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게 영동군과 함께 한 엔텍 파산

 

엔텍 영동공장 정문 ⓒ 김다솜 기자
엔텍 영동공장 정문 ⓒ 김다솜 기자

회사가 망할 거란 소식은 입에서 입을 타고 전해졌다. 풍문이 확인된 건 회사 정문에 나붙은 종이 한 장이었다. 서울회생법원이 엔텍에 ‘파산’을 선고했다는 결정문이었다. 레인지후드와 쿡탑 등 주방기구와 욕실 제품을 만드는 기업, 엔텍. 1987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30년 넘는 시간 영동군민과 함께 울고, 웃었다. 

엔텍은 88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크게 성장했다. 국제 행사에 전 세계 선수들이 서울로 물밀 듯이 들어왔다. 선수촌에 들어갈 물량이 부족할 정도로 수요가 넘쳐났다. 당시만 해도 생산 시설을 제대로 갖추고 주방 후드를 만들어 내는 기업은 엔텍이 국내에선 유일했다. 

10년 전부터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다. 엔텍은 ‘유이’한 기업이 되면서부터다. 동종업계 후발 주자들이 나타나면서 가격 경쟁이 붙었다. 납품하려면 제품 단가를 낮추는 수밖에 없었다. 지난 3년간 평균 매출액은 482억 원. 2017년에 9억 원의 영업이익을 봤지만 2018년부터는 영업손실로 돌아섰다.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지난해 11월부터 휴업 일수가 점점 늘어났다. 노동자들은 70% 유급휴가에 들어갔다. 회사는 현금 조달이 힘들다고 앓는 소리를 냈다. 그렇게 엔텍은 ‘파산’을 맞이했고, 그들은 ‘노동자’에서 ‘실직자’가 됐다. 

엔텍 영동공장 철문 사이로 준공표지석이 보인다. ⓒ 김다솜 기자
엔텍 영동공장 철문 사이로 준공표지석이 보인다. ⓒ 김다솜 기자

미지급 퇴직금 35억 원

“한 달 사이 풀들은 어쩜 저렇게 잘 자라는지….”

이종열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엔텍 영동공장 지회장이 철문 너머 회사를 바라보면서 낮게 읊조렸다. 수풀 사이로 엔텍 영동공장 준공기념석이 보였다. 이 지회장은 굳게 닫힌 철문 앞에서 천막 농성으로 여름을 보낸다. 무더위에 아스팔트는 끓어오르고, 농성장에 나앉은 노동자들은 땀을 줄줄 흘린다. 조합원들이 2인 1조로 돌아가면서 천막을 지키고 있다. 

엔텍 영동공자 노동자는 약 75명. 체불임금은 겨우 받아 냈지만, 퇴직금은 아직이다. 엔텍에서 30년 넘게 근무한 노동자의 미지급 퇴직금은 1억 5,000여만 원이나 된다. 전체 조합원의 퇴직금 미지급금 규모는 35억 원에 이른다. 

장기 근속자가 많은 만큼 퇴직금 규모도 크다. 퇴직금은 14일 이내에 지급돼야 하는데 늦어진다면 엔텍이 연 5.0% 이자를 내야 한다. 엔텍이 저당 잡힌 채무가 많지 않기 때문에 퇴직금 지급은 어느 정도 가능한 상황이다. 

엔텍 영동공장 노동자들이 천막을 펼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다. ⓒ 김다솜 기자
엔텍 영동공장 노동자들이 천막을 펼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다. ⓒ 김다솜 기자

장석우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회사가 파산 절차에 들어갔으니 회사 재산을 매각하면 퇴직금 정도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한다”며 “최종 3년간 퇴직금, 최근 3개월 간 임금은 최우선 변제 사항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다시 정규직이 될 수 있을까

영동군에서는 일자리 사업과 연계해주는 방안 말고는 할 수 있는 권한이 적다는 입장이다. 엔텍 영동공장 현장 노동자들은 모두 정규직이었다. 그들은 ‘무기계약직’이라도 구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영동군에서는 연계해줄 수 있는 일자리는 단기·계약직밖에 없다. 

김옥순 영동군청 일자리창출팀 팀장은 “실직 상태인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연계하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며 “영동군 주변 기업체를 돌아다니면서 채용 독려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엔텍 영동공장 전경. 회사가 파산되면서 공장 안에 있는 자재, 제품, 기계류가 매물로 나왔다. ⓒ 김다솜 기자
엔텍 영동공장 전경. 회사가 파산되면서 공장 안에 있는 자재, 제품, 기계류가 매물로 나왔다. ⓒ 김다솜 기자

영동군은 파산을 맞이한 엔텍으로부터 퇴직금 미지급액을 빨리 받을 수 있는 방안도 제시하지 않았다. 정의당 충북도당은 영동군이 지불 보증을 서고, 체불 임금(퇴직금 포함)을 먼저 지급한 뒤 엔텍 인수 기업으로부터 우선 변제 하는 방법을 제안했으나 영동군은 검토 중이라는 답변만 남겼다. 

“영동군에서 관심 있게 지켜본다고 했는데 (농성장에) 한 번 오고서 더 이상 오지 않고 있어요. 천막 사수하는 분들을 군에서 관심을 가지고 와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 지회장은 그 뒤로 소식 없는 영동군에 서운함을 표했다. 천막농성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 엔텍 계열사인 에넥스에 재취업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지회장은 “그동안 지역 경제에 헌신했는데 지금 와서 영동군은 ‘나 몰라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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