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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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줌마
  • 이재은
  • 승인 2020.08.2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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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긴 장마의 끝을 본다. 듣기 좋은 소리도 하루 이틀이지, 날카롭게 내리 꽂히는 빗소리가 지겨운 참이었다. 하늘에 휘장처럼 둘러 있던 칙칙한 구름이 어디론가 물러갔다. 무엇보다 베란다에 퀴퀴하니, 마르지 않은 빨래 냄새가 진동하지 않아서 좋다. 눅눅한 마음도 말릴 겸 집 근처 하천을 따라 걸었다.

넘칠 듯 끓어오르는 냄비 같던 하천이 어느새 잠잠하다. 전속력으로 내달리던 물살이 봄물처럼 순하다. 하지만 흙탕물이 되어버린 수면은 여전히 탁한 상태였다. 어디서부터 떠밀려오는지 부유하는 이물질까지 뒤섞여 흐르는 물은 며칠 내리 퍼붓던 폭우를 새삼 떠올리게 하였다.

장마의 불안한 여운이 다 가시지 않은 하천에서 혼자만의 놀이에 심취한 아이가 보였다. 바짓단을 무릎 위까지 걷어 올리고 허리를 연신 굽혔다 펴는 모습이 멀리서 보면 홀로 노니는 두루미처럼 보였을 것이다. 차가운 물의 흐름을 느끼는 듯 지그시 눈을 감을 때면, 아이의 표정은 흡사 산 속의 도인 같았다. 형체 없는 물이 조그만 손 안에서 어떤 형상이라도 만들어지는 것일까. 조심스럽고 신중한 손놀림을 따라가는 내 눈이 감탄으로 한껏 팽팽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세히 보니 주위의 돌을 가져다 그럴싸하게 쌓아서 제방도 만들어 놓았다. 신던 슬리퍼를 배처럼 띄우기도 하고 돌을 잔뜩 넣어 물속에 침몰시켜 가며 놀이 시간표라도 있는 양 알차고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작은 도인의 모습은 나에게 즐거운 눈요깃거리였다. 주변의 하찮은 사물을 필요에 맞춰 요긴하게 다루는 솜씨가 신기했다. 나름 고심한 창의적인 놀이 방법에 손재주를 더해가며 열중하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였다. 어떤 사람이 바닥을 확인할 수 없는 하천에 발을 담글 생각이나 했겠는가.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자신만의 놀이에 빠져 있는 아이의 얼굴은 먹구름을 뚫고 나온 하늘처럼 해사하기만 했다. 동그랗게 모은 입술만큼 앙팡진 집중력과 눈썹을 한껏 치켜 뜬 만큼의 호기심은 숨어서 지켜보는 나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대담해 보이는 아이가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다. 물속에 담근 자신의 발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제방을 쌓으며 얼마나 신나는 꿈을 꾸는 것일까. 발만 제자리에 못 박혔을 뿐 나의 머릿속은 아이의 즐거운 상상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의 얼굴에서 내 아들의 얼굴이 오버랩 되는 순간 끝없이 흐르는 상상의 흐름은 끊어졌다.

내 아들의 하천 놀이를 목격한다면 당장이라도 고함이 나오겠지. 하천으로 달려 들어갈 나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주위를 의식할 겨를도 없이 진저리 치며 더러운 물에서 끌어냈을 것이다. 아들이 자랑스럽게 만든 제방쯤은 거들떠보기는커녕 분풀이 하듯 무너뜨렸을지도 모른다. 억지로 끌어 집으로 데려가면 살균소독이라도 할 기세로 싹싹 씻길 테지. 그리고 거듭 다짐을 받을 것이다. 다신 무모하고 황당한 놀이 따위는 하지 않겠다는. 순간의 지레짐작에서 떠내려 오는 생각만으로도 숨어 있던 거칠고 뾰족한 걱정이 마구 불어나는 느낌이었다.

물을 보면 돌이라도 던져보고 싶은 게 아이들 마음이다. 나 또한 어릴 적, 놀이터로 공터로 개울로 종횡무진 누벼 본 경험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지 않은가. 호기심이라는 엔진을 달고 온갖 상상의 시동을 걸던 풋내 나는 마음을 말이다. 천진무구한 어린애의 단순한 생각에서 얼마나 마음이 부풀어 올랐는지,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들썩거리는 마음에서 새어나오는 혼잣말이 어떤 꿈을 꾸게 했는지 나이가 들면서 자꾸 잊는 것이다.

유년 시절을 떠나 엄마가 되고 보니 재미는 둘째다. 재미만 좇다 내가 그려놓은 기대나 바람에서 아들이 엇나가지 않을까 조바심이 앞선다. 아들의 성향이나 관심사, 희망 사항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내 모습은 분명 독재자 같았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그려보지 못한 인생의 그림을 아들을 통해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혼자만의 억지를 부렸는지도 모른다. 남의 집 이름 모를 아이를 흐뭇하게 감상하며 머릿속은 온갖 느낌표와 물음표로 가득했으면서 정작 내 아들에겐 단호하게 마침표를 찍어버리고 마는 이유를 묻는다면 궁색한 변명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가끔은 아들을 남의 집 아이 바라보듯 한 발 물러나 관찰해 보는 것도 괜찮겠지 싶다. 바짝 붙어 따져보지 않으면 한결 침착해지는 모양이다. 위험천만한 상황이 아니라면 엄마라는 이름에 갇힌 불안을 누르고 인내심을 발휘해 볼만하다. 엄마의 눈에 쓸데없는 짓이 아줌마의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쓸모 있는 행동으로 보이니 말이다. 하천의 작은 도사를 엿보는 재미만큼 내 아들의 숨은 호기심과 창의력, 미처 눈치 채지 못한 재능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할지 누가 알겠는가.

장마가 끝나기를 누구보다 기다렸을 아이는 유난히 화창했던 그 날을 기억할 것이다. 노곤한 행복감에 일찍 잠에 들어 될성부른 꿈을 꾸었겠지. 아침이면 가물가물 떠오르는 꿈이 먼 훗날 선명하게 반짝일지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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