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범죄수익-사내유보금 환수(과세), 노동자기금설치법 제정’ 충북노동자시민선언에 나서며③

막강한 원청의 힘, ‘양재동 가이드라인’ 

2018년 장시간노동과 차별적 임금에 분노해 노동조합을 설립한 금속노조 현대모비스 충주지회 김민우 지회장은 “노조가 생기고 나서 원청은 모두 이전했다. 예전처럼 현장에 직접 내려와 간섭하는 일은 사라졌다”고 말한다. 현대모비스 사측은 전국 10개 공장에 하청노동자들의 노조가 세워지자 원청 사무실을 뺏다. 불법파견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다. 휴가 사용이나 복지 제도 등 개선도 이뤄졌다. 하지만 원청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아니 현대자동차가 모든 것을 쥐고 결정하는 구조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하청업체 사장들과 교섭을 하는데요. 가장 힘든 게 양재동 가이드라인이라는 거예요. 올해도 현대차 그룹은 ‘임금동결’ 방침을 내렸어요. 우리는 최저임금을 시급으로 받잖아요. 그런데도 양재동 가이드라인은 그대로 적용됐습니다. 현대자동차 노사가 임금동결로 합의하고 나니까 하청의 임금교섭은 아무 소용이 없는 거죠” 

양재동 가이드라인. 한국 사회 대표 재벌 현대자동차그룹은 코로나 위기를 앞세워 임금동결 방침을 결정했다. 이는 완성차를 비롯한 계열사 모두에 적용되는 방식이었다. 재벌이 ‘임금동결’을 결정하니, 하청노동자들은 하청업체와 100번을 교섭해도 그 결정을 뛰어넘지 못한다. 그 와중에 하청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성과급은 정규직의 반 토막이다. 

올해 초 갈수록 심화 되는 임금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규직의 임금 양보가 필요하다는 ‘양보론’이 득세했다.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 문제를 언급하며 정규직 임금동결에 동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격차를 해소해보자던 사람들의 선한 마음은, 최저임금으로 시급을 받는 하청노동자들을 더 쥐어짜는 재벌의 악행으로 돌아왔다. 

한국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대표적인 재벌대기업 현대자동차는 정규직 임금 억제를 통해, 하청노동자들의 임금동결을 관철시켰고, 원청이 결정하면 하청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다시 확인시켜줬다.

ⓒ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연 매출 38조, 사내유보금 33조를 쌓아 올린 현대모비스

현대모비스는 1977년 현대정공으로 출발해 지금은 세계 100대 자동차 부품 업체로 선정된 글로벌 기업으로 현대자동차 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성장했다. 2019년 기준 매출이 38조 원이 넘고, 영업이익은 2조 3,593억 원으로 전년 대비 16%가 증가했다. 사내유보금 역시 매년 증가해 같은 해 기준으로 33조 547억 원에 이르고 있다.

이렇게 큰 기업에 국내 직영공장은 단 두 곳, 10개 공장은 모두 하청노동자들이 일하는 공장이다. 특히 모듈의 경우는 하청노동자 비율이 거의 100%다. 충북지역에는 진천과 충주에 공장이 있는데, 진천공장은 정규직이 일하지만 충주공장은 생산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모두가 하청노동자다. 물류 공장 역시 모두 도급계약으로 이뤄져 있다. 

2018년 노동조합을 만들기 전까지 충주공장과 물류 공장의 하청노동자들은 최저임금으로 시급을 받았고, 52시간을 초과하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휴가도 제 맘대로 사용할 수 없었고, 1년마다 한 번씩 근로계약서를 써야 했다. 현장의 모든 문제는 양재동(현대차그룹 본사)에서 통제한다는 것이 잘 알려진 비밀로 통했다. 재벌의 핵심 계열사로 빠르게 성장한 비결은 다름 아닌 70%에 가깝게 하청노동자로 채워진 생산 공장이다. 얼마 전까지(노동조합이 세워지기 전) 구직 사이트에서 ‘비정규직의 무덤 현대모비스, 정규직은 1%도 안 되는 회사’라는 글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원·하청구조는 재벌체제를 유지하는 중요한 토대다. 권리는 막강한 데 책임은 질 필요가 없고, 저임금을 기반으로 한 높은 이윤을 보장받을 수 있는 하청시스템이 재벌들의 막대한 이윤축적의 비결이었다. 

ⓒ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재벌체제 청산, 과연 될까요?

“노동조합을 하면서 재벌체제의 문제를 알게 됐어요. 적은 비용으로 많이 생산하고, 해고하고 싶으면 언제든 해고할 수 있는 하청제도로 재벌의 곳간을 채웠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재벌체제 청산한다고 비정규직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요. 그 혜택이 비정규직들에게까지 돌아올까요?”

현대모비스 충주지회 김민우 지회장은 코로나19로 정부가 기업에 막대한 자금 지원을 하고 있지만 그 돈은 대부분 대기업들에게 돌아가고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해고당하는 현실에서 재벌체제 청산은 너무 먼 얘기처럼 들리는 것 같았다. 

ⓒ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재벌사내유보금을 환수해 노동자기금을 운영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쉽지 않잖아요. 그 혜택이 비정규직들에게 돌아올지도 의문이구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직접 나서서 노조 만들고 싸움을 주도할 수 있으면 가능할 수도 있겠죠. 재벌체제에 맞서려면 더 많은 비정규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힘을 키워야 할 것 같아요”

맞는 얘기다. 재벌들의 사내유보금은 저임금·비정규노동자들을 갈아 넣어 쌓아 올린 것이다. 저임금·장시간·불안정노동은 재벌체제를 지속케 하는 탄탄한 토대다. 그래서 재벌체제를 청산하고, 재벌들의 독점이윤을 무너뜨릴 수 있으려면 저임금·비정규노동자들이 일어나야 한다. 재벌사내유보금 환수(과세)운동이 저임금·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과 만나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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