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측 'SNS 사찰'에…스쿨미투 피해자는 세상과의 통로를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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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측 'SNS 사찰'에…스쿨미투 피해자는 세상과의 통로를 닫았다
  • 계희수 기자
  • 승인 2020.02.04 1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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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스쿨미투 잔혹사] 1부 스쿨미투, 교복을 벗고 법정에 서다
④ 'SNS 사찰'부터 정신과 병력 공격까지

지난해 9월 26일, 한 통의 메일이 왔습니다. "오랜만에 연락해 죄송하다"며, 아주 사려깊고 예의 있는 인사로 글은 시작됐습니다. 메일을 보낸 사람은 지난해 3월에 제가 인터뷰했던, 충북여중 스쿨미투 SNS 계정주인 A 학생이었습니다. 충북여중 스쿨미투는 지난 2018년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충북지역 학생들의 미투운동입니다. 학생들은 선생님과 학교의 (성)폭력을 낱낱이 고발했고, 일부는 경찰조사를 받거나 직위해제 됐습니다.

A는 법원으로부터 '증인소환장'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재판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막막하다고도 했습니다. 조금 미안했습니다. 여론의 눈이 쏠려있을 때만 찾고, 잠잠해지니 나 몰라라 한 것 같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A와 대화를 이어나갔을 때는 화가 났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을 받고자 떠오른 사람이 '기자'라니.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당한 일을 용기 내 고발한 학생이 처한 현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A와 재판 전 과정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법정에 선 A와 충북여중 스쿨미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전국 '스쿨미투'라는 이름 아래 벌어진 모든 일의 집약일 겁니다. 교육현장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충북여중 스쿨미투' 그 이후를 A와 함께 기록합니다. 

【이전 기사 링크】 
①충북여중 스쿨미투 교사, 징역 3년 구형에 "인륜 파괴" 운운
②미투 교사는 피고인석에서도 제자를 매섭게 다그쳤다
③"당신 딸은 연기 잘하는 페미" 스쿨미투 피해자는 마녀가 됐다

충북여중 스쿨미투 공론화 계정주 A의 아버지 앞으로 익명의 편지 두 통이 배달됐다. 편지를 사진으로 찍은 사진이다. ⓒA씨 제공
충북여중 스쿨미투 공론화 계정주 A의 아버지 앞으로 익명의 편지 두 통이 배달됐다. 두 통의 편지 분량을 합치면 17페이지나 된다. 편지를 사진으로 찍은 자료 ⓒA씨 제공

A의 아버지 앞으로 익명의 편지 두 통이 날라왔다. 편지는 A를 무력화하기 위한 근거 없는 비난과 명예훼손으로 가득했다. 보낸 사람은 스스로를 "충북여중 김 00 선생님의 제자들"이라고 소개했다.

김 모 교사는 지난 2018년 A를 비롯한 학생들에게 성추행 가해자로 고발당했다. 현재는 퇴직 후,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강제추행)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편지를 받았던 지난해 9월 경, A는 피해 사실을 증언하기 위해 김 교사의 재판 출석을 앞두고 있었다. 그에 대한 1심 선고는 2월 7일로 예정돼 있다.

편지 발신인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듯했다. 아버지는 A에게 편지와 증인소환장을 건네며 "네가 증인으로 안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A가 출석해 "있는 그대로 증언하겠다"는 의사를 꺾지 않자 아버지는 더욱 강하게 말렸다.

"이거 진짜 힘든 일이야. 학생이 교사라는 집단과 대적하는 게 한국에서 얼마나 큰일인 줄 알아? 넌 네 모든 것을 걸어야 될 수도 있어."

A의 아버지는 편지에 A가 SNS에 올린 정보들이 첨부돼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A가 올린 지극히 개인적인 근황이나 활동에 관련된 글, 사진이 편지에 담겨 있었다. SNS를 통해 관계를 맺은 사람들과 나눈 대화 내용, 대화를 나눈 사람이나 단체들의 신상까지 모두 편지 내용에 들어갔다. 소수의 친구들만 존재를 알던 SNS 계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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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의 아버지 앞으로 배달된 편지 내용 일부. 발신인은 A가 SNS에 올린 글과 A와 SNS 상에서 친구를 맺은 단체(한국여성의전화, 녹색당, 위티, 수낫수) 목록을 그대로 캡쳐해 편지에 첨부했다. ⓒA씨 제공

아버지는 처음에 A의 친구들을 의심했다. 아버지는 "너는 지금 친구들마저 적으로 두지 않았느냐. 친구가 네 SNS를 캡처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A가 스쿨미투 재판에 휘말려 외로운 싸움을 하지 않길 바란 것이다. A는 친구들을 믿었지만 마음속 한구석에 두려움이 스몄다. '혹시나'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편지 속 한 문장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 000는(A를 지칭) SNS 상에서 페미니스트이고 남성혐오적인 표현을 무척 많이 표현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었고 저희는 모두 캡처하여 두었습니다. 


"누가 SNS를 본 걸까"…세상과 소통하는 통로마저 단절했다

중학생이던 A는 성실했고 공부에 재능도 있었다. 친구가 부모보다 소중한 여느 중학생 중 하나였다. 충북여중 스쿨미투는 그런 A의 일상을 흔들었다. 더 참았다가는 또 다른 친구가, 후배가 피해를 입는다는 걸 A는 잘 알고 있었다.

A는 충북여중 스쿨미투 공론화 계정을 친구들과 함께 만들었다. 전국적으로 이슈가 돼 언론을 탔지만, 이내 관심에서 멀어졌다. 곧바로 "스쿨미투는 학교 망신"이라는 말이 학교 안을 떠돌다 A의 귀에 꽂혔다. 모든 걸 덮으려는 어른들과 맞서 싸우는 일이 힘에 부쳤다.

스쿨미투 고발 이듬해인 지난해, A는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같이 미투 운동을 했던 친구들은 각자 다른 학교와 학급으로 진학하면서 동력은 파편화됐다. A는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미투 운동 이후 A가 마주한 세계는 너무도 뒤틀려 있었다.

학교라는 공간은 A에게 너무 좁고 불편하고 또 폭력적이었다. 학교는 '친구가 있는 공간' 그 이상의 무엇도 아니었다. A는 고등학교 1학년 한 학기를 가까스로 넘기고 학교를 떠났다. SNS는 A를 세상과 이어주는 통로였다. 힘겨운 일상을 기록해 나가던 SNS는 그런 A가 허위미투를 했다는 증거로 쓰였다.

A는 친구들에게 "'혹시 네가 캡처한 거냐' 물어보지도 못했다"고 털어놨다. 친구들을 의심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A는 고민 끝에 "수신인이 보호자로 돼있는 발신인 불명의 편지를 받은 사람이 있느냐"고 SNS에 글을 올렸다. 친구 K에게 연락이 왔다. "엄마가 같은 편지를 받은 것 같다"고. A의 중학교 친구인 K와 또 다른 친구인 B의 부모 앞으로 각각 비슷한 내용의 편지가 간 것을 확인했다. 나머지 편지에는 A와 스쿨미투 운동을 함께 했던 B에 대한 비방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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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여중 김 모 교사는 지난 2018년 A를 비롯한 학생들에게 성추행 가해자로 고발당했다. 현재는 퇴직 후,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강제추행)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법원이 학생들에게 증인소환장을 보내자, 익명의 편지가 A와 친구들의 보호자 앞으로 도착했다. 김 교사에 대한 1심 선고는 2월 7일로 예정돼 있다. ⓒA씨, 청주지방법원 제공

A와 친구들은 공포심 때문에 한동안 잠들 수 없었다고 했다. SNS에 올리는 글을 자꾸 검열하기도 했다. A는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SNS 상에서 학교와 관련된 사람들과의 접점을 모두 끊었다.

A는 "저와 친구들의 부모님 앞으로 편지를 보내서, 우리에 대해 자극적인 말로 도배를 해놓고는 '아버님께서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셔야 됩니다'라고 하니까 당황스럽고 화도 많이 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피해자인데 왜 숨어야 하는지 너무 분했고, 내가 한 미투운동이 이렇게까지 욕먹을 일인가 싶었다"라고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스쿨미투' 마음고생에 정신과 다녔는데…

A는 스쿨미투 운동 이후 극심한 불안과 스트레스, 그리고 불면증에 시달렸다. 고발자 색출에 대한 압박 등 2차 가해가 심각했던 까닭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스쿨미투 괜히 했다"고, 아주 잠깐 후회하기도 했다. 가끔은 정신과에서 약을 타다 먹으며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A는 힘든 마음을 SNS에 기록하면서 긴 시간을 이겨냈다.

편지 발신인은 SNS를 통해 A가 정신과에 다닌 사실도 알아냈다. A가 스쿨미투 운동을 주도한 배경으로 '비정상적 정신 상태'를 내세우며 A를 공격한 것이다. 퀴어축제에 참여하거나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걸 두고도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활동을 한다며 문제시했다. 그러나 미투 운동 이전에 A는 정신과에 가본 적이 없었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에 대한 전형적인 혐오와 편견이 편지 내용에 투명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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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의 아버지 앞으로 배달된 편지 내용 일부 ⓒA씨 제공

특히 이 내용은 A의 친구 B의 어머니 앞으로 발송됐다. 발신인은 B의 어머니에게 "(A가) 이미 정상적인 정신 상태가 아니다"라며 미투 고발 내용이 허무맹랑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개인의 병력을 모욕하는 내용을 제3자에게 보냈다는 점에서 사안이 더욱 심각해 보인다.

법무법인 유안의 유달준 대표 변호사는 이에 대해 "재판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학생들에 대한 악의적인 내용이 담긴 편지를 여러 사람에게 보냈다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사건의 경우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보호자에게까지 편지를 보냈기 때문에 명예훼손죄가 성립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형법 제307조 제2항에서는 공연히 허위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A는 현재 이 편지에 대한 법적 조치 여부를 고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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