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준의 위태로운 하루] 대한민국의 중심, 행복한 도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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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준의 위태로운 하루] 대한민국의 중심, 행복한 도시는 없다
  • 박윤준
  • 승인 2020.02.10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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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위한 자리는 있고, '삶'을 위한 자리는 없다

십년 전 서울 서대문구 어느 다리 밑에서 자신이 "예수"라고 소개하는 전단지를 본 적이 있다. 그 당시 국내엔 자칭 예수 혹은 하나님이라 하는 자들이 꽤 여럿이 있었는데, 신학생이었던 나는 종교계의 블랙코미디 정도로만 여겼다.

바야흐로 2020년. 하나님이 까불면 목사에게 죽는다는 말을 광장에서 듣는 신인평등시대(?)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신화가 있으니, 그것은 "대한민국 중심"설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우리 지역이 대한민국의 중심이다"라고 표어를 내걸며 홍보하고 있는데, 간추린 결과 충북 충주시와 음성군 그리고 경북 상주시가 "대한민국의 중심"을 자처하고 있는 대표적인 도시다.

태풍의 눈처럼 허허로운 진실은 "도시의 침체"를 넘어서 "삶의 소멸"에 이르고 있는 지역의 생활조건이다. 이 공허한 지역들은 서울과 수도권으로부터 기울여져 내려오는 신자유주의 시장의 잔해들을 불가항력으로 받아들이며 도시의 수명을 연장하고 있다.

음성군은 90년대 이후 무려 16개의 산업단지를 조성했고 현재 5개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국내로 따져도 최대 규모다. 가히 도시가 커다란 제조공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청년인구가 타지역으로 빠지고 노령사회로 접어들어 일할 사람이 마땅치 않다. 60대 이상의 주민들과 객지에서 왔다가 주말이면 돌아가는 이들 그리고 해외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그 수요를 가까스로 메꾸고 있는 실정이다. 

음성군 금왕읍 시내를 돌아다니다보면 중국, 베트남, 필리핀, 태국, 방글라데시, 인도,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등지에서 온 외국인들을 만날 수 있다. 나의 경우 동네 빨래방에서 그들을 주로 마주친다. 현지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들도 늘어 서울에서 온 동생은 "리얼 이태원"이라며 엄지를 들었다.

실제로 음성군에 거주하는 이주민의 수는 약 1만명으로 음성군 전체 인구의 10% 이상이고, 전국 82개 군 단위에서 가장 많은 수다. 이중 절반이 고용허가제를 통해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이고 집계 되지 않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주민"과 "노동자"로 보호 받지 못한 채 이 지역에 깃들어 살고 있다.

무분별한 산단 조성과 기업 유치, 공장 인허가는 무분별한 도로 건설로 이어졌다. 아파트 단지 앞 인도는 만들지 않아도, 산업단지와 도시를 연결시키기 위한 도로는 산을 깎아서라도 만든다. 도로 위에서 고라니와 개와 고양이들의 사체를 보는 일이 일상이 된지는 오래다. 갓길 위를 걷다가 화물차가 어깨 옆을 쌩쌩 지나칠 때면 인간 고라니가 된 거 같다. 인도를 건설해달라고 수차례 민원을 넣었지만 공사 예정이라는 대답뿐이었다. 자전거 도로는 꿈도 꾸지 못한다.

그뿐만 아니다. 정부가 산업폐기물 처리를 민간에 위탁하면서 음성군은 국내에 "괜찮은 쓰레기장"이 되었다. 작년 한 해에도 전국에서 몰려온 산업폐기물 위탁업자들이 산기슭에, 창고에 폐기물들을 무단으로 버렸다. 작년 1월 400톤의 지정폐기물을 유촌리에 투기한 사건을 주만들은 잊을 수 없다.

산단이 들어서면서 산업폐기물은 자연스럽게 같이 생겨난다. 관련법에 따르면 연간 폐기물량과 조성면적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산단 내 자체 폐기물 시설을 설치하도록 되어 있다. 문제는 환경청의 허가가 있을 경우 외부폐기물 반입이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금왕테크노밸리 폐기물매립장에 이어 얼마전 성본산단 폐기물매립장 설치가 가시화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쓰레기장을 자처하며 나서고 있는 꼴이다. 

이처럼 산업단지 중심의 도시계획이 가져다 준 것은 환경 오염과 망가진 도시 경관, 대상화(도구화) 된 노동의 폭증, 그로 인한 노동인권 침해다. 저녁이 있는 삶과 함께 정치적인 삶 또한 사라졌다. 행정, 예산을 감시하는 주권자는 전무하다시피 하고 다수가 노동에 종사하는 손님들, 이방인들이다.

"대한민국의 중심 행복한 음성". 조병옥 음성 군수가 민선 7기를 시작하며 내건 표어다. 그 대한민국의 중심에는 다국적 노동자들과 고령의 노동자들이 공장을 돌리느라 땀 흘려 일하고 있고, 전국 각지의 폐기물들이 산단 내로 들어오고 있다. 쓰레기를 옮길 도로는 있는데 사람이 걸어다닐 인도는 없다. 쓰레기를 위한 자리는 있으나 삶을 위한 자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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