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벽돌 깨기 기사단]과 함께 읽는 세 번째 시간 시작할게요.

잠깐 우리 시 한 편 같이 감상하고 가요.

다양한 시선으로 돈키호테 함께 읽기
다양한 시선으로 돈키호테 함께 읽기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볼품없이 삐쩍 마른 늙은 말'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로시난테'가 되었다.

 

온 국민이 다 아는 김춘수 시인의 "꽃"이 돈키호테의 입에서 나왔다면 이렇게 바뀌지 않았을까 잠시 생각해봤습니다. 기사 소설에 빠져든 돈키호테가 온 세상을 모험하기로 마음먹은 후 나흘이나 걸리도록 심혈을 기울인 것이 바로 자기 말에게 "이름"을 지어 주는 것이었거든요.

'비록 피부병에 걸린 데다 값도 얼마 나가지 않으며 <온통 털과 뼈뿐>이라는 그 고넬라의 말보다도 더 많은 흠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그의 눈에는 알렉산더 대왕의 말 부세팔로나 엘 시드의 말 바비에카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해 보였다.' 본문 中

이런 흠 가득한 돈키호테의 말이 어떤 멋진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요?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로시난테'입니다.

로시난테 Rocin + ante. 

로시난테는 두 단어를 합친 단어인데요. <rocin>은 <여윈 말>이라는 뜻이고 <ante>는 <이전>이라는 뜻과 <무엇보다 뛰어난>이라는 뜻 이랍니다.

'모든 기억력과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이름을 지었다가 지우고 뺐다가 붙이고 다시 몽땅 없애기를 수없이 거듭한 끝에 <로시난테>라고 부르기로 했다. 보기에 이 이름이야말로 고상하고 부르기도 좋은 데다, 지금은 세상의 모든 말들 가운데 제일가는 이 말이 전에는 일개 평범한 말이었으며, 어쨌든 이는 지난 일이었다는 의미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문 中

이쯤 되면 세르반테스 작가님과 김춘수 시인님이 언제가 서로 만나 "이름을 지어 불러준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이지요?

이제 '돈키호테'라는 이름을 한번 볼게요. 우리에게 돈키호테는 하나의 대명사처럼 쓰이고 있는데요. '빈치 마을의 레오나르도'라는 뜻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냥 우리에게 '다빈치'로 불려지는 것처럼요.

돈키호테 Don Quijote

<Don>은 스페인에서 남자 이름 앞에 사용하는 경칭이래요. '~님', '~나리'정도로 봐야 할까요?<Quijote>는 '허벅지 안쪽 근육을 보호하기 위해 입던 갑옷'으로 '남성의 상징이 결코 약해지거나 풀이 죽거나 느슨해지지 않음을 의미(본문 주석 참고)'한다고 해요.

혹시 못 믿으실까봐...

여드레 걸려(로시난테 지을 때의 두배의 시간) 돈키호테가 스스로에게 지어준, 출간 이래 400년 동안이나 '용감무쌍하고 겁 없이 돌진하는 사람'들에게 쓰인 이 이름에 이런 뜻이 있다는 것 알고 계셨는지요?

이 이름의 숨은 뜻을 알고 나서는 전 이제 여성분들께는 돈키호테 같다는 말을 쓰기는 좀 머쓱할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돈키호테가 기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난 후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좀 더 명확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답니다. 나이가 쉰에 가까운, 그 시대엔 '노인'이라고 해도 이상할 바가 없는 남자였지만 돈키호테가 바라보는 자신은 '상남자'그 자체가 아니었을까요?

어떤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이 이름을 붙여 주는 것의 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서로 멀쩡한 이름을 두고 둘이서만 부르는 '애칭'을 만들기도 합니다. 서로를 '애칭'으로 부르면 둘은 서로 좋아 죽겠지만 옆에서 듣는 누군가는 손발이 오그라들기도 하지요. 부르는 그 둘에게만 의미 있는 단어이니까요.

우리 모임도 그랬던 것 같아요. 그냥 "돈키호테 독서모임"이었던 모임이 함께 책을 읽으며 돈키호테와 산초의 말투를 따라 하고 이야기 속에 같이 걸어 다니는 행인들처럼 동화되다 보니 "벽돌깨기 기사단"이라 이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하게 된 것이지요. 이름 속에는 벽돌만 한 책을 같이 읽는다는 의미도 있고 이 책을 함께 읽으면서 우리 안의 편견과 벽을 허물어 보고자 하는 의미도 담기게 된 것입니다. 언어가 주는 힘은 생각보다 강해서 저에게도 이 모임은 뭔가 다른 힘을 부여해주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돈키호테는 이런 경험을 누구보다 찐하게 한 사람일 겁니다. 모험 내내 그의 눈에는 로시난테는 용감하고 아름다운 말이었으며 자신은 1대 100도 가능한 젊고 매력 넘치는 용감한 기사였으니까요.

준비 하나 없이 출발했다가 첫 객주집에서 오만 사건을 다 겪은 돈키호테는 어쩌다 그 객주집 주인을 성주로 착각해 말도 안 되는 기사 서품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기대 가득한 모험을 출발하고는 그의 오지랖과 착각 가득한 행동들로 인해 결국 '폭풍처럼 빗발치는 매질'을 당하고 쓰러지고 맙니다. 사실 첫 모험부터 돈키호테는 영웅담 가득한 모험이 아닌 짠내 가득한 수기를 보여주는데요. 첫 모험에서 뼈저린 실패를 겪은 돈키호테는 집으로 돌아와 제대로 된 두 번째 모험을 기획하게 됩니다.

바로 그때 '산초'를 꼬시게 되지요.

돈키호테는 이웃에 사는 착한-이러한 표현을 가난한 사람에게 붙일 수 있다면 말이다-그러나 머리가 약간 모자라는 한 농부에게 간청했다. 돈키호테의 간절한 부탁과 설득과 약속으로 결국 이 가엾은 자는 돈키호테의 종자가 되어 집을 나가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돈키호테가 그에게 한 여러 가지 약속들 중 하나는, 만약 그가 기꺼이 자기를 따라나서 준다면 모험으로 아무리 못해도 어떤 섬을 얻게 되었을 때 그 섬을 다스리게 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본문 中

역사적인 콤비 돈키호테와 산초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착하지만 머리가 약간 모자라는(돈키호테의 평) 산초는 '섬'을 통째로 다스릴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 때문에 '기사 소설에 미친' 돈키호테를 포기하지 않고 곁을 지키게 됩니다. 그 둘의 첫 모험이 바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풍차 모험이고요. 800페이지에 달하는 돈키호테 1권 중 풍차 이야기는 달랑 한 장 정도에 해당하는 정말 짧은 에피소드입니다.

하지만 돈키호테와 산초가 함께 떠난 모험의 가장 첫 에피소드이지요. 둘이서 모험이 끝나면 나중에 꼭 섬을 주겠거니, 주면 받겠거니 이야기하며 걸어가다가 눈 앞에 펼쳐진 3~40개의 풍차를 보고 갑자기 돈키호테가 맛이 가버리거든요.

Gustave Doré가 1863년 프랑스판 돈키호테 책에 그려 넣은 풍차 모험에 대한 이미지
Gustave Doré가 1863년 프랑스판 돈키호테 책에 그려 넣은 풍차 모험에 대한 이미지

"친구 산초 판사여, 저기를 좀 보게! 서른 명이 넘는 어마어마한 거인들이 있네. 나는 싸워 저놈들을 몰살시킬 것이야. 그 전리품으로 부자가 될 걸세. 이것이야말로 정의의 싸움이며, 사악한 씨를 이 땅에서 없앰으로써 하느님께 크게 봉사하는 일인 게지"

"나리, 저기 보이는 것은 거인이 아닙니다요. 풍차입니다요. 팔로 보신 건 날개인데, 바람의 힘으로 돌아서 방아를 움직이죠."

"자네는 이런 모험을 도통 모르는 모양이구먼, 저건 거인이야. 겁이 나면 저만치 물러나서 기도나 하게. 그동안 나는 저놈들과 지금껏 보지 못한 맹렬한 싸움을 벌일 테니까." 본문 中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돈키호테 1권 800여 페이지 중 처음 60페이지 정도에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돈키호테 원작은 안 읽었어도 그의 이름을 아는 전 세계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힌 이미지는 바로 산초와 함께 떠난 첫날, 첫 모험 속에 담긴 모습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돈키호테는 우리가 떠올리는 '돈키호테'가 되어버렸습니다. 아직 이야기가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데 말이죠.

1955년 프랑스 주간지 Les Lettres Françaises에 실린 피카소의 그림. 돈키호테 1부 출간 350주년 기념.
1955년 프랑스 주간지 Les Lettres Françaises에 실린 피카소의 그림. 돈키호테 1부 출간 350주년 기념.

피카소가 남긴 이 드로잉이 우리가 돈키호테에 대해 갖게 된 전형적인 이미지를 대표하는 게 아닐까 해요. 왼쪽은 오동통한 산초와 당나귀, 오른쪽에는 당나귀보다 약해 보이는 로시난테와 깡마른 돈키호테의 모습이 풍차를 배경으로 그려져 있어요.

우리도 누군가에게 잠시 남긴 단편적인 단상이 우리를 정의하는 모든 것이 되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면접장에서 건 소개팅 자리에서 건 그런 일은 비일비재 하지요. 그 찰나의 순간의 이미지가 내가 가진 전부를 보여줄 수 없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지만요.

마찬가지로 돈키호테의 매력 또한 이 단 한 장의 이미지 속에 담긴 그 모습이 다가 아니랍니다! 돈키호테가 풍차 이후에 겪은 일도 상상초월이지만 사실은 그와 산초가 나눈 보석 같은 대화들과 모험 중 만난 사람들과 주고받는 '이야기'들이 800페이지 속에서 우리를 들었다 놨다 하거든요.

이 책에는 일반적인 책의 클라이맥스에서 한번 나올까 말까 한 대단한 이야기가 넘기는 페이지마다 수위를 더 하며 쫄깃쫄깃하게 새로이 펼쳐지는 매력이 있습니다. 이게 바로 돈키호테 원작의 묘미랍니다. 때문에 프랑스 인문학자 르네 지라르는 "「돈키호테」 이후에 쓰인 소설은 「돈키호테」를 다시 쓴 것이나 그 일부를 쓴 것이다."라고 평했는지 몰라요.

배꼽 잡고 웃게도 하고, 등에 서늘하게 소름도 돋고, 안타까워 눈물도 나는 돈키호테의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 제대로 같이 빠져보고 나만의 돈키호테의 이미지를 완성해보는 건 어떨까요?

-다음 이야기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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