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선도그룹 필요하지만 정작 학생들은 외면
교사도 ‘힘들다’ 토로, “기능반 왜 하는지 나도 몰라”
메달 따면 대기업 취업보장?…하청업체 취업 다반사
메달에 목숨걸기보다 취업에 도움되는 방향으로 변화

지난해 부산에서 열린 ‘제 54회 전국기능경기대회’ 참가자 모습(사진 충북도청 제공)
지난해 부산에서 열린 ‘제 54회 전국기능경기대회’ 참가자 모습(사진 충북도청 제공)

한때 ‘숙련기술 교육의 꽃’이라 불리며 칭송받았던 특성화고등학교 기능반의 위상이 변화하고 있다. 학생 수 감소, 과거보다 저조한 대기업 취업률, 강도 높은 훈련을 거부하는 사회적 분위기, 부족한 기능반 지원금 등으로 예전보다 그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는 것. 특히 군 단위 소규모 학교에서는 대회에 나가는 소수의 학생만을 대상으로 운영할 뿐,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소수 엘리트교육', ‘메달지상주의교육'에서 벗어나 보다 많은 학생들에게 취업과 실력향상 등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제적 브랜드 가치향상’ 목표로 55년째 개최

매년 한국산업인력공단이 개최하는 전국·지방기능대회는 ‘숙련기술의 수준을 높이고 기술선진국으로서의 국제적 브랜드 가치향상’을 목표로 55년째 열리고 있다. 전국·지방기능대회에서 금·은·동 메달을 수상한 선수들은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지난해 부산에서 열린 ‘제 54회 전국기능경기대회’에는 50직종 1800여명의 선수들이 참가했다.

선수들의 대다수는 특성화고 학생들이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참가자 중 특성화고 학생들은 1400여명에 이른다. 400여명은 인문계고 학생과 일반인이다. 

충북 대다수 특성화고에서도 대회 출전을 위한 기능반이 운영되고 있다. 26개교 특성화고(마이스터고 포함) 가운데 기능반이 운영되고 있는 학교는 16개교다. 각 학교는 전공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직종을 선택, 많게는 20~30명, 작게는 2~3명이 소속돼 있는 기능반을 운영하고 있다. 기능반에 소속된 학생들은 평일 방과 후는 물론, 주말과 방학에도 지방·전국대회 입상을 위해 훈련을 하고 있다. 

지난해 열린 전국기능경기대회에 충북에서는 100여명(특성화고 학생 70명생)의 선수들이 참가, 금메달 2개, 은메달 7개, 동메달 7개, 우수상 9개, 장려상 17개를 수상해 전국 7위를 기록했다.

 

“굳이 해야 하나요?”

학생 수 감소, 저조한 대기업 취업률, 강도 높은 훈련을 거부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특성화고 기능반의 인기가 점점 추락하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작성한 지방기능대회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충북기능대회 참가자는 2019년 35개 직종 184명으로, 2015년 400명에 비해 50%이상 크게 감소했다. 출생률 감소로 학생 수 자체가 감소(2015년에 비해 2019년 특성화고 학생수 4000여명 감소)한 것을 감안하더라도 대회 참가인원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충북지역 특성화고에서 기능반을 지도하고 있는 A씨는 “요즘 학생들은 기능반을 선호하지 않는다. 힘든 훈련과정을 견뎌야 하고 취업이 예전만큼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공무원 시험이나 대학에 가고자 하는 학생들이 늘어 실기보다는 이론공부를 우선시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지도교사 B씨도 “기능대회에서 메달을 땄다고 해서 모든 학생들이 다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직종마다 다르다. 전기직종은 심화과정을 통해 대기업 취업도 가능하지만 대다수 직종은  대기업에서 그 직종을 아예 뽑지 않기 때문에 어렵다. 대기업 하청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전부인 직종도 많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학생들로부터 기능반은 외면받고 있는 실정이다. 충북 특성화고에 재학하고 있는 한 학생은 “학기 초에 일주일동안 기능반을 했었는데 너무 오래해서 그만뒀다”며 “선배들을 보니 취업이 잘되는 것 같지도 않고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능반의 외면은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한 교사는 “교사들 사이에서도 기능반은 안 하려고 하는 분위기다. 다른 업무도 많은데 기능반은 시간적으로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온갖 정성을 다 들여도 메달은 딸까말까다. 기능반 학생들이 취업과 관련해서 혜택을 받는 것도 없고 솔직히 왜 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터무니없이 부족한 지원금

부족한 지원금도 기능반 인기 하락에 한몫을 하고 있다.

각 학교의 기능반 운영은 충북도교육청, 충북도, 중소기업청 등의 지원금으로 운영된다. 충북도교육청은 올해 특성화고 기능반 운영을 위해 5억 200만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충북도에서도 4억 9500만원을 책정해 놓고 있다. 도교육청과 도의 지원금은 주로 재료비와 간식비로 사용되는데 인원수, 종목별로 기준을 세워 나눠 지급된다.

관계자들은 지원금과 관련, 공통적으로 터무니없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재료비를 학생들이 부담해 운영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일부 외곽지역 학교는 밤늦게 귀가하는 학생들 교통비가 없어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한 관계자는 “저녁까지 훈련을 하려면 저녁식사를 제공해야 하는데 도교육청이나 도청에서 나오는 지원금은 대부분 재료비로 충당된다. 중기청 등에 사업비를 신청해 운영하고 있다. 모든 아이들이 참여하는 동아리 운영을 하고 싶어도 운영비가 없어서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일반학생들에게 확대 시도 

기능반에 대한 인식이 이렇다보니 '명장을 키워 기술선진국으로서 국제적 브랜드 가치를 높인다'는 기능반의 역할이 변화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청주공고 등 일부 특성화고는 기존 대회 출전과 메달만을 목표로 운영되던 기능반에서 보다 많은 학생들이 취업시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능반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청주공고는 지난해 전공과와 직접 연계되지 않은 대회출전용 직종을 폐지했다. 또 대회와는 상관없이 기능훈련을 익히려는 학생들(50~60명)에게 숙련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50~60명의 학생들은 대회에 나가는 학생들처럼 주말이나 방학 때 훈련을 하지는 않지만 수업을 마치고 방과 후에 기능기술을 전수받는다.

청주공고의 이상덕 교사는 “기능반 학생들은 일반 학생들에 비해 취업이 잘되는 편이다. 청주공고 기능반은 꼭 대회를 위해서가 아니라 기능을 익히려는 모든 학생들에게 열려 있다"며 "대회출전을 목적으로 형성된 기능반 학생들이 또래집단을 형성, 일반학생들에게 그 기능을 다시 전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이어 "기능반은 기술 선도그룹으로써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보다 많은 학생들이 실력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면 당연히 취업도 잘 될 것이다. 기능반이 특성화고의 선순환구조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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