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에 걸린 하늘이 약을 올린다. 언제 저렇게 연한 쪽빛이 번졌을까. 살포시 내려앉은 하늘은 유난히 샛말갛다. 금방이라도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하늘에 뽀얗게 일어난 구름이 흘러간다. 찬 기운 몰아낸 바람이 이제야 한가롭게 노니는 모양이겠지. 따뜻한 창에 이마를 대고 들여다본다. 멀리 산책로의 나무들은 묵은 때를 벗었는지 싱그럽다. 이맘쯤이면 어린 아이 속눈썹 닮은 산수유 꽃이 노랗게 피었을 텐데. 창 너머 그려진 풍경을 보고 매칼없이 한숨이다.

사진제공:윤 정
사진제공:윤 정

또록또록 야무지게 돋아난 새싹 구경에 몸달은지 여러 날이다. 몇 발짝 나서 볼까 충동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핸드폰은 재난문자를 알리느라 연신 바쁘다. 텔레비전에서도 긴급한 상황을 보도하는 뉴스로 매일이 떠들썩하다. 코로나19로 전국이 몸살을 앓는 중이인데 혼자만 봄맞이 못한 듯 풀이 죽어 있다니. 혹시나 감염되지 않을까,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외출을 자제한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닐 텐데.

 

집에만 있자니 우울감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불안과 두려움에 압도당한 모양으로 일상은 푹 짜부라든 느낌이다. 매사 귀찮다는 생각은 무기력한 감정으로 떨어뜨리기 십상인데 말이다. 손소독제를 챙기고 마스크를 꼼꼼히 쓴다. 자신을 위한 조치이기도 하지만 타인에 대한 심리적 배려의 의미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밀집된 공간이 아니라면 사회적 거리를 두고 활동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언제 끝날지 모를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봄이라는 백신 한 방 맞아야지. 마음에 면역력을 키우기 위한 방법이고말고. 갖다 붙일 핑계를 만든다. 짧은 산책 정도는 괜찮지 싶어서다.

 

한적한 산책길을 따라 걷는다. 좁고 얕은 하천은 어느새 녹았다. 봄물 소리가 가볍다. 발걸음이 빨라질 수밖에 없다. 분가루처럼 흩날리는 봄볕에 착잡했던 기분도 풀어진다. 솜털 보송보송한 꽃망울이 새초롬하게 삐져나와 있다. 물 오른 나뭇가지가 그늘을 드리우 듯 둥글게 휘어진다.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무른 흙 위로 쑥이 돋아나 있다. 작고 연한 잎에서 연초록 향기가 나는 것만 같다. 문 밖으로 몇 걸음 떼었을 뿐인데 낯선 나라에 온 것처럼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난생 처음 봄을 맞이하는가. 자연의 시계에 맞춰 돌아온 봄이건만 올해는 왠지 유다르다. 새롭고 생경한 느낌이라고 해야 맞을까. 밝고 따뜻한 계절이 돌아오리라 기대가 없었던 모양이다.

 

왜 아니겠나. 느닷없는 코로나19 사태로 일상은 제한되고 단순해졌지만 전 국민의 속내는 어느 때보다 초조하고 복잡했다. 겨우내 긴박한 상황을 접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온종일 비난과 조롱의 댓글을 보아야만 했고 거짓 뉴스에 시달렸다. 잔뜩 꺼진 경제도 경제거니와 달라진 생활 반경에 적응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마음 졸이다 하릴없이 시간만 보낸 건 아닌지, 격리된 일상만큼 시간을 허투루 쓴 건 아닌지 아쉬워하던 차였다. 걱정만하다 지금 지키고 찾을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놓치지 않았나 싶다.

 

무사하던 일상의 소중함, 이미 알고 있던 주변의 변화에 얼마나 무지했는지 짧은 산책 끝에 깨닫는다. 잠시 멈춘 일상에 고단하지만 불평하기보다 소원했던 주변을 살피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만들어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사나운 시절을 이겨낸 봄볕에 마음 구석구석을 들킨 듯하다.

 

모두에게 더없이 아깝고 야속한 시절이지만 언젠가는 지나간다.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마음만 잃지 않는다면 바쁘고 활기찬 일상은 우리 곁으로 돌아 올 것이다.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움트는 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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