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양판지, 두 개의 노동조합 ②] 노조위원장은 누굴 위한 자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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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노조를 아십니까. 2009년 12월 31일, 노동조합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복수노조가 허용됐습니다. 회사는 노동자들이 자주적으로 만드는 노동조합에 탄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복수노조 제도를 악용해왔습니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뜰 수 없듯이 대한민국 노동조합이 가질 수 있는 교섭권과 파업권도 하나입니다. 복수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교섭창구단일화를 거칩니다. 노조 간 합의 또는 과반수 조합원이 있는 노동조합이 모든 권한을 가져갑니다. 

대양그룹은 제지사업 2개와 판지 사업 4개 계열사를 두고 있는 국내 최대 산업용지 생산 기업입니다. 대양그룹의 판지 사업 계열사 중 하나인 대양판지 청주공장에서도 복수노조가 등장했습니다. 지난해 11월부터 노동조합 결성을 준비하던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대양판지 청주공장지회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듣게 됩니다. 회사가 주도해서 한국노총 이름으로 또 하나의 노동조합을 만든 겁니다. <충북인뉴스>는 ‘대양판지, 두 개의 노동조합’ 기획을 통해 그들의 노조 파괴 시나리오를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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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만든다”고 하니…대양판지의 맞대응은 ‘복수노조’

회사 전무가 말했다 “노동조합 등록해라” 

 

하루 만에 만들어진 노동조합, 그 뒤에는 윤종억 노무관리이사가 있었다. 한국노총 화학노동조합 대양판지 노동조합이 생기기 전날 인사 명령이 떨어졌다. 윤 이사는 경인·충청사업부 관리 부문장이자 노무관리부문장으로 청주에 내려왔다. 윤 이사는 "주 52시간 제도가 새로 도입돼서 시행하고 있고, 인사 부문에 대해서는 점검하고, 지원하는 차원에서 발령 받은 걸로 안다"고 말했다. 

윤 이사가 김민배 대양판지 청주공장 전무이사와 김원수 공장장을 데리고, 금속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들을 개별 면담했다는 진술이 나왔다. 개별 면담에는 여섯 명이 들어갔다. 그중 두 명의 노동자는 “회사 임원들이 한국노총 가입을 강요했다”고 진술했다. 나머지 4명은 24일(화) 당일에 한국노총으로 노동조합 등록을 신청했다.  

한국노총 노동조합이 생기기 바로 전날 윤종억 이사의 인사 발령이 나왔다 ⓒ 김다솜 기자
한국노총 노동조합이 생기기 바로 전날 윤종억 이사의 인사 발령이 나왔다 ⓒ 김다솜 기자

 

김훈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지회장의 통화 내용도 공개됐다. 여기서 이 위원장은 “회사가 등록하고, 사인하라 길래 해줬다”, “회사 임원들이 다 해놨다”고 고백했다. 회사로부터 지시를 받아 노동조합을 설립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윤종억 이사와 이명석 한국노총 화학노동조합 대양판지 노조위원장은 복수노조 설립 강요 의혹에 대해서는 전면 부인했다.

윤 이사는 "딱히 드릴 말씀이 없다"며 "인사명령을 3월 23일에 받고, 24일에서야 현장에 가봤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른다"고 항변했다. 김 이사도 "CCTV 회의실에 왔다갔다 들어갈 수도 있는 거 아니겠냐"며 "이명석 과장은 업무적 관계일 뿐, 제가 (노동조합 결성을) 꼭 시킨 걸로 해서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노조 탄압은 여기서도 벌어졌다 

의혹은 처음이 아니다. 대양그룹 산하에는 대양판지를 비롯해 여러 계열사가 있는데 윤 이사는 이미 다른 곳에서 ‘노조 파괴 전문가’로 불렸다. 2년 전 광신판지 안산공장 노동자들이 윤종억 이사를 경험했다. 

1988년 광산판지에는 기업노조가 있었다. 광신판지에서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기업노조에 가입했다. 기업노조와 광신판지는 단체협약도 맺었다. 단체협약 내용은 노조위원장만 알고 있었다. 조합원들이 보여 달라고 해도 회사는 보여주지 않았다. 회사는 18년 동안 한 사람을 노조위원장으로 앉혀놓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어 둔 것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지급받지 못한 임금을 소송을 통해 정당하게 받아냈습니다. 권리가 아닌 걸 주장하면서 싸운 적은 없습니다. 근로자가 있어야 회사가 있고, 회사가 있어야 근로자가 있는 건 당연한 겁니다. 예전 사고방식으로 근로자를 무시하거나 이런 행태는 없어져야죠.”

- 정은호 금속노조 광신판지 지회장 

 

광신판지 노동자들은 대양그룹 본사를 점거하기도 했다. ⓒ 금속노조 광신판지지회
광신판지 노동자들은 대양그룹 본사를 점거하기도 했다. ⓒ 금속노조 광신판지지회

조합원들은 시청에 찾아가서야 자신들의 권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은 회사가 단체협약 내용을 지키지 않은 부분을 돈으로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조합원들은 조직변경총회를 통해 기업노조에서 탈피해 금속노조로 전환을 시도했다. 

그러자 회사는 기업노조를 없애버리려 했지만, 실패했다. 노조위원장에게 받은 서류에는 병원에 입원 중인 조합원이 총회에 참석했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이 사실이 탄로 나면서 해산이 불가능해졌다. 조합원들은 기업노조에서 금속노조로 옮겨갔다. 

광신판지 노동자들이 금속노조에 가입하자 윤종억 노무관리이사가 등장한다. 정 지회장은 “회사는 현장 복지나 산업안전과 관련 없는 연봉직 사무실 직원을 넣어 복수노조를 만들었다”며 “관리자들을 통해 현장직 노동자들을 회유해서 회사가 세운 노동조합으로 옮기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누구를 위한 상생인가 

김훈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대양판지 지회장은 “복수노조로 분열된다면 우리가 겪는 피해는 확실하다”며 “노노 갈등이 생기는 건 회사가 바라는 일”이라고 말했다. 노동조합 설립을 ‘또 다른 노동조합’으로 막는 방식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2년 전에 광신판지에서 일어난 일들이 (노동조합을 만든) 제일 큰 계기죠. 사무실 직원들도 그 경험을 알아요. 우리는 제조업체다 보니 납품을 해야 매출이 생기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영향이) 굉장히 크거든요. 회사에 악재가 되는 거죠. 어느 업체에서 발주를 주겠어요? 오더 자체가 떨어지는데 그게 없으면 회사 운영이 안 되죠. 직원들한테 임금이 나갈 수가 없고요.” 

-이명석 한국노총 화학노동조합 대양판지 노조위원장

ⓒ 김다솜 기자
ⓒ 김다솜 기자

이 위원장의 말대로라면 ‘회사 이익’이 노동조합을 만든 가장 큰 계기가 된 것이다. 그는 ‘회사와의 상생’도 거듭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노동조합이 회사의 불합리한 걸 막기 위해 결성하는 건 좋지만 너무 강경하게 대응하는 건 싫다”며 “그런 모습이 청주공장에서도 벌어지면 서로 안 좋으니까 (노동조합) 신청했다”고 말했다. 

노동조합은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과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명시된 내용이다. 노동자에게 노동조합은 왜 필요하고, 노조위원장은 무엇을 위해 일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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