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 대학 교수 성추행, SNS 성희롱 등
반복되는 유사 사건에 힘 빠지지만
목소리 잃지 않고 고발하는 것 '긍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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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대학생, 대학원생 등 신분을 막론한 대학 구성원 간 성폭력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학 사회에는 다양한 형태의 '위계'가 존재한다. 교수와 학생 사이의 위계 또는 남성 중심 집단에서 작동하는 여성과 남성 사이의 위계 등이 학내 성폭력을 부른다.

대학 성폭력 사건은 학내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을 때 외부로 노출되곤 한다. 학생들이 교수의 성폭력 가해 사실을 대학에 알렸지만 흐지부지된 건국대 글로컬 캠퍼스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건국대 글로컬 캠퍼스 공론화 SNS 계정에 제보한 한 학생은 “강의평가에 ‘교수가 성희롱을 한 적이 있습니까?’라는 항목에 ‘예’라고 응답했고, 서술문항에도 교수가 학기 동안 학생들에게 했던 성희롱을 적어서 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지역사회에서 공론화되어야 대학이 능동적으로 움직일 거라는 판단도 성폭력 문제를 수면 위로 끄집어내는 데 일조한다. SNS 단체대화방에서 같은 수업을 듣는 여학생들을 성희롱한 ‘충북대 단톡방 사건’이 그렇다. 피해 학생들은 대자보와 온라인 글을 통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학교에는 진상조사와 징계, 재발방치책 마련을 요구했고 가해자에게는 사과를 하라고 압박했다.

공개 고발 무색하게...반복되는 성폭력 사건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문제의 사건이 도내 대학에서 다수 발생했지만, 성폭력 사건은 멈출 줄 모른다. 최근 2~3년 사이 충북 지역 대학 17개 중, 세간의 입방아에 오른 곳만 6곳에 달한다. 지난 2018년 3월, 청주대에 재직하며 제자를 상습 추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앞두고 있던 배우 조민기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극동대, 한국교원대 교수에게 상습적인 성추행을 당한 제자들의 고발이 이어졌다. 이들은 교수는 교수직을 잃거나 현재까지도 재판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건국대 글로컬캠퍼스 ㅅ 교수의 제자 성폭력 사건이 또다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차별금지법제정충북연대 진영 활동가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대응을 해도 성폭력 사건은 자꾸만 터져 나온다”며 “연달아 불거지는 지역 내 성폭력 사건을 보며 사회가 바뀌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든다”라고 회의감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그는 “특정인에게 일어난 사건으로 치부하며 가해자에게 징계를 주고 끝낼 게 아니라, 대학 사회 문화 자체가 바뀌어야 근절된다고 본다”고 의견을 전했다.

16일 오후 충북대학교 여학생 기숙사 계영원 앞 게시판 ⓒ충북인뉴스 계희수 기자
충북대학교 여학생 기숙사 계영원 앞 게시판 ⓒ충북인뉴스 계희수 기자

이 같은 지적은 청주교대와 충북대의 ‘단톡방 성폭력’ 사건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청주교대 사건이 터지고 한 달 만에 충북대에서 똑같은 사건이 발생했다. 공개된 SNS 대화에서, 충북대 가해 남학생들은 “청주교대처럼 되지 말자”며 앞선 사건의 결말을 의식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러나 비판의 목소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성폭력은 계속됐다. 청주교대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을 검찰에 고소하고, 청주교대 윤건영 총장이 사과문을 발표하고, 시민사회가 규탄 성명을 내는 등 여론이 들끓었지만 가해자들을 제지하지는 못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열린 충북여성정책포럼의 토론회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개진됐다. 토론회에서 충북여성인권상담소 늘봄의 정선희 소장은 “연달아 벌어지는 개별적인 성폭력 사건에 대한 피로감이 쌓여가는 시점”이라면서 “좀 더 효과적으로 지역 성폭력 이슈에 대응할 다양한 규모의 논의체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목소리 계속 된다는 건 ‘희망적 시그널’

그럼에도 도내 대학의 성폭력 사건이 반복적으로 불거지고 있다는 점을, 오히려 긍정적인 변화로 보는 시각도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대학 안에서 문제를 조용히 묻고 넘어가던 그간의 문제 해결 방식과는 분명히 달라졌다는 해석이다. 실제 피해자들은 SNS나 학내 게시판, 언론 등의 채널을 통해 가해자와 대학이 고발을 무력화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때 피해자들이 성폭력 피해 사실을 외부에 고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이는 미투 운동의 본질과 같다. 피해자들의 증언 뒤에는 다음과 같은 말들이 덧붙는다.

"선배, 동기, 후배님들이 이 교수 밑에서 교육 받길 원치 않는다" (건국대 글로컬캠 공론화 계정 익명 고발글)
"후배들에게 많이 미안했다. 교수 아래 대학원생들은 을이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었다. 선배들이 무지해서 B교수를 괴물로 만들었다" (한국교원대 교수 성폭력 피해 고발자 인터뷰)
"다른 어딘가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 이 대자보가 모두에게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계기가 되기를 마라는 마음이다" (청주교대 단톡방 성폭력 고발 ‘여러분의 단톡방은 안녕하십니까’ 대자보 글)

자신의 외면이나 묵인이 성폭력을 방조해 추가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피해자들은 용기를 내고 있다. 대학 내에서 피해자들은 좁은 조직 안에서 개인이 받을 수 있는 질타나 2차 피해를 감수하며 밖으로 문제를 터뜨리고 있다. 감시하는 눈이 많아질수록 가해자가 설자리는 줄어든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이 고발을 이어나가고 있는 현실을 보다 희망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 8일 청주교대 게시판에 붙은 대자보 ⓒSNS 캡쳐
지난해 11월 8일 청주교대 게시판에 붙은 대자보 ⓒSNS 캡쳐

“성폭력에 가담 안 해” 남성의 내부 고발이 시작됐다

가해자 집단 안에서 성폭력을 문제 삼는 남성이 등장했다는 사실도 긍정적인 변화로 꼽힌다. 대개 단톡방 성희롱은 대화를 공유하는 집단의 내부고발자가 없으면 외부로 밝혀지는 게 불가능하다. 당사자가 피해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장기간 성희롱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청주교대 '단톡방 사건'도 대화방에 속해 있던 한 내부고발자의 제보로 시작됐다. 충북대 사건에서도 피해 여학생들 편에서 제보를 해주는 남학생들이 있었다. 단톡방 사건을 대응한 충북대 중앙운영위원회는 “내부 상황을 알려주신 학우들과 피해 학우들에 대한 신변 보호가 가장 우선”이라는 입장을 발표하며, 피해 학생과 내부고발자 모두의 신변을 보호하겠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성폭력을 고발하는 남성이 한국 사회에 등장했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젠더사회문화연구소 이음 김수정 소장은 “현재 내부 고발을 하는 남성들은 한국 사회에서 익숙한 남성 중심의 여성혐오 문화에 반기를 드는 새로운 세력”이라면서 “개인적인 고뇌를 넘어 내부고발까지 이르는 것은 남성 사회에서 배제될 가능성도 감내하는 결기를 가지고 고발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청주여성의전화 김현정 소장은 “일부 남성들끼리 단톡방에서 성폭력을 통해 공유하는 건 일종의 연대의식”이라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그런 공고한 의식을 깨고 불편하다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남성에게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다”면서 “이런 남성들이 많이 나올 수 있는 분위기가 되도록, 이들이 2차 가해를 당하지 않게 확실하게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성들 사이에서 은밀한 단체 대화방 속 발언이 언제 폭로될 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생겼다. 이런 의식의 공유가 범죄 행위를 멈추는데 일조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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