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농가 318농가 중 76%가 충주, 산척에 집중
양성확진+의심건수 합치면 산척면만 250농가
확진 판정에만 열흘 이상 걸려…그사이 병 확산
이시종 충북도지사가 매몰기준 변경 농진청에 건의
발병시 과수원 내 전부 매몰→5%이상 발병시 매몰
산척면 농민, “사과나무 전부 매몰 3년후 다시 시작해야”

2008년 인천에서 충주시 산척면으로 귀농한 이범규 씨가 지난 7일 과수화상병에 걸린 사과나무를 매몰하고 있다.
2008년 인천에서 충주시 산척면으로 귀농한 이범규 씨가 지난 7일 과수화상병에 걸린 사과나무를 매몰하고 있다.

열흘 만에 모든 것이 끝났다.

지난 10여 년간 있는 정성, 없는 정성 다 들이며 자식처럼 키웠었는데, 불과 열흘 만에 모든 게 끝나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이범규(54) 씨가 처음 과수화상병을 발견한 것은 지난달 27일이었다. ‘사과나무가 좀 이상하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헐레벌떡 달려가 봤더니 예상대로 과수화상병이었다. 심장이 내려앉고 눈물이 났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는 사이 병은 무섭게 번졌다. 1그루가 2그루가 되고, 2그루는 10그루. 그게 또 50그루, 100그루 걷잡을 수 없었다. 결국 열흘 만에 700주 모두를 땅에 묻었다.

“심정이요? 글쎄요. 뭐라 할 말이 없어요. 멘붕이죠. 계획도 없고, 뭘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고, 그냥 모든 게 다 끝났죠 뭐.”

충주시 산척면 상산마을에서 사과나무를 키우던 이 씨는 매몰된 과수농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쉰다. 그는 지난해에도 과수화상병 폭탄을 맞아 750주를 땅에 묻었다. 언젠가 다시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충주시농업기술센터에서 하라는 방역과 소독에 철저를 기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이 씨는 지난 2008년 인천에서 하던 장사를 모두 접고 충주로 온 귀농인이다. 부인과 함께 2년간 마이스터대학에서 사과를 전공하며 기술을 배웠다. 30~40대 때 모아뒀던 돈은 물론 끌어 올 수 있는 돈은 모두 끌어모아 사과 저장창고부터 방제기 구입까지, 꼬박 8년을 투자만 했다. 농사가 어렵다지만 좋은 사과만 키운다면 소비자가 알아줄거라 확신했다. 그렇게 2018년 첫 수확의 기쁨을 누렸고 입소문이 나 주문도 꽤 들어왔었다.

이범규 씨가 기른 사과나무
이범규 씨가 기른 사과나무

그러나 첫 수확의 기쁨은 잠시였다. 지난해 제천시 백운면에서 옮겨온 과수화상병 세균은 산척면 일대를 덮쳤고 산척면에서만 54개 농가가 당했다. 이범규 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올해 또다시 닥친 과수화상병으로 나머지 700주마저 묻고 말았다. 그는 “사과나무와 함께 귀농의 꿈도 같이 묻었다”고 말했다.

 

사과나무와 함께 귀농의 꿈도 같이 묻었다”

올해로 13년째 산척면에서 5000여 평 밭에 사과나무를 길렀던 이천영 씨(59) 또한 과수화상병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지난달 28일 가지 끝이 불에 탄 듯이 바짝 말라 있는 모습을 본 그는 단박에 과수화상병이라는 것을 알아챘고 절망했다. 매일 새벽 4시부터 저녁까지 사과나무를 가꾼 덕에 아들 둘을 무사히 공부시킬 수 있었고 풍요로운 노년도 꿈꿨지만 이제는 물거품이 됐다.

이천영 씨가 과수원을 돌아보고 있다.
이천영 씨가 과수원을 돌아보고 있다.
과수화상병에 걸린 사과나무
과수화상병에 걸린 사과나무

 

“사과나무를 다시 심어서 수확을 하려면 앞으로 7~8년은 족히 걸립니다. 8년 후면 70을 바라보는 나인데 뭘 기약할 수 있겠어요?”

2년 전부터 사과농사를 짓는다고 과수원에 뛰어든 큰 아들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앞날이 막막하다.이천영 씨는 지난달 28일 발견 즉시 바로 의심신고를 했지만 9일 현재까지 확진판정을 받지 못해 매몰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진 못하고 있다. 그러나 더 퍼지면 안된다는 생각에 하나둘 정리를 하고 있다.

 

전국 농가 318농가 중 76%가 충주, 산척에 집중

현재 충주시 산척면에는 수많은 이범규·이천영 씨가 있다. 짧게는 5~6년, 길게는 20~30년 동안 오로지 사과나무만 바라보다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농민들이다.

11일 오전 기준으로 전국에서 과수화상병 확진을 받은 농가는 318농가다. 이중 충주지역은 242농가로 76%를 차지한다. 특히 산척면 농가는 123농가로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았다. 의심신고를 한 131곳을 합치면 산척면에서만 250여 농가가 과수화상병에 걸린 셈이다. 이제 산척면에서 과수화상병 피해를 입지 않은 농가는 손에 꼽힐 정도다.

과수화상병이 원인도 치료약도 없는 ‘과수계의 구제역’이라지만 농민들은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고 보니 정부와 충북도 및 충주시를 향해 하고 싶은 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시종 지사가 매몰기준 변경 건의했다고?

우선 확진통보를 받고 매몰하기까지 행정처리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병을 확산시킨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천영 씨만 해도 지난달 28일 의심신고를 했는데 13일이나 지난 6월 9일까지 확진통보서와 매몰통지서를 받지 못했다. 당연히 매몰작업을 못하고 있다. 이 씨는 “지난해에는 화상병 의심신고를 하고 확진판정 후 매몰까지 걸리는 시간은 5~6일 정도였다. 그러나 올핸 확진까지 걸리는 시간만 10일 정도”라며 “확진과 매몰통지서를 기다리는 동안 병이 많이 확산됐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매몰기준도 문제다. 지난해엔 화상병이 발생하면 해당 과수원 내 모든 나무를 땅에 묻었다. 그 전엔 100미터 인근 과수원의 나무는 전부 매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올핸 과수원 전체 나무 중 발생률이 5%미만이면 해당 나무와 인접나무만 제거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과수화상병 발병을 쉬쉬했던 농민도 일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장병산 과수화상병보상대책위원회 대표는 “매몰기준을 5%이상으로 잡은 것은 너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일단 농가 한곳, 가지 한 개라도 세균이 있으면 과수화상병은 언제라도 다시 올 수 있다”며 “산척에 있는 모든 사과나무를 전부 없애고 세균을 박멸한 이후에 다시 사과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많은 농민들이 충주시나 충북도에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과수화상병 발병시 전체 매몰’에서 ‘5%이상일 경우 매몰’로 매몰지침이 바뀐 배경에는 이시종 충북도지사가 있어 농민들은 이 지사 및 충북도를 비판하고 있다.

이 지사는 지난해 농촌진흥청에 매몰 조건을 변경해줄 것을 건의했다. 익명을 요구한 A씨는 “세균이 계속 남아 언제라도 다시 화상병이 찾아올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당사자가 이시종 도지사”라며 “화상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보상금 작년보다 많이 줄었다”

또 다른 문제는 보상금 및 생계지원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과 사과나무를 대신할 수 있는 대체작물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손실보상금 지급기준은 △일반재배(300평당 64주 이하) △반밀식재배(300평당 65주 이상~125주 이하) △밀식재배(300평당 126주 이상) 등 재배유형별로 나눠 산정됐다.

예를 들어 수확 전 10년생 사과를 기준으로 했을 때 일반재배는 한 그루당 46만8000원이고 반밀식재배는 23만6000원, 밀식재배는 한 그루 당 13만원이다.

이랬던 것이 올해부터는 보상단가를 14개로 세분화됐다. 300평당 심은 사과나무 수(37그루~150그루)를 기준으로 단가가 책정된다. 가장 큰 변화는 기존 반밀식재배 보상액(10년생 기준 23만6000원)이 최대 30만9600원(65주)~최소 16만6800원(125그루)으로 나눠 지급된다는 점이다.

이찬영 씨는 “충주지역 농가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권고한 반밀식 기준으로 나무를 심은 농가가 70~80%에 이른다”며 “변경된 기준대로라면 3000평당 보상금은 지난해보다 1억2000만원이나 줄어든다”고 강조했다.

일부 농민들은 이에 반발, 매몰을 거부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과수화상병 확산을 막기위해 매몰하는데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충주시농업기술센터 전경
충주시농업기술센터 전경

 

생계안정지원금 받으려면 다년생 식물 또 길러야

정부 및 충북도가 생계안정지원금을 검토하고 있지만 농민들은 역부족이라고 말한다.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자는 ‘식물방역법 시행령’에 따라 다년생 식물을 폐기한 후 과수 등 다년생 식물을 또다시 기르는 사람에 한정하기 때문이다. 금액은 년 1000만원 수준이다. 결국 3년간 년 1000만원으로 생활하며 다년생 식물에서 소득이 나올 때까지 생활해야 한다는 얘기다.

충주농업기술센터 한 관계자는 “생계안정지원금은 다년생식물을 심어서 수확이 나기까지 3~4년을 기다려야 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며 “대상자로 선정되기가 까다로운 편이다”라고 전했다.

대체작물 또한 현재로선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지난해 과수화상병으로 750주를 묻은 이범규 씨는 “지난해 대체작물로 고추와 감자 고구마를 심었는데 돈을 벌지는 못했다. 경매에서 가격을 후려치기 때문이다. 돈을 만들 수 있는 구조가 절대 아니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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