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간 휴게 보장됐지만 ‘쪼개기휴게’로 근무할 수밖에 없어
“화장실에 간이침대 놓고 휴식하라니”…열악한 환경지적
대기업이 경비·청소용역업까지 진출?…“정말 괜찮은가?”
“10시간 중 5시간은 근로시간으로 인정하라” 주장

현대C&R 퇴직자들과 장그래노동조합, 노무법인 측은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C&R의 노동행태가 인권탄압, 임금착취라고 주장했다.
현대C&R 퇴직자들과 장그래노동조합, 노무법인 측은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C&R의 노동행태가 인권탄압, 임금착취라고 주장했다.

현대C&R로부터 일자리를 소개받아 진천 서한산업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했던 이들이 수 년 동안 휴게시간을 보장받지 못했고 휴게환경 또한 매우 열악했다고 폭로했다. 이들은 쪼개기 휴게시간으로 휴게시간에도 사실상 일을 할 수밖에 없었고 화장실에 간이침대를 놓고 쉬거나 방음이 전혀 안 되는 경비실 한켠에서 졸 수 밖에 없었다며 현대C&R은 휴게시간에 일한 급여를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오 모 씨와 권 모 씨, 조 모 씨, 장그래노동조합, 노무법인 측은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C&R의 노동행태가 인권탄압, 임금착취라고 주장했다. 또 경비용역업에서 대기업인 현대C&R의 철수, 고용노동부의 현대C&R 특별근로감독 실시 등을 요구했다. 청주시 지역구에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 후보들에게도 이러한 내용을 공개질의해 노동인권감수성을 확인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대기업 소개로 경비 업무 시작

2012년 8월, 청주시 용암동에 사는 오 모 씨는 생활정보지를 통해 현대C&R의 경비원 모집광고를 보게 된다. 20여 년 동안 다니던 국영기업이 민영화되면서 명퇴를 당한 직후였다. 오십 평생 경비일은 한 번도 해 본적도, 생각해 본적도 없었지만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있었기에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물론 현대C&R이라는 기업은 생소했다. 그래도 (주)현대해상화재보험에 뿌리를 두고 있고, 대한민국에서 내노라하는 대기업, 현대계열사니 당연히 좋겠거니 했다. 무사히 서류와 면접을 통과했고 오 씨는 현대C&R이 소개시켜준 진천군 덕산면에 위치한 서한산업(주)에서 경비업무를 시작하게 된다.

현대C&R에 입사했는데 실제 근무한 곳은 진천에 있는 서한산업이라니 의아하겠지만 현대C&R은 오 씨에게 일자리를 소개시켜주는 일종의 ‘용역회사’ 역할을 했다. 오 씨는 현대C&R과 고용관계를 맺고, 현대C&R에서 급여를 받았지만 경비업무는 서한사업 지휘아래 7년 동안 이어진 것이다. 오 씨와 같은 고용관계를 맺은 이들은 서한산업에만 20명이 넘는다.

 

제대로 쉴 수 없었던 휴게시간

오 씨는 2인 24시간 교대근무를 했다. 아침 8시에 출근해 다음날 아침 8시까지 근무하고, 또 그 다음날 오전 8시에 다시 출근하는 방식이다. 24시간 동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은 총 10시간(2015년까지는 9시간)이고, 한 달 급여는 2019년 기준 231만 7220원이다.

오 씨는 지난해 12월 31일자로 서한산업을 그만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현대C&R을 그만뒀다. 매년 해오던 현대C&R과 1년 근로계약이 종료됐고 재계약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 12월 31일을 기준으로 현대C&R을 그만둔 사람은 오 씨 이외에도 권 씨, 조 씨 이렇게 두 명이 더 있다. 그들 또한 현대C&R소속으로 서한산업에서 4~5년 동안 경비원으로 일했다.

그들은 그동안의 억울함을 토로하며 개선을 촉구했다. 그동안은 '짤릴까봐' 두려워 이의제기를 못했으나 막상 그만두고 보니 정말 억울하고 문제가 많다고 주장했다.

“10시간 쉬었으니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고 하는데 실제론 전혀 그렇지 않아요. 휴게시간에도 늘 일을 했었고 휴게 공간도 도저히 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어요. 화장실에 간이침대를 놓고 휴식을 취하라고 하지 않나, 휴게시간에 점퍼를 벗었다고 시말서를 쓰라고 하지 않나, 휴게시간에 양말도 못 벗게 해요. 말이 휴게지 휴게가 아닙니다.”

 

같은 일, 다른 급여

그들이 주장하는 문제를 요약하면 세 가지다. 우선 현대C&R의 임금착취, 쪼개기 휴게시간으로 보장받지 못하는 휴게, 열악한 휴게환경이다.

권 씨에 따르면 서한산업에서 2016년부터 미화업무를 하는 A씨 2016년도 한 달 급여는 163만원이었고, 2018년도 한 달 급여는 167만원이었다. 하지만 같은 미화담당자인 B씨의 2017년도 한 달 급여는 185만원이다. A씨와 B씨는 같은 일을 하는데도 급여에 있어서 20만원 정도 차이가 나는 것이다. 권 씨는 “A씨가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 A씨에게 알려줬다. 현대C&R에 요구하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내가 이런 말을 해서 미운털이 박힌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에 대해 A씨는 “다른 사람과 급여차이가 나는 것을 잘 몰랐다. 지금이라도 못 받은 것을 주면 좋겠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그냥 참아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쪼개기 휴게로 돈 못받고 근무"

또 다른 문제는 쪼개기 휴게시간으로 휴게시간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현대C&R이 제시한 휴게시간은 오전 9시~10시, 정오~오후 1시, 오후 5시~6시, 오후 8시~10시, 자정~새벽4시, 오전 6시~7시로 총 10시간이다. 강도연 노무사는 “휴게시간은 사용자의 지휘나 명령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시간을 말한다. 10시간을 휴게시간으로 할 것 같으면 근로자들은 24시간 중 14시간만 근무하고 집에 가서 자면 된다. 그러나 회사는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면서 휴게시간이라는 이유로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갑질 횡포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휴게시간에 경비업무를 했다는 증거물(색깔로 표시된 부분) (사진 제보자 제공)
휴게시간에 경비업무를 했다는 증거물(색깔로 표시된 부분) (사진 제보자 제공)

권 씨는 “휴게시간에 일을 했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예를 들어 밤12시부터 새벽4시까지는 휴게시간이지만 경비 한 명이 밤12시부터 1시까지 순찰을 돌아야 한다. 그 시간에 나머지 한명은 경비실을 지켜야 한다”라고 말했다.

서한산업의 휴게공간(사진 제보자 제공)
서한산업의 휴게공간(사진 제보자 제공)

 

소음·불빛에 그대로 노출, 키보다 작은 침대

열악한 휴게환경 또한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기자회견문에 따르면 회사는 휴게실을 제공했다고는 하나 불빛과 소음이 그대로 노출되어 도저히 잠을 잘 수 없고 간이침대가 있었지만 작아서 제대로 누울 수도 없었다는 것. 강 노무사는 “회사는 휴식을 위할 수 없는 공간을 제공하고 일방적으로 급여에서 휴게시간을 공제했다”고 강조했다.

7년간 경비업무를 한 오 씨는 열악한 휴게공간에 대해 화가 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 씨는 “2012년도 2공장에서는 선임자가 남자화장실 한켠에 간이침대를 놓고 쉬라고 했다. 냄새나고 더러워서 도저히 있을 수가 없어서 그냥 경비실 책상에 앉아서 졸았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어 “2013년도 이후 2공장에서는 기사방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문이 잠겨 있으면  근무자 옆에 간이침대를 놓고 쉬었다. 그런데 경비실 안에 소방시설이  있었고 오·작동으로 시시때때로 울려 도저히 쉴 수가 없었다. 특히 잘 때 옷도 못 벗게 한다. 작업복은 물론 양말도 못 벗는다. 휴게시간에 작업복을 벗었다는 이유로 시말서를 쓴 적도 있다. 근무복을 입은 상태에서 자라니 너무한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또 “상황이 그런데도 2018년도에는 10시간 동안 충분히 잘 쉬었다는 서류에 사인을 했다. 관리소장이 직접 와서 사인을 하라고 하는데 안할 수가 없었다”라고 전했다.

이들은 휴게시간 10시간 중 최소한 5시간은 근무시간으로 볼 수 있다며 급여지급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편 이와 관련 현대C&R 측은 “법적으로 처리한다는 것 이외에 밝힐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공공기관에서 판단을 내리는 대로 따를 생각이다. 책임이 있다면 책임을 지겠다. 다만 체불임금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회사 명예훼손과 관련해서는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