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상태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 이성배
  • 승인 2021.01.11 09: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혹한의 추위다. 쌓인 눈은 녹지 않고 찬바람이 옷깃을 더 여미게 한다. 지난 몇 해 큰 추위가 없었기 때문에 더 춥게 느껴지는 것 같다. 게다가 어려운 상황이 마음까지 얇게 했으니 설상가상이다. 무심코 ‘춥다’고 내뱉은 말 이면에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좋았던 시절의 추억, 생활에 대한 염려, 미래에 대한 걱정 등을 마음 깊은 곳에서 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연신 ‘춥다’고 말하는 사람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살펴보게 되는 요즘이다.

쌓인 눈이 쉽사리 녹지 않던 유년의 겨울. 긴 겨울이 지루했던 동네 형들은 참새를 잡아보겠다며 잔가지가 많은 긴 나뭇가지를 잘라 눈이 무릎까지 빠지는 들판으로 의기양양 달려갔다. 그러나 동네 형들은 동태 몰골을 하고 빈손으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아랫목에서 몸을 녹여 입술이 먼저 녹은 형들은 “아깝다.”고 했다. “잡을 뻔했다.”고 했다.

딱 한 번 그런 형들을 따라갔다. 처음에는 제법 진지하게 고양이 흉내를 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참을성이 바닥나자 소리를 지르고 후리채를 아무 곳에나 내려쳤다. 서로 후리채를 휘둘러보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뒹굴고 나중에는 아예 눈밭을 뛰어다니며 놀았다. 왜 형들이 동태가 되었는지 알게 된 뒤로 동네 형들의 무용담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유년의 겨울처럼 추운, 그러나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이 많아도 걸림돌이 많은 이번 겨울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정치도 국회도 검찰도 언론도 모두 꽁꽁 얼어버린 것 같다. 살짝 뒤집어 보면 용암처럼 뜨겁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권력과 자본을 쟁취하려는 고지전처럼 보인다. 설마 그들이 그렇게 사랑하는 국민이 안중에도 없을 리 없겠지만 그렇게 보이는 것이 문제다. 춥다.

정부는 출범 초기 기대와 달리 어떤 비전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나라를 만들겠다는 설명과 설득이 부족한 것 같다. 사사건건 약한 곳을 찾으려는 언론의 십자포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은 지난해를 힘들게 버텨준 국민에겐 실망스럽다. 여당은 애초 180석이 넘는 의석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고 그런 힘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하겠다는 고민도 부족해 보인다. 자타 제1 야당은 늘 하던 대로 대안은 없고 발목 잡기에 여념이 없어 보인다. 게다가 제법 아프게 의미가 고인 말들–단식, 투쟁, 독재, 탄핵 등-을 정략적으로 해체하고 있는 것 같아 매우 우려스럽다.

요즘 제일 뜨거워 보이는 검찰은 힘이 세도 너무 세다. ‘검찰개혁’ 구호는 무성한데 무언가 어설프다. 대한민국 검찰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칼을 가진 집단이다. 그런데 검찰에 출석할 일이 없는 대다수 국민에게 검찰이 가진 칼이 왜 무섭고 왜 함부로 휘둘러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절박한 설명이 없다. 게다가 앞에 나서는 놈들은 모두 예리하게 베어버리겠다는 듯 한 검찰의 서슬에 누구도 앞에 나서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것처럼 보인다.

춥다. 마음이 시리다. 땅이 너무 꽁꽁 얼어서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세찬 눈보라를 맞으며 비탈에 선 겨울나무에게 나무의 언어로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사람들과 물리적 거리를 두는 일, 집 앞에 쌓인 눈을 쓸다가 비질을 멈추지 않고 골목 안쪽까지 눈을 쓰는 일, 마스크를 버릴 때 끈을 잘라서 버리는 일, 바뀐 재활용 방법에 따라 플라스틱 제품의 라벨을 깨끗하게 제거하는 일, 뒤에서 오는 사람을 발견하고 잠시 무거운 출입문 손잡이를 잡고 있는 일. 정체 심한 퇴근길, 애타게 방향지시등을 켜고 있는 옆 차로의 운전자에게 잠시 공간을 내어 주는 일…….

담담하게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에 하면서 꽃 피는 봄을 마음껏 맞고 싶다는 희망이 추위를 서서히 녹였으면 좋겠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미국 의회에 난입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우리 대한민국이, 우리 국민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방증(傍證)에 새삼 놀랐다. 부산에서 출발한 열차가 한반도를 통과해 유럽까지 달리는 봄날이 오면 그리웠던 사람들을 불러 그 기차를 타고 싶다. 다만, 봄이 올 때까지 최선을 다해 각자 할 수 있는 일들을 행동에 옮기라는 것이 비탈에 선 겨울나무의 무거운 대답일지도 모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