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가칭)단재고등학교 설립인가 심사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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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가칭)단재고등학교 설립인가 심사에 대한 단상
  • 이치열
  • 승인 2020.09.11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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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열 충북대안교육연구소 소장
이치열 충북대안교육연구소 소장
이치열 충북대안교육연구소 소장

충북에 좋은 대안학교 하나 만들어 보겠다고 2018년부터 뜨거운 열정으로 준비해 오던 발걸음에 제동이 걸렸다. 지난 8월 말에 있었던 (가칭)단재고등학교가 설립인가 심사(교육부 중앙투자심사)에서 두 번째로 반려 판정을 받은 것이다.

왜 반려된 걸까? 반려의 이유는 다음 세 가지란다. △학교의 위치를 재검토하고 △사업 규모를 축소하고 △학교 부적응 소외자를 우선으로 배려하라. 일면 이해가 되는 측면이 없진 않지만 대체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고 우려되는 점들도 있어서 이 세 가지 반려 이유를 살펴보면서 충북대안교육의 방향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눠 보고자 한다.

 

공간에 대한 관점의 전환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먼저, 학교의 위치 문제다. 아마도 큰 도시인 청주와 물리적인 거리가 떨어져 있어서 지역사회의 교육 인프라를 활용하는 데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지적인 것 같다.

하지만 좀 다른 관점에서 볼 수도 있다. 즉, 지역사회의 교육 인프라가 반드시 도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는 곳 어디에나 있다는 관점의 전환과 상상력을 작동시켜 보면 어떨까? 나는 어떤 공간, 어떤 상황에서도 배움은 가능하다고 보는 편이다. 사람 사는 곳에는 자연이 있고, 역사와 문화와 삶이 있다. 눈을 크게 뜨고 상상력의 나래를 펼쳐보면 그 안에 배울거리는 차고 넘치는 법이다.

설령 우리 마을이 좀 부족하다면 학교가 마을에 뭔가 기여하는 활동을 통해 배움이 일어날 수 있다. 배움은 오히려 일방적으로 받는 것보다는 땀흘려 베푸는 과정을 통해 더 크게 일어난다. 이것이야말로 마을을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방식이 아닌 함께 만들어 가는 마을살이(만들기)의 바람직한 접근방식이기도 하다. 혹시 우리 마을 안에 없는 게 있다면 다른 마을로 시선을 돌려서 찾으면 된다. 다행히 단재고 예정 부지 인근에는 모범적인 마을공동체도 있고, 귀농 귀촌한 예비 멘토들도 많이 계시는 걸로 안다. 그것도 부족하면 청주 시내까지 버스로 20분 정도로 접근성도 좋으니 청주시나 타 도시로 나가서 배워오면 된다. 고등학교 연령 아이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어딘들 못 다니겠는가. 오히려 학교와 학원, 집 주변만을 맴도는 단순한 일상보다는 훨씬 역동적인 배움의 과정이 될 것이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공간 되살림’의 관점에서 폐교된 학교 공간을 되살려 새로운 배움터를 일군다는 점이다. 요즘 교육공간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공간혁신 바람이 불고 있다. 수려한 자연경관과 폐교되어 쓸모없어진 유휴공간을 재활용한 대안학교야말로 생태감수성을 중요시 하는 단재고의 교육철학과도 일맥상통할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의미있는 교육적 공간이 될 것이다.

 

유연한 접근법으로 비효율과 예산낭비 줄여야

다음으로 사업 규모의 축소 문제다. 학생 수 108명 규모에 폐교 리모델링까지 함에도 불구하고 과도하게 예산을 잡았고, 이렇게 되면 일반화한 확산 모델로서의 의미가 있겠느냐는 지적인 것 같다.

학교 설립 때 예산을 확보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추가 예산확보에 어려움이 있다는 우려 때문에 초기에 최대한 예산확보를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통상의 일이고, 대안학교는 일반학교와는 다르므로 상대적으로 많은 예산이 투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 이렇게 예산이 많이 들어가서야 확산가능한 모델이 되겠는가 하는 우려에도 일리가 있다.

그런데 여기서 관점을 조금 달리해서 접근해 보면 어떨까? 나는 단재고의 성격을 ‘실험학교’로 본다. 써머힐, 발도르프, 프레네, 풀무, 간디학교가 그랬듯이 성공적으로 새로운 교육의 지평을 연 학교들은 모두 실험학교의 성격을 갖는다. 실험학교의 특징은 나름 철두철미한 청사진을 가지고 시작하지만 하나같이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그렇다고 실험학교를 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오해 마시길). 당초 그림과는 다르게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실험학교의 학교설립 방식은 접근법이 달라야 할 것 같다.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인만큼 일반 학교 설립방식의 잣대를 적용하기보다는 유연하게 접근해서 비효율과 예산 낭비를 예방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건가? 우선 초기 시설투자는 꼭 필요한 시설(교실, 생활동, 식당, 교사공간, 자치공간, 작업장 등)을 우선 갖추고, 개교 후 실제 운영해 보면서 상세하게 필요한 시설 및 장비들을 점차로 보완해 나가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겠다. 물론 이렇게 일을 추진하려면 행정에서 이런 접근이 가능하도록 지원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경직되지 않은 유연한 사업방식으로 새로운 상상력과 실험이 필요한 실험학교가 안정적으로 정착하도록 돕고 예산낭비도 줄이는 지혜로운 대응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처음부터 편리하고 모든 것이 갖춰져야 반드시 좋은 학교가 아니라는 점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오히려 생태계와 공존하면서 덜 갖고 덜 쓰는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대안교육의 교육철학을 현실의 배움터에서 실현하려는 진정성과 열정이 좋은 학교를 만든다. 덧붙이자면 시설 곳곳에 여백을 두어 아이들과 함께 공간을 만들어 간다는 관점으로 공간 구성을 했으면 한다. 교실의 집기부터 쉼터가 될 정자, 텃밭 등 교육과정과 연계해서 공간을 꾸며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기 위해서도 행정지원의 유연성은 더욱 절실하다.

 

공교육 개혁 모델로서의 대안학교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학교 부적응 소외자 배려 문제다. 일반학교에 적응하기 어려운 학생들을 배려하는 것이 대안학교의 역할 아니냐는 지적인 것 같다.

이는 우리 교육 당국의 대안교육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대안교육에 대한 왜곡된 인식부터 전환이 필요하다. 1998년 대안교육 특성화학교, 2010년 공립형 대안학교 등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그동안 교육 당국의 대안교육정책은 잘못된 교육정책을 바로잡기보다는 현상유지의 관점에서 대안교육을 보완재로 활용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대안교육의 역할은 일반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맡아서 보살피고 다시 일반학교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여기에는 교육, 인권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입시 위주의 경쟁교육과 다름을 존중해 주지 않는 비민주적인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부적응 학생으로 낙인찍고 다른 공간으로 유배(?) 보낸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라. 그런 배제와 격리의 교육학이 과연 교육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인지, 평생 낮은 자존감으로 살아가야할 그 낙인의 트라우마가 인권적으로 온당한 것인지. 좋은 교육이란 ‘다양한 색깔의 아이들이 서로 어울려 상호작용하는 관계 속에서 자신의 빛깔을 찾아가는 과정을 돕는 것’이다. 배제의 교육학이 아닌 통합의 교육학이어야 한다.

원래 19세기 말 등장한 대안교육은 근대교육, 근대학교제도의 문제를 개혁하고 그 대안의 모델을 만들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대안교육운동’인 것이고, 우리 사회에도 제도권 밖에서 1990년대부터 교육운동의 차원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어 왔다.

나는 학교 적응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을 돕는 은여울 중학교와 같은 치유형 학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은여울 중학교가 현 공교육 시스템의 문제를 보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단재고는 현 공교육 시스템의 문제를 개혁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본다. 지금 (행복씨앗학교도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 한계를 넘어서는 차원에서) 우리 공교육의 근본적인 개혁의 모델을 만들어 가는 ‘참 대안학교’의 등장이 요청되고 있다. 그게 단재고라고 생각한다. 단재고는 '입시경쟁교육'으로 일그러진 공교육 시스템 안에서도 나를 찾고 건강한 민주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교육, 즉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는 교육이 가능함을 증명하고 그 모델을 만들기 위한 대안학교이자 실험학교다. 그래서 단재고의 학생 구성은 어떤 특정한 학생이 아닌 일반학교의 보통 학생의 구성과 동일해야 하는 것이다.

충북의 대안교육이 이제 막 봉우리를 틔우고 있는 중대한 시점이다. 단재고가 공교육 안에서 그 전형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가길 간절히 바라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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