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은의 시선]무서운 영화가 보여준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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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의 시선]무서운 영화가 보여준 불편한 진실
  • 이재은
  • 승인 2020.12.21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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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척이다 잠잘 때를 놓쳐 버렸다. 자정이 넘어 볼거리를 찾았다. 리모컨을 누르는 손가락은 건성이었다. 어차피 정규 프로그램은 없을 테고 두 번, 세 번째 보는 프로그램들만 깜깜한 시간을 메우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깔깔거리며 보던 프로그램도 재탕, 삼 탕이면 아는 만큼 재미가 없는 법이다. 식상함이 주는 권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통달한 기분이랄까. 그만큼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

낮에 보던 뉴스도 마찬가지였다. 점잖은 자세로 불안한 기사를 읽어주는 아나운서의 모습이 보일 때면 나도 모르게 채널을 빨리 바꾸게 되었다. 뉴스마저 재방송을 보는 것처럼 산뜻하지 않은 탓이라 여겼다. 코로나19로 여전히 상황은 엄중하고 확진자수는 폭발적인 증가 추세다. 개인위생, 거리두기, 모임이나 외출 자제라는 문구가 이제는 예사로 들릴 지경이었다. 이런 문구에도 경각심보다는 한숨이 먼저다. 위험에 나는 얼마나 무뎌진 것일까. 어쩌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 매번 갖게 되는 버거운 실망감에서 회피하고 싶은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채널이 그나마 실속 있었다. 본 적 있는 영화라도 한밤중에 보면 달리 보이고 홀로 보는 맛도 또 다르다. 때로는 보고 싶었던 영화를 생각지 않게 만나기도 하니 말이다. 기대 없이 채널을 기웃거리다 횡재한 밤이었다. ‘M 나이트 샤밀란’ 감독의 공포 영화 ‘빌리지(VILLAGE)’에 빠져들고 있었다. 영화는 두려움, 공포가 아닌 예상외의 단어를 내 머리에 부려 놓았다.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인 마을은 소수의 사람이 모여 살고 있다. 작은 마을 사람들의 복장과 생활 방식이 마치 중세의 어느 시간대를 보는 듯했다. 겉으로 보기에 완벽할 정도로 평화롭고 목가적인 마을이지만 주민들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영화가 주는 단서로 눈치챌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입에 올리지 말아야 할 말, 보아서는 안 되는 식물, 하면 안 되는 행동 등 금기 사항이 많았다. 지켜야 할 규칙도 너무나 확실했다. 그들은 마을을 벗어나지 않았고 누구도 마을 밖으로 관심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젊은이들에게는 반항심이나 무모함이 없었고 아이들에게는 호기심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마을의 모든 일은 원로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어른들이 가르치고 일러주는 대로 젊은 세대는 살아가게 되어 있었다. 마을의 정서는 안정과 균형보다는 순종과 복종에만 매달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던 대로, 살던 대로, 전통대로 따르지 않으면 마을 사람들의 삶은 파괴되고 말 것이라는 억지가 불안과 초조를 일으켰다. 바깥세상으로 나아가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그저 더 나빠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그들의 삶은 철저히 제자리를 고수했고 고립을 자처한 듯 무미건조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반전은 영화에 기대감을 준다. 영화 ‘빌리지’의 고리타분한 마을에도 사랑하는 젊은 남녀가 등장한다. 치명적인 상처로 죽을 지경에 놓인 남자를 살리려는 여자의 결심으로 마을은 변화의 갈림길에 선다. 바깥세상으로 치료제를 찾아 나서겠다는 그녀의 거침없는 진심은 용기였고 사랑이었다. 원로원은 고민한다. 그동안 마을을 지켜온 질서가 물거품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영원히 살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세상은 사랑의 힘으로 움직이고 미래는 열정을 지닌 후손에게 있다는 것도 말이다. 원로원은 희망을 향해 달려 나갈 여자를 위해, 젊은 세대를 위해 길을 열어 주기로 한다. 옳고 정당한 일이라면 언제든 위험을 무릎 쓸 용의가 있다는 현명함과 후손을 위해서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면 떳떳할 수 없다는 어른으로서의 사명감도 깨닫는다.

‘떳떳함’이라는 단어에서 나는 갑자기 생각이 멈춰 섰다, 얼마 전 수학능력시험을 어렵게 치렀다. 어느 때보다 중요한 고3이라는 일 년을 어찌 보냈을지 안타깝고 대견한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초중고 모든 학생은 여전히 온라인 수업에 매달려 있다. 그들에게 선택지는 없다. 어른들이 그때그때 열어 놓는 길로 들어설 뿐이다. 학교가 얼마나 즐거운 곳인지, 친구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새삼 느꼈을 모든 학생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견디며 생계를 위한 활동도 멈출 수 없는 상황이지만 어느 때보다 어른들의 행동은 신중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그른 것을 타이르기 전에 나는 어른으로서 얼마나 옳은 것을 보여주었는지 돌아보았다. 설득보다 솔선수범이 변화를 꾀할 유용한 방법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되도록 집에 머물러주기를 당부하는 뉴스의 간곡한 문구를 내 아이, 우리의 미래, 어른의 떳떳함을 위해 꼭 지켜야 하겠구나 싶었다. 활기찼던 일상에 대한 집착, 고립된 우울, 때가 되면 당연히 해야만 한다고 믿었던 일들, 연말연시의 들뜬 마음, 다가올 명절에 대한 고민이 ‘떳떳함’에서 정리되지 않는가. 코로나19를 극복할 때까지 나는 어른답게 바로 서고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어른들이 방심하고 현명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학생들의 고립과 정체는 언제까지가 될지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면의 밤에 건진 영화는 소름이 돋을 만큼 섬뜩했다. 어른이 어른으로서 절대 포기해서 안 되는 자부심을 놓칠 뻔한 미숙한 내 모습을 비춰 보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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