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민학교’를 졸업한 세대이다. 6월이면 반공 글쓰기나 웅변대회가 흔했던 기억이 난다. 몽당연필로 또박또박 써내려가는 위문편지가 나라를 지키는데 한 몫 하리라 생각했다. 붉은 글씨로 빼곡한 대북 전단지인 ‘삐라’는 읽기만 해도 잡혀가는 줄 알고, 새벽에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을 보면 간첩으로 신고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라고 배웠다. 그래서일까. 북한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문제적 나라이자 어딘가에 도사린 공포, 현재진행형의 불안으로 지금까지 나의 의식에 낮고 짙게 깔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북에 대한 온갖 뉴스에 둘러싸인 요즘이다. ‘전쟁’, ‘핵’, ‘전면전’같은 군사용어에 실존의 위협마저 받는다.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미심쩍은 공포가 마음의 분단을 심화 시키는 듯하다. 경험하지 않고 북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수 있나. 객관적 사실은 무엇이고 주관적 오해는 무엇일까. 과거의 기억은 언제까지 소환되어야 하는가. 북을 향한 우리의 시선은 왜 이토록 무지하고 무감하기만 할까.

올해는 “6.15 남북 공동 선언”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남과 북이 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에 입각하여 통일의 절차와 과정에 대해 구체적인 합의를 이루어낸 역사적인 날이 6월 15일이다. 2000년,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 위원장이 공식 발표한 “6.15 남북 공동 선언”에는 화해협력, 남북연합, 완전통일의 점진적 통일 방안이 나열되어 있다. 평화통일은 남과 북의 오랜 염원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묵은 의심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급변하는 시대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모양이다. 평화롭게 공존하고, 함께 번영하는 시간이 쌓여 자연스럽게 통일로 갈 수도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말이다.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는 여정은 북을 알아가는 첫발로 시작된다. 개성공단시대가 열리던 즈음 나또한 북한 퍼주기가 아닌가 하는 오해와 불만이 있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무상에 가까운 개성의 토지 임대료, 엄청난 저임금의 우수한 노동력을 제공한 북측이 우리와의 경제 협력을 바라지 않았을 리 없었다. 우리의 자본과 기술이 북측의 자원과 어우러져 제대로 힘을 발휘한다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질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게 함께 머리를 맞댄 남북의 공동체의식은 지금쯤 어떤 길로 우리를 안내했을지 상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북측의 인권문제를 우리는 과장하거나 왜곡한다. 공산국가라는 편견 때문이다. 북에서 제작된 그 무엇을 보더라도 은폐된 무엇이 더 있을 것이라며 끊임없이 의심한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적대감과 이질감만 내세우느라 한민족으로서의 상호존중과 동질성을 살펴 볼 고민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남북으로 갈리고 찢긴 것도 모자라 어쩌면 산산이 조각난 분열 시대를 대면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국방비, 체제유지비, 사회적비용, 코리아디스카운트 등 무심코 치르고 있는 분단비용을 생각하면 때늦은 아쉬움이 한숨으로 밀려 나온다. 북을 적대시 하는데 소모한 에너지가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사용되었더라면. 미뤄둔 숙제를 만난 것처럼 답답할 따름이다.

우리의 눈으로 저들의 삶을 직접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면 가장 좋은 해결책이 될 것이다. 지금은 새로운 사고의 창을 열어두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 전쟁을 종식하고 경제적 사회문화적으로 다양한 방면에서의 활발한 교류야말로 통일로 가는 첫걸음이라는 것을 이제는 실감한다. 관점을 달리하면 남북의 평화로운 공존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말이다. 같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한 이웃이라는 관심으로 남북 관계를 품어보면 통일이라는 황금알을 낳게 될 날도 분명 멀지 않다.

6월 들어 호국보훈의 의미를 새겨본다. 암울했던 시절의 기억은 점점 변모해 가야 할 평화통일시대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호국 영령들의 염원도 후손들의 안녕이 아니었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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