아 왔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B씨는 “지역에 있는 주택을 임대해 보려 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주민들의 반응이 여의치 않고, 원룸 등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출퇴근 문제 등 농촌의 작업 특성에 맞출 수 없는 상태”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후 6개월의 유예기간이 주어지는 등 방침이 일부 변경됐으나, 임시 한숨돌리기에 그칠 뿐 근본적인 해결책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농민들의 주장이다.

 

지난 5일 진행된 음성타임즈의 현장취재에서 농촌의 현실을 토로하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는 김근수 회장(왼쪽), 이날 음성군의회 조천희 의원은 "단계적인 양성화 방안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사진제공=음성타임즈)
지난 5일 진행된 음성타임즈의 현장취재에서 농촌의 현실을 토로하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는 김근수 회장(왼쪽), 이날 음성군의회 조천희 의원은 "단계적인 양성화 방안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사진제공=음성타임즈)

조천희 의원 “단계적인 양성화 방안 찾아내야” 
현장을 함께 찾았던 음성군의회 조천희 의원은 먼저 “현재 농촌인력의 대부분이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특히 채소, 버섯 재배 등 농가에서는 외국인 근로자를 많이 쓰고 있다”며 심각한 농촌의 인력부족 문제를 꺼내 들었다.

조천희 의원은 “지금까지는 (하우스 내 가설건축물을) 근로자 임시 숙소로 인정을 해 주어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할 수 있었다”면서 “이것은 음성군만이 아니라 전국적 문제로, 농가의 상당한 고충이 뒤따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정부 차원에서)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조건으로 기존의 비닐하우스 내 가설건축물만이라도 농지전용허가를 내주어 단계적으로 적법성을 갖추도록 조치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조 의원은 “과거 불법축사를 3년여에 걸쳐 적법성을 갖춰 양성화 시킨 경우도 있다”면서 “다만  외국인 고용과 관계없는 비닐하우스 내 가설건축물 사용 농가와의 형평성 문제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의원은 “일부 악덕 농가주로 인해 외국인 근로자들이 열악한 거주환경에 내몰리는 것은 문제이다. 그러나 소방법 및 건축법 등 요건을 충족시키는 비닐하우스 내 가설건축물에 대해서는 한시적인 별도의 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음성군 “할 수 있는 조치, 지극히 제한적” 난감

정부의 방침에 따라야 하는 음성군도 난감한 입장이다.

음성군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농가의 딱한 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음성군이 할 수 있는 조치는 지극히 제한적”이라며 “현재 국토부, 농식품부, 충북도가 긴밀히 협의를 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음성군의 조사에 의하면 관내 E9(체류비자)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는 농가수는 지난해 말 기준 62개 농가로 집계됐다. 그러나 실제 농촌의 외국인 고용실태와 비교하면 이 수치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고령화로 인한 일손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농촌,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제 그나마 이를 지탱하고 있었던 외국인 근로자들의 고용마저 어렵게 되면서, 농민들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한편 지난해 말 경기도 포천의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외국인 근로자가 사망하자 정부는 올해부터 비닐하우스 내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는 농가엔 고용허가를 내주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운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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