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양판지, 두 개의 노동조합 ①] 회사가 만들어 낸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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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노조를 아십니까. 2009년 12월 31일, 노동조합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복수노조가 허용됐습니다. 회사는 노동자들이 자주적으로 만드는 노동조합에 탄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복수노조 제도를 악용해왔습니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뜰 수 없듯이 대한민국 노동조합이 가질 수 있는 교섭권과 파업권도 하나입니다. 복수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교섭창구단일화를 거칩니다. 노조 간 합의 또는 과반수 조합원이 있는 노동조합이 모든 권한을 가져갑니다. 

대양그룹은 제지사업 2개와 판지 사업 4개 계열사를 두고 있는 국내 최대 산업용지 생산 기업입니다. 대양그룹의 판지 사업 계열사 중 하나인 대양판지 청주공장에서도 복수노조가 등장했습니다. 지난해 11월부터 노동조합 결성을 준비하던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대양판지 청주공장지회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듣게 됩니다. 회사가 주도해서 한국노총 이름으로 또 하나의 노동조합을 만든 겁니다. <충북인뉴스>는 ‘대양판지, 두 개의 노동조합’ 기획을 통해 그들의 노조 파괴 시나리오를 보도하겠습니다. 

노동조합은 없었지만, 노사협의회는 있었다. 김훈 씨(49)는 노동자 위원으로 협의회에 참석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대양판지 청주공장은 노사협의회에 참석할 노동자 위원을 ‘아무나’ 뽑아댔다. 할 사람이 없으니 회사에서 제안한 사람들이 투표도 없이 노동자 위원 타이틀을 달고 협의회에 들어왔다.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됩니다. 누가 하라고 해서 노동자 위원 하는 게 어디 있습니까.”

김 씨의 항의에 노동자 위원을 투표로 선출했다. 그 정도로 회사는 ‘노동’에 무관심했다. 노사협의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몰랐다. 그게 고작 3년 전 이야기다. 당연히 노사협의회에서 이야기가 원만하게 이뤄진 적은 거의 없었다. 권리를 말해도 불만으로 돌아와 마음속에 켜켜이 쌓였다. 

제대로 된 집진시설 없이 분진 가루를 마셔가며 일하고, 정부에서 최저임금을 인상하라고 했다며 회사가 상여금 600%가 깎고, 대체 인력이 없어 24시간 심지어 36시간 연장 근무를 해도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노동조합을 만들겠다는 결심이 섰다. 김 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조합원을 구했다.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올해 3월,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노동조합 설립을 눈앞에 앞두고 일이 터졌다. 24일(화) 점심을 먹기 위해 회사 식당으로 들어섰다. 눈에 띄게 사람이 적어졌다는 걸 느꼈다. 있어야 할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휴게실에서 두 명의 동료를 마주했을 때 직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 

“두 명이 불려 갔어요. 사측에서 그 친구들한테 한국노총 가서 가입하라고 오라고 했다더라고요. 명백한 부당노동행위죠. 제가 사무실에서 CCTV를 돌려 봤어요.”

CCTV는 모든 걸 보고 있었다. 김민배 전무이사와 김원수 공장장 그리고 윤종억 인사노무관리이사가 대양판지 청주공장 회의실로 사람들을 불러내고 있었다. 6명의 동료가 이들을 따라갔다. 김 씨에게 이 사실을 알린 2명의 동료를 제외한 사람들이 한국노총 산하 노동조합에 신청서를 넣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한국노총 산하 노동조합위원장은 이명석 과장이었다.

김훈 민주노총 금속노조 대양판지 지회장 ©김다솜 기자
김훈 민주노총 금속노조 대양판지 지회장 ©김다솜 기자

 

다음은 두 사람이 나눈 통화 내역 중 일부다. 

 

이명석 : 불러 가지고 자기들 마음대로 해놓고선 가서 하라고 지껄이길래 가서….
김훈 : 응. 누가?
이명석 : (노동조합) 등록하라 그러대. 그래 가지고 등록해줬지. 
김훈 : 공장장이?
이명석 : 예. 아니 전무인가. 
김훈 : 전무가 다 뭘 해놨어? 
이명석 : 전무가 다 공장장하고…. 또 그것도 있더만. 노무인사이산가? 다 해놓고…. 해놨더만 뭐 이미….  
김훈 : 그래서 전무랑 공장장이 가서 사인하라고 했어?
이명석 : 응. 나 가서 사인해줬지. 하라고 시키니까
김훈 : 한국노총에?
이명석 : 응. 왜? 누가 얘기했어? 도대체?
 

같은 날 청주시청 기업지원과에 한국노총 이름으로 노동조합 설립신고서가 도착했다. 청주시청은 누락 사항이나 법에 저촉되는 부분이 없다며 두 개의 노동조합에 설립신고증을 내줬다. 

 

부당노동행위 근절한다는 정부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는 31일(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는 “가짜노조를 설립해 조합 가입까지 회사가 주도하는 상황을 고용노동부에서 수수방관하고 있다”며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엄벌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복수노조 시행 이후 설립된 노동조합 60%가 사용자로부터 직·간접적 지원을 받는 회사노조라는 사실을 언급했다. 이들은 “최근 법원에서 복수노조를 수단으로 민주노조를 고립시키고 와해하는 부당노동행위를 처벌하고, 노조설립을 무효로 하는 판결을 지속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양판지 청주공장 전경 © 김다솜 기자
대양판지 청주공장 전경 © 김다솜 기자

또한 △150곳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집중 감독 뒤 법 위반 확인 시 즉시 입건 △노조 활동 방해 징후 포착 시 기획 수사 등을 통한 엄정 대응 △부당노동행위 수사매뉴얼 보급 △지방고용노동청 전담반 편성 △현행 2년 이하 징역 및 2,000만 원 이하 벌금 규정 강화 추진 등 부당노동행위 근절 주요 대책을 상기시켰다. 

이태진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노동안전부장은 "한국노총 노조위원장과 김훈 지회장이 통화한 내용을 들어보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며 "이게 정상적인 노사 관계고, 정상적인 회사 운영인지 그리고 고용노동부는 왜 아무것도 안 했는지를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고용노동부 청주지청에서는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고, 수사할 계획이다. 최기용 고용노동부 청주지청 근로개선지도1과장은 “복수노조가 됐을 때 노동조합 간 갈등이나 분쟁들이 지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부당노동행위가 큰 문제인 만큼 발견되면 엄중히 수사해서 처리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 김다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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