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낭성주민, “송전탑건설 주민 의견수렴 비민주적이다” 주장
보은지역, 송전선로 놓고 주민들 간 갈등 심화…법적 다툼도 예상

'청주~보은 송전탑 반대 낭성면주민투쟁위원회'는 2일 궐기대회를 열고 송전탑 사업의 전면 백지화를 주장했다.
'초정-보은 송전탑 반대 낭성면주민투쟁위원회'는 2일 궐기대회를 열고 송전탑 사업의 전면 백지화를 주장했다.

 

한국전력공사(한전) 충북강원건설지사가 추진하고 있는 초정-보은 간 송전탑건설 사업을 두고 한전이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의견을 수렴했다며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청주시 낭성지역 주민들은 송전선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한전 측이 주민들의 의견을 철저히 무시했고, 민주적인 의견수렴 과정이 없었다며 사업의 전면 백지화를 주장하고 있다. 또 보은지역 주민들은 당초 계획된 선로가 비전문가들에 의해 변경, 뒤통수를 맞았다며 원안대로 다시 변경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 간의 갈등이 심화, 법적 분쟁도 예상되고 있다.

초정-보은 간 송전탑건설 사업은 한전 충북강원건설지사가 추진하는 국책사업으로 청주북부지역과 보은지역의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목적으로 한다. 청주 초정변전소~보은 삼승변전소 44㎞구간에 101개의 154㎸급 고압 송전탑을 건설하는 것으로 예산은 500억 원 규모다. 이 사업은 2018년 시작됐으며 2023년 4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지역은 청주의 경우, 미원면 화창~낭성면 인경~문박~귀래~호정~관정2~추정3리로 총 10개 마을이다. 보은지역은 내북면 도원~법주~신궁~수한면 산척~교암~성리~소계~묘서~거현~광촌~삼승면 선곡리 등 총 20개 마을이다.

궐기대회에서 낭성면 주민이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내 권한 위임한다고?"

한전은 송전탑을 건설하기 전에 주민과 전문가들로 구성된 입지선정위원회를 구성, 부지(노선)를 선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초정-보은 간 송전탑건설 사업에도 마을대표, 이장협의회장, 지방자치단체의원, 전기전문가, 교수 등 27명이 입지선정위원으로 선정,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작 마을 주민들은 “입지선정위원이 누구인지 전혀 몰랐다”고 강조하고 있다. 임성재 초정-보은송전탑반대낭성면주민투쟁위원회(낭성면 주민투쟁위원회) 공동대표는 “입지선정위원은 각계 전문가와 환경단체, 주민대표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전은 이번 사업을 하면서 환경단체는 아예 섭외도 하지 않았고 낭성주민은 이장협의회장 1명만 참여토록 했다. 전문가들은 누구인지 공개하지도 않았다”며 “주민대표와 지자체에서 참여한 13명 이외에 나머지는 누구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한전은 낭성면 주민들에게 전혀 알리지 않고 사업을 추진했다. 몇몇 이장과 몇몇 주민들과 협의해 놓고 낭성면 전체 주민과 협의한 것처럼 말했다”며 “송전선로를 계획하려면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해야 하는데 그런 절차들이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낭성지역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300미터 안에는 인경·문박·호정리 주민 300여 가구, 500여명이 거주하고 있음에도 이들의 의견수렴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

이에 대해 한전 충북강원건설지사 한 관계자는 “사실 예전에는 송전선로를 숨기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2009년부터는 입지선정위원회를 구성해 송전선로를 결정하고 있다”며 “입지선정위원회를 1년 동안 운영했다. 시나 군에 숨기지 않고 다 공개했다”고 말했다.

김문황 낭성면 주민투쟁위원회 공동대표가 궐기대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김문황 낭성면 주민투쟁위원회 공동대표가 궐기대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한전 측이 낭성면 이장에게 보냈다는 공문.
한전 측이 낭성면 이장들에게 보냈다는 공문.(낭성면 주민투쟁위원회 제공)

 

임성재 공동대표에 이어 김문황 낭성면 주민투쟁위원회 공동대표도 비민주적인 주민의견 수렴과정을 지적했다. 김 공동대표는 “한전이 주민의견을 수렴한다며 각 마을 이장들에게 공문을 보냈다. 공문 내용은 마을주민 5명을 마을의 대표로 선임해달라는 것이었다. 이 5명에게 한전 충북강원건설지사와 협의 권한을 위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주민들은 5명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위임한 적도 없다”며 “한전은 이 5명의 의견이 마을 전체 의견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한전 측은 “모든 주민을 다 만나서 할 수는 없다. 각 마을마다 5명의 주민대표를 선임한 것은 한전 내규에 의한 것이다”라고 전했다.

보은군 '수한면 송전노선변경반대투장위원회'가 지난해 6월 보은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압 송전탑건립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사진 뉴시스)
보은군 '수한면 송전노선변경반대투장위원회'가 지난해 6월 보은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압 송전탑건립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사진 뉴시스)

 

송전탑 송전선로 두고 주민들간 갈등 

보은지역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당초 입지선정위원들이 결정한 송전선로 노선을 주민을 대표한다는 ‘수한면 송전선로 입지후보 경과지 대책위원회’가 주도해 변경했고, 이로 인해 주민들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김승종 송전선로 변경 반대 투쟁위원장은 “입지선정위원회가 결정한 노선을 반대하는 이들과 각 마을 4~5인이 모여 수한면 송전선로 입지후보 경과지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노선을 다시 정했다. 사전에 아무런 협의도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격도 없는 대책위원회’가 노선을 바꿨다”며 “비민주적인 행태”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작 변경된 노선에 가까이 사는 주민들은 이러한 사실도 모르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았다. 변경 안은 완만했던 원안과는 다르게 크게 도는 형태로 바뀌었고 마을과 초등학교 바로 옆을 지나간다. 학교와 송전탑과의 거리는 320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특히 변경된 노선으로 송전탑 설치가 추진되면 9~10개의 송전탑이 수한면 교암리를 감싸게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송전선로 노선변경을 주장했던 ‘수한면 송전선로 입지후보 경과지 대책위원회(송전선로대책위)’ 이문섭 위원장은 “각 마을주민들이 원하는 노선을 몇 개월에 걸쳐서 논의했고 투표를 해서 결정한 것이다. 면민들이 심의한 결과를 한전에 통보했다. 한전이 이것을 검토한 후 결정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입지선정위원회가 정한 송전선로 노선(A~B, 검정색 선)이 ‘수한면 송전선로 입지후보 경과지 대책위원회'의 요구로 노선(분홍색)이 바뀌었다.(송전선로 변경 반대 투쟁위원회 제공)
입지선정위원회가 정한 송전선로 노선(A~B, 검정색 선)이 ‘수한면 송전선로 입지후보 경과지 대책위원회'의 요구(분홍색)로 바뀌었다.(송전선로 변경 반대 투쟁위원회 제공)

 

마을 대표 5인 어떻게 뽑았나

문제는 각 마을을 대표한다는 5인이 어떻게 구성되었느냐는 점이다. 이에 대해 이문섭 위원장은 “한전에서 각 마을 대표 5인을 선정해 달라고 해서 마을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뽑았다. 주로 이장, 지도자, 부녀회장, 노인회장, 노인회 총무 이렇게 5명이 선정됐다. 일부에서는 마을회의도 안 거치고 이장이 그냥 뽑은 곳도 있는 것으로 들었다. 그래도 어쨌든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한 것이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주민들의 위임장도 다 갖고 있다. 이장을 믿지 않으면 도대체 누굴 믿으란 말인가. 이장을 원망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문제제기를 하려면 진작 했어야 했다. 이미 다 끝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보은지역의 송전선로는 교암리에서 90도 가까이 선로를 변경해 발산리 인근에 도달해 다시 90도를 꺾어 보은읍 지산리와 수한면 묘서리와 거현리 마을경계선을 타고 삼승면 우진리에 도달하는 선로로 확정됐다. 또 한전에서는 당초 선로가 지나는 마을에 총10억 원의 마을발전기금을 출연할 계획이었으나 송전선로대책위 요구에 따라 41억 원의 마을발전기금을 출연하기로 최종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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