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공항의 그림자①] 시설은 점점 늘어나는데… 노동 환경은 갈수록 ‘악화’ 

 

 

청주공항이 300만 시대를 열었다. 1일 평균 7,000명 이상 이용… 청주공항의 쾌속 성장을 뜻하는 숫자들은 점점 커지고 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이곳에는 93명(2019년 KAC공항서비스지부 자료)의 노동자가 있다. 사람들은 청주공항의 성장률에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얼굴엔 짙은 그늘이 진다. <충북인뉴스>는 오늘 하루도 청주공항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청주국제공항 연간 이용객 300만 명 달성’. 희뿌연 미세먼지가 하늘을 덮은 24일(화). 청주공항 주차타워 건물 앞에 내걸린 플래카드가 바람과 함께 흩날렸다. 이날 청주공항 국제선 여객청사 1층에서는 연간 이용객 300만 달성을 축하하는 기념행사가 열렸다. 손창완 한국공항공사 사장이 단상 위로 올라가 마이크 앞에 섰다. 

“일본 리스크가 있는 상황에서 300만 명 돌파의 의미는 그 어떤 것보다 큽니다. 청주공항 관계자와 충북도민에게 힘입은 덕분입니다.” 

손 사장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단상 아래로 내려왔다. 이장섭 충북도 정무부지사, 국토교통부 항공정책관,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차례대로 마이크 앞에 섰다. 이들은 하나같이 청주공항의 치적을 자랑했다. 모든 식순이 끝나자 사회자는 참석자들을 단상 위로 불러냈다. 참석자들은 하얀색 손 장갑을 끼고서 다시 등장했다. 

“제가 ‘하나, 둘, 셋’하면 앞에 있는 버튼을 누르시면 됩니다. 하나, 둘, 셋!”

사회자의 지시에 맞춰 참석자들이 버튼을 누르자 은빛 꽃가루가 단상 위에서 뿜어져 나왔다. 참석자들은 청사 바닥에 널브러진 꽃가루만 남겨둔 채 자리를 떠났다. 이 꽃가루는 청주공항 미화 노동자들의 몫이다. 그러나 누구도 이들을 떠올리지 않는다. 

손창완 한국공항공사 사장이 축사를 읽고 있다. ⓒ 김다솜 기자
손창완 한국공항공사 사장이 축사를 읽고 있다. ⓒ 김다솜 기자

 

커피 한 잔 마실 시간마저 뺏겼다   

“공항 이용객이 늘어났다고 축하만 하지 말고 고객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 힘든 노동자들도 뒤돌아 봐주셨으면 해요.” 

청주공항 미화 노동자 A 씨가 불만을 쏟아냈다. 청주공항 미화 노동자는 모두 13명. 1명은 관리동 담당, 1명은 청소 반장이다. 실질적으로 공항 청사 내부를 청소하는 사람은 11명에 불과하다. 청주공항 연간 이용객이 많아진 만큼 공항 규모도, 청소 업무도 배로 늘어났다. 

“여자 화장실이 네 칸이었어요. 남자는 세 칸. 근데 지금은 여자 화장실 열 칸, 남자는 다섯 칸. 두 배로 늘었죠. 사람은 그대로인데….” 

미화 노동자들에게는 △국내 출발 △국내 도착 △국제 입국 △국제 출국 등 각자의 구역이 있다. 자신이 담당한 구역만 청소해도 손이 닿지 않는 곳이 발생한다. 그때마다 미화 노동자들의 주머니 속 휴대폰이 울린다. 청소 반장이 돌아다니면서 구역을 확인하고, 청소가 미흡한 곳이 발견되면 전화를 돌린다. 

 

A씨는 청소 세제가 아주 독하다고 하소연했다. 미화 업무 노동자들은 세제가 얼굴에 튀어 피부가 상하는 일이 자주 생긴다.  ⓒ 김다솜 기자
A씨는 청소 세제가 아주 독하다고 하소연했다. 미화 업무 노동자들은 세제가 얼굴에 튀어 피부가 상하는 일이 자주 생긴다. ⓒ 김다솜 기자

공항 청소가 아닌 일도 도맡는다. 공항 바깥에 위치한 국토부나 경찰 사무실까지도 불려 나간다. 도보로 20분이 걸리는 거리까지도 나가야 한다. 모든 게 사람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다. 이 넓은 구역을 13명의 미화 노동자가 담당하기에는 벅차다. 

휴가 한 번 가기도 힘들다. 한 명이 휴가를 가면 혼자서 두 명 몫을 해내야 한다. 그 사람한테 임금이 더 가는 것도 아니니 동료를 생각해서라도 선뜻 휴가를 낼 수가 없다. 휴가자가 생기면 그 자리에 대체 인력이 없어서 기존 근무자의 노동 강도가 배로 증가한다. 

평균 연령 55세. 미화 노동자들의 강도 높은 노동은 몸을 망가뜨린다. 터널 증후군은 기분이다. 골반에 염증이 생긴 사람도 있다. 독한 세제가 얼굴에 튀어도 마스크 한 장 지급되지 않는다. 이날 A 씨는 청주공항 연간 이용률 300만 명 돌파 기념행사 때문에 오늘 하루 커피 한 잔 마실 시간마저 뺏겼다.  

4배 늘어난 관리 지역…‘김용균’이 생길 수도 있다 

청주공항의 성장은 숫자로 확인할 수 있다. 관리 지역 면적은 당초 8,000㎡였으나 33,437㎡까지 늘어났다. 4배에 달하는 수치다. CATV 시스템 개량(2015년 7월), 출입통제 시스템(2015년 9월) 준공을 시작으로 2017년에는 국제선이 증축됐다. 더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 위해 주차장이 확장되고, 주차빌딩도 들어섰다. 24일(화)부터는 국내선 증축 지역 사용이 시작됐다. 내년부터는 경비과학화시설, 항공유저유소, 소방대 건물 및 제2주차장 통신시설 등이 준공 예정에 있다. 

시설 업무를 맡는 사람들의 근무 형태는 일근과 주야비(주간근무·야간근무·비번)로 나뉜다. 야간이나 휴일에는 두 명이서 공항 내 모든 시설장비를 관리한다. KAC공항서비스지부는 시설 증가에 비추어 봤을 때 지금 인력의 두 배가 충원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설 업무 담당 B 씨는 2인 1조가 불가능한 업무 상황을 토로했다. 청주공항의 덩치는 점점 커져만 가는데 노동자 수는 늘지 않았다.

청주공항은 전국에서 유일무이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24시간 운영으로 ‘불이 꺼지지 않는 공항’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공항 인력 부족 실태는 노동 강도 상승뿐만 아니라 안전에도 위협이 된다. 야간에는 정보통신시설 분야에서 두 명만 근무한다. ⓒ 김다솜 기자
청주공항은 전국에서 유일무이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24시간 운영으로 ‘불이 꺼지지 않는 공항’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공항 인력 부족 실태는 노동 강도 상승뿐만 아니라 안전에도 위협이 된다. 야간에는 정보통신시설 분야에서 두 명만 근무한다. ⓒ 김다솜 기자

“심각해요. 가령 CCTV가 고장 나면 한 명은 사다리를 잡아주고, 한 명은 안전모를 쓰고 작업을 해야 해요. 근데 다른 일도 있잖아요. 관제에서 화면을 보고 지시를 내려야 하는데 어떻게 사다리를 잡아줘요. 혼자서 고쳐야 하는 거죠. 여름에는 시설팀에서 사다리 타고 올라가다가 떨어져서 산재 처리를 받았어요. 언제 김용균이 생길지 모르는 거죠.” - 시설 업무 담당 B 씨 

작업 환경은 언제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전문성을 가지고 일하기도 어렵다. 10개가 넘는 업무를 혼자서 마스터해야 한다. 사람을 채용해도 청주공항 업무가 힘들다는 걸 눈치채고 금방 도망간다. 출근 첫날에 점심만 먹고 그만둔 신입도 있었다. 

“(청주공항은) '취업 견학소'라고 할까요. 얼마 전에 4~5명을 충원했어요. 전기 파트 담당자는 오자마자 그만두고, 기계 파트는 어제 나가고…. 실제로 겪어보면 생각했던 거랑 다르니까 자꾸 나가는 거죠. 임금도 최저임금 근처에서 놀고 있으니까….” - 시설 업무 담당 B 씨 

한국공항공사는 내년 상반기 채용을 앞두고 있다. 한국공항공사 인사과 구경재 씨는 "연간 이용객 300만 명 돌파한 것과 관련해 채용 계획은 따로 없다"고 말했다. 공항별 결원이나 사정이 일부 반영될 수는 있겠지만, 내년 상반기 채용은 정기 공개채용이라고 알려왔다. 

국정감사 자료까지 보냈지만 ‘묵묵부답’

지난 9월, 전국공공운수노조 KAC공항서비스 지부는 국토교통부 국회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국회의원에게 한국공항공사 노동 실태를 담은 자료를 배포했다. 국정감사(2019년 10월 18일)에서 손창완 한국공항공사 대표에게 질의해달라는 뜻이었다. 이들은 국정감사 당일 민주노총 전국 공항 비정규직 노동자 공동투쟁대회까지 열었다. 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첫 공동투쟁이었다. 그러나 국정감사장에서 공항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정원섭 KAC공항서비스지부 조직국장은 “여당에서 자기 당 출신을 공공기관에 낙하산으로 많이 보냈다”며 “그 이유 때문에 국정감사장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듯했다”고 지적했다. 손창완 한국공항공사 대표 얘기다. 그는 2002년 경기 안산경찰서장, 2010년 전북지방경찰청 청장을 거친 경찰 출신 인사다. 2016년에는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안산시 단원구을 지역구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이력이 있다. 

청주공항 주차타워 전면에는 연간 이용객 300만 명을 넘어섰다는 축하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다. ⓒ 김다솜 기자
청주공항 주차타워 전면에는 연간 이용객 300만 명을 넘어섰다는 축하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다. ⓒ 김다솜 기자

“차라리 (더불어민주당이) 야당이었을 때가 나았다는 얘기도 나와요.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당선되고 나면 여당 내에서도 야당 역할을 하겠다고 하고 그랬거든요. 근데 막상 당선되고 나니까 노동 문제에 대해 매우 보수적으로 행동하고 있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 역시 그렇구나’ 싶었어요.” - 정원섭 KAC공항서비스지부 조직국장

손창완 한국공항공사 사장은 국정감사 자리에서 '청주공항'을 한 차례 언급한 바 있다. 청주공항은 일본 노선 감축으로 흑자 전환이 지연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게 처음이자 마지막 언급이었다. 언제나 '사람'보다 '숫자'가 먼저다. 

‘청주공항 年 이용객 300만 명 시대 활짝’ 

‘청주공항 300만 시대 의미 있다’  

‘청주공항 이용객 300만 명 시대 개막’

이날 기념행사가 끝나고, 언론에는 청주공항이 가져다줄 경제적 효과에 대한 기사가 쏟아졌다. 현실은 냉혹하다. 한국공항공사 사장도, 정치인도, 언론도 모두 청주공항 연간 이용객 300만 돌파를 치하하는 꽃가루만 뿌려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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