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민간인 200여명 학살된 도장골, 댐 공사로 파헤쳐져
유족이 청주시장·도지사 고소했지만 법원은 ‘고의성’없다며 기각
공사중지가처분신청결과 기다리는 6개월 동안 댐 공사 이미 ‘끝’
“위령비라도 세워주세요” 문 대통령께 의견 전달 위해 서명운동

청주형무소평화유족회는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사법부의 반인륜적 반인도적 반민족적 반역사적 과오를 규탄한다며 이러한 내용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알리겠다고 주장했다.
청주형무소평화유족회는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사법부의 반인륜적 반인도적 반민족적 반역사적 과오를 규탄한다며 이러한 내용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알리겠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3월 청주시 낭성면 도장골(청주시 청원군 낭성면 호정리 산 22번지)을 방문한 청주형무소평화유족회(이하 유족회) 회원들은 느닷없는 광경에 깜짝 놀랐다. 보은군 아곡리 충북 보도연맹 학살현장을 취재하러 온 MBC 기자의 요청으로 우연히 도장골을 방문했는데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1950년 홍가륵 선생 등 다수의 독립운동가를 포함해 청주형무소 재소자 200여명이 무참히 학살돼 묻혀 있는 도장골. 나무는 잘려나가고 땅은 군데군데 1미터 이상 파헤쳐졌으며 잘려진 나무는 곳곳에 수북이 쌓여있다.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은 쉴 새 없이 들락거리며 먼지를 일으킨다.

“지난번 왔을 때만 해도 멀쩡했었는데 아니 이게 무슨 일이지? 봉분이 세 개나 있었는데…”

'민간인 집단 희생지이므로 함부로 훼손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쓰여있는 표지판이 찌그러져 쓰러져 있다.
'민간인 집단 희생지이므로 함부로 훼손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쓰여있는 표지판이 찌그러져 쓰러져 있다.
지난해 3월 도장골 사방댐 공사 현장

‘민간인 집단 희생지이므로 함부로 훼손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라는 표지판은 언제 찌그러졌는지 구석에 쳐박혀 있다. 황망함에 눈물이 난다.

당황한 유족들은 곧장 청주시, 충북도를 연이어 방문하고 어떻게 된 사연인지 따져 물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명확한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홍수로 피해를 입은 인근주민이 민원을 제기해 사방댐 공사를 하는 것이라는 말뿐. 벌목공사를 허가해준 청주시, 사방댐 공사를 허가해준 충북도, 공사를 직접 담당한 산림환경연구소와 청주산림조합은 책임을 미룬다.

도장골이 파헤쳐진 사건은 이렇게 지난해 3월 MBC 기자 ‘덕’에 우연히 세상에 알려졌다.

청주형무소평화유족회는 지난해 5월 14일 한범덕 청주시장을 청주지방검찰청에 고소했다. 홍우영 유족회장이 고소장을 들고 있는 모습.
청주형무소평화유족회는 지난해 5월 14일 한범덕 청주시장을 청주지방검찰청에 고소했다. 홍우영 유족회장이 고소장을 들고 있는 모습.

민간인 학살지 파헤치는데 유족들한테 알리지도 않아

2017년 여름 홍수피해를 심하게 겪은 도장골 인근 주민은 사방댐 공사를 충북도에 요청했고 충북도는 산림환경연구소와 청주산림조합에 사방댐 건설 공사를 발주했다. 또 벌목을 하겠다는 땅주인의 요청을 청주시는 허가했고 청주산립조합은 이를 진행했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일들이 진행되는 동안 유가족 중 누구도 그 내용을 알지 못했다. 전화한통 받은 사람 없었다. 3월 우연히 공사사실을 알게 됐지만 이미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파헤쳐진 뒤였다.

분노한 유가족들은 지난해 3월부터 11월까지 9개월 동안 청주시와 충북도에 지속적으로 항의했다. 기자회견도 하고 공사중지가처분신청서와 한범덕 청주시장, 이시종 충북도지사 고소장을 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5월에 제출한 공사중지가처분신청은 12월이 다 되어서야 결과가 나오게 된다. 결과는 기각, 이유는 ‘소명 없음’이었다. 유가족들은 이에 반발해 고등법원에 항소했다.

이시종 충북도지사 고소건 또한 고소인을 조사한 경찰관의 불기소의견에 따라 검사도 불기소 의견을 냈고 결국엔 기각됐다. 이유는 ‘고의성 없음’이었다. 고의로 민간인 학살지를 파헤치지 않았다는 얘기다. 유가족들은 대전 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했지만 큰 기대를 걸고 있지는 않다고. 더욱이 고소비용도 유가족 측이 지불해야 한다는 내용도 함께 전달받았다. 유가족들은 그렇게 다시 한번 황망함을 견뎌야 했다.

현재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과 ‘재물손괴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청주지방검찰청에 고소한 한범덕 청주시장 고소건만 남았다. 청주지검에서 내린 기각결정에 불복해 대전고법에 항고한 상태다.

반인륜·반인도·반민족·반역사적 과오 규탄

청주형무소평화유족회(이하 유족회) 회원들은 지난 3일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마침내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부와 사법부의 반인륜적 반인도적 반민족적 반역사적 과오를 규탄한다며 이러한 내용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알리겠다고 주장했다.

유족회는 △정부의 진정어린 사과 △유해발굴과 함께 분묘복구, 위령비 등 설치 △과거사정리기본법개정안 통과와 미신청인에 대한 신속한 보상과 명예회복 △충북도지사와 청주시장, 관계공무원 감찰 등을 요구했다. 문재인 대통령께 이러한 내용을 직접 전달하기 위해 서명운동도 벌이기로 했다.

유족회 신경득 고문은 “70년 전에 국가에 의해 무참히 희생당한 독립운동가와 민간인들은 다시 한번 국가로부터, 또 법으로부터 외면당했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유해를 파헤쳐놓고 아무런 잘못이 없다니, 더욱이 고소비용까지 유가족들보고 지불하라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직면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상황이 됐다. 어떻게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상한 나라에 와 있는 기분이다”라며 울분을 토로했다.

또 홍우영 유족회장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우리 유가족들은 충북지사와 청주시장에게 진정어린 사과와 공사중지 및 유해발굴 수습을 요청하였으나 이를 무시한 채 공사를 진행하여 완료하고 유해발굴 수습을 할 수 없다는 공문을 보내왔다. 또 문제해결을 위해 소송을 하였으나 사법부는 각하와 기각을 일삼아 유가족의 가슴에 피멍을 들게 하였다”라고 주장했다.

 

“유족회 전화번호 몰라 공사 알리지 못했다”

유족회는 사방댐 공사와 공사중지가처분시청, 청주시장과 충북도지사 고소의 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선 사방댐 공사 공고 여부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장사법)’ 제26조에 따르면 장사시설을 폐지하려는 자는 3개월 이상의 기간을 정하여 △매장된 시신·유골의 연고자 △안치된 유골의 연고자 △자연장된 유골 골분의 연고자 △해당 장사시설의 사용 계약을 한 사람에게 장사시설이 폐지된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해당하는 사람을 알 수 없는 경우에는 그 사실을 공고하여야 한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사방댐 공사에 대해 어떠한 설명을 듣거나 공고를 볼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 청주시 한 관계자는 “공사 전 산림조합에 도장골이 희생지라는 사실을 알렸고 산림조합 관계자는 유족회 총무에게 전화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유족회 총무가 전화를 받지 않아 연락을 취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유족회는 특별한 활동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연락처를 알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유족회 측은 “한마디로 어이없다”는 입장이다. “전화번호는 조금만 관심이 있었으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연락처를 몰라 알리지 않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서로 “내 잘못 아냐” 주장

두 번째는 원활하지 않은 청주시와 산림환경연구소, 청주산림조합간의 소통이다.

청주시는 공사 전 민간인학살 희생지에 사방댐공사를 해도 되는지, 또 벌목공사를 해도 되는지 행안부에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주시 한 관계자는 “공사 전에 행안부에 문의를 했었다. 그때 행안부에서는 개발행위를 금지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했다. 다만 도장골이 민간인 희생지이기 때문에 안내표지판이 훼손되지 않도록 공사하라고 말을 들었다. 그래서 이 말을 산림환경연구소에 그대로 전달했다. 이후 산림환경연구소나 청주산림조합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조합측은 청주시와 상의한 후 공사일정을 결정했다고 하는데 저는 조합측과 연락한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청주산림조합은 청주시에서 허가를 해줘 공사를 했을 뿐 도장골이 유해지라는 것도 잘 몰랐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3월 청주산림조합 한 관계자는 “유해매장지라는 것을 청주시에서도, 조합에서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담당자가 바뀌는 바람에 인수인계가 잘 안 돼 전달이 안된 것 같다”라며 난감해했다.

청주형무소평화유족회 신경득 고문.
청주형무소평화유족회 신경득 고문.

이해할 수 없는 법원의 판결

유족회는 법원의 판결 또한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유족회에 따르면 공사중지가처분신청서를 지난 5월 법원에 제출했다. 하지만 판결은 신청한지 6개월이나 지난 11월 내려졌다. 그 사이 공사는 계속 진행됐고 판결이 날 당시에는 이미 공사가 완료돼 소명이 불가능해 기각됐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공사중지가처분신청이 시간이 걸리는 것은 맞지만 6개월이나 지난 이후에 판결이 난 것은 일반적인 경우보다 길어진 것 같다. 법원에서 긴급한 사안이라고 인지를 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시종 충북도지사 고소건도 마찬가지다.

유족회에 따르면 이시종 지사를 고소한 이후 유가족들은 상당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불기소의견을 내렸고 검사도 이에 따라 각하처리했다. 유족회는 즉각 항고를 했고 대전고법으로부터 한번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신경득 유족회 고문은 "대전고법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시종 도지사는 이 무덤을 파라는 직접적인 지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의성이 없고 그래서 기각을 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2008년 진실화해위원회과 청원군청은 도장골을 함부로 훼손하면 안된다고 푯말까지 세웠는데 청주시장과 충북지사가 이를 무시했다. 이 지사가 손가락으로 이 무덤을 파헤쳐라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기소처리했다니 어린애들 장난도 아니고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기가 막히다”라고 말했다. 

신경득 고문을 비롯해 유족회 측은 "충북도와 청주시는 결자해지 원칙에 따라 유해를 발굴하여 유해가 발견되든 안되든 희생지의 분묘를 복구하고 위령비, 위령시비, 제단 등을 설치하여 위령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청주시 관계자는 “대전에 전국단위 위령시설이 생길 예정이다. 산발적인 위령시설 조성은 어렵다”며 “발굴은 예산이 없어 할 수 없고 유족회에서 요구했던 안내표지판은 이미 지난 12월 설치했고 시굴예산(600만원)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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