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추천사와 작가소개
돈키호테 추천사와 작가소개

이야! 많이들 오셨네요. 아니, 어쩌다 '돈키호테' 원작이 궁금해지게 되신 건가요? 400년도 더 된 이야기인데 말이죠.

'벽돌 깨기 기사단'도 사실 비슷하답니다.

애들을 키우다 보니 어쩌다 아이들과 같이 책을 읽게 된 사람, 친구가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서 온 사람, 역사 공부를 아이들과 함께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 동화책을 아이들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 그냥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어서 온 사람, 이 시대를 향유하고 있는 청년 등 다양한 모습으로 살고 있던 사람들이 함께 '모인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지, 사실 엄청난 사명감으로 모이게 된 건 아니랍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야기하는 '고전'이 주는 힘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는 했어요. '고전'이 주는 '압박감(많은 평론가가 말하는 찬사들을 혹시 내가 느끼지 못할까 봐)'에 대해서는 주눅 들지 말고 우리가 읽어보고 우리의 눈높이로 이 책이 가진 가치를 이야기해보기로 했답니다. 혼자가 아니라서 훨씬 수월했어요. 웃긴 부분이 나오면 같이 웃고, 어려운 부분이 나오면 같이 투덜댈 수 있으니까요.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답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읽던 책의 구성이 아니었거든요.

그 시대 출판관행을 알 수 있는 원작의 책 구성
그 시대 출판관행을 알 수 있는 원작의 책 구성

사실 우리 기사단원들도 처음 책을 펼치고 살짝 멘붕이 왔었다는 걸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한 50페이지에 걸쳐 이런 출판 관행에 관련한 '문서'와도 같은 글들이 실려 있었으니까요. 저 혼자라면 그냥 건너뛰었을 텐데요. 모임에 나가서 이야기를 나눠야 하니 사실 더 꼼꼼하게 읽어보자고 자신을 격려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여기 안 읽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세르반테스 작가님이 이 책을 낼 때 어떤 상황이었는지, 이 책에 나온 여러 풍자가 누구한테 보내는 메시지였는지 이 부분을 건너뛰었다면 절대 몰랐을 거니까요.

우리 세르반테스 작가님은 돈키호테를 출간하기 전까지 몇 번 짧은 소설과 시를 쓴 적은 있었지만 그리 지명도가 있는 작가는 아니었던 듯합니다. 그 당시 스페인 국민극을 꽉 잡고 있던 작가는 바로 오른쪽 사진의 로페 데 베가였거든요.

세르반테스는 자기보다 열네 살이나 어린 이 로페 때문에 그 시대 출판 관행에서 책을 좀 있어 보이게 해 줄 '시'를 써 줄 작가나 유명인을 하나도 구하지 못하는 불운을 얻게 된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사전 마케팅에 실패하게 된 거지요.

사연인즉슨, 세르반테스는 자신보다 어린 로페의 재능을 칭송하는 시도 두 편이나 쓰고 그의 문학적 천재성을 예술의 신 아폴론에게 비유해 드높여주기까지 했는데요. 전쟁 포로에 노예생활에 감옥살이까지 한 세르반테스가 로페는 영 맘에 들지 않았나 봐요.

로페는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출판하기 위해 작품을 칭송하는 시를 써줄 사람을 구하러 다닌다는 소문을 듣고는 사적인 편지에 "세르반테스보다 나쁜 시인은 없고 돈키호테를 찬양할 바보도 없다"라는 내용을 썼고, 안타깝게도 이 글이 빠른 속도로 유포가 되어버렸다는 겁니다.

당대 최고의 작가가 세르반테스와 그의 작품을 이따위로 평가했으니 누가 그를 위해 글을 써 주겠습니까?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세르반테스는 결단을 내립니다. 아예 책의 '서문'에 자신은 이 책의 출판에 앞서 책을 빛내 줄 추천 글을 누구에게도 얻지 못했고 그래서 이 책의 출간을 포기하려 했는데 그때 "재미있고 명철한 친구"가 와서 자신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었고 그 이야기로 서문을 대신한다고 말입니다.

추천글 따위 없다고 걱정하지 말고 어서 이 세상에 책을 내라고 말해준 이 친구(누구겠어요...)는 당당하게 현시대 문학을 주름잡은 작가 중에는 말도 안 되는 허례허식으로 독자들의 눈을 멀게 하는 작가들(로페 들으라고 한 얘기)이 있고 그들이 쓴 작품(로페가 쓴 작품 예시로 들어서)에는 말도 안 되는 문제점들이 있으니 오히려 개의치 말고 소신껏 글을 쓰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고 말입니다.

저는 사실 스페인 역사를 잘 알지는 못해요. 이 책이 출간될 무렵의 스페인의 상황이나 문학사적 사건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출판을 앞두고 이런 전국적으로 억울할 만한 상황에서 세르반테스가 한 대범한 행동에는 웃음이 절로 나오고 감탄사가 새어 나왔습니다.

 

「사실 자네가 필요하다고 말한 그런 것들이(소네트, 주석, 인용문 등...) 자네 책에는 하나도 필요치 않네. 자네 책은 기사소설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니 말일세.」 서문 中

「자네 책이 이 세상과 속인들 사이에서 차고 넘치며 권위를 갖는 기사 소설을 무너뜨리는데 목적을 둔 것이라면 굳이 철학자의 금언이나 성경의 충고나 시인들의 우화나 수사학자들의 문장이나 성자들의 기적을 구걸하고 다닐 필요가 없지 않은가.」 서문 中

이렇듯 혼자서 꿋꿋하게 출간된 「돈키호테」는 출간 전 겪었던 어려움과는 달리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됩니다. 오죽하면 펠리페 3세가 순찰을 나갔다가 어떤 남자가 눈물을 줄줄 흘릴 정도로 격하게 웃고 있는 것을 보고는 "저 남자는 미쳤거나 아니면 돈키호테를 읽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이 전해질 정도이니까요.

이미 스페인에서 기사 소설은 전국을 강타한 주류 인기 문학이 되어 있었지만 세르반테스의 눈에는 말도 안 되는 부분들이 많았던 모양이에요. 비슷비슷한 이야기 패턴 속에 주인공 인물들의 특징만 조금씩 바꿔도 새 책이 되어 버리고, 말도 안 되는 묘사와 도무지 뜻을 알 수 없는 표현들이 그럴싸한 운율만 맞으면 문학사적으로 대단한 표현을 창작해 낸 마냥 쓰이곤 했나 봅니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 책 속에서 이런 기존의 문학사적 흐름을 풍자하고 비난합니다.

그런데 그 표현들이 너무 웃겨서 "벽돌 깨기 기사단"도 전염이 되고 말았어요. 

돈키호테가 식음을 전폐하고 빠져든 기사 소설을 구절구절 예시를 들어 풍자하며 소개하는데 그 표현들이 얼마나 길고 어렵고 어찌나 알아들을 수가 없는지...

 

「문장이 확실하면서도 얽히고설킨 그 이야기들이 그에게는 주옥같이 느껴졌으며, 사랑의 밀어나 도전장을 읽을 때면 그 정도가 더 했다. <나의 이성을 만든 비이성적 이성은 그토록 내 이성을 약하게 하고 이렇게 그대의 아름다움을 불평한다>라든가, <별들로 그대의 신성함을 신성하며 강하게 하고, 그대의 위대함을 그대에게 마땅하게 하는 드높은 하늘> 등이 그러했다.

이러한 문장들 때문에 이 가여운 기사는(돈키호테) 정신을 잃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단지 이 일만을 위해 부활한다 할지라도 그 뜻을 캐내거나 이해하지 못할 그러한 것들의 뜻을 캐내고 이해하기 위해 밤을 지새우곤 했는데.... 중략」

 

이 부분을 읽는데 어찌 박장대소하지 않을 수가 있겠냐구요. 그래서일까요? '벽돌 깨기 기사단'의 단체 톡방에서는 책 속 표현들에 전염된 사람들이 속출했답니다.

도너츠를 빼고 감사 인사를 한 자신을 비난하는 기사단①
기사단①의 문장력을 칭송하는 기사단②
기사단①의 문장력을 칭송하는 기사단②
기사단②의 명문을 칭송하는 기사단③과 ④
기사단②의 명문을 칭송하는 기사단③과 ④

이렇게 우리 '벽돌 깨기 기사단'은 서서히 세르반테스 작가님이 깔아 놓은 떡밥을 하나도 빠짐없이 맛있게 주워 먹으며 돈키호테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었답니다. 웃기라고 쓴 부분에는 실컷 웃어주고, 어렵고 수준 높아 보이려고 풍자하며 쓴 글에는 실컷 '당신 잘났소!' 해주며 글을 읽다 보니 어느새 그 시대 라만차 마을에 걸어 다니는 행인 중 하나라도 될 만큼 돈키호테와 산초와의 거리가 좁혀졌습니다.

이렇게 "벽돌 깨기 기사단"은 「돈키호테」를 함께 읽어 나갔습니다. 모두 같은 구간을 읽었지만 가장 마음에 남는 부분은 달랐고 그 이유도 가지각색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다양한 관점들을 함께 이야기하고 공감하며 우리 안에 있는 또 다른 한계를 조금씩 허물어 갔습니다.

그 이야기 계속 들려드릴게요.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