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전시 연장 요청했지만 청주시 답변은 “논의 중”
1월 이후 학예사·유물보안 담당자 채용 불투명한 상태

청주백제유물전시관에서는 12월 6일부터 12월 29일까지 ‘쇠를 다루는 마한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기획전시가 열리고 있다.
청주백제유물전시관에서는 12월 6일부터 12월 29일까지 ‘쇠를 다루는 마한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기획전시가 열리고 있다.

 

마한시대 청주사람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전시가 시작한지 20여일 만에 막을 내릴 처지에 놓였다.

지난 6일부터 백제유물전시관(전시관)에서는 ‘쇠를 다루는 마한사람들’이라는 주제로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기간은 12월 6일부터 12월 29일까지로 휴일을 제외하면 20일 동안 열리는 것이다. 보통 박물관 기획전시기간이 두세 달인 것에 비하면 이는 상당히 짧은 기간이다.

전시관 측은 최근 전시기간 연장을 청주시에 요청했으나 청주시는 ‘논의 중’이라는 반응만 보일뿐 확실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어 29일 이후 전시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고대 청주역사 알 수 있는 전시인데 학생관람 사실상 불가능

이번 전시에서는 청주시 흥덕구 송절동 청주테크노폴리스(TP) 일반산업단지 확장부지 내 유적 2차 발굴조사 당시 나온 유물 170여점을 볼 수 있다. 철광석을 제련하여 철을 뽑아내던 ‘제철로’부터 당시 상류계층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마형대구’, ‘족집게’, ‘굽다리 손잡이잔’, ‘토제마연마형대구’ 등을 볼 수 있다.

특히 흙으로 만든 ‘토제마연마형대구’는 송절동 유적이 국내최초이며 그동안 연구된 바가 없어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또한 기벽이 두꺼운 잔은 당시 청주사람들의 토기 빚는 기술이 상당히 발전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말모양 허리띠 장식
말모양 허리띠 장식
기벽이 두꺼운 잔과 계량컵으로 사용됐을 손잡이 잔.
기벽이 두꺼운 잔과 계량컵으로 사용됐을 손잡이 잔.

 

학계에서는 이 유물들은 청주의 고대사를 다시 써야할 만큼 큰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은 “마한시대 때 청주에 어마어마한 권력자가 있었고 신기술 또한 발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청주의 역사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라며 “전시관 공간이나 예산을 확보해서 더 많이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29일 전시가 끝난 유물들은 보존처리를 거쳐 국립청주박물관 수장고로 들어갈 예정이다. 사실상 일반인들은 더 이상 관람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방학을 맞은 초·중·고등학생들이 본격적으로 관람을 할 수 있는 시기에 전시가 끝난다.

전시관 측은 최근 청주시에 전시기간 연장을 요청했다. 하지만 청주시는 ‘논의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충북 학생들이 꼭 봐야 할 전시”

전시기간이 짧아진 것은 전시관 학예사이자 이번 전시를 실질적으로 기획한 한영희 학예사 거취문제, 또 청주시 직영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한영희 학예사는 전시관을 운영하고 있는 청주문화원의 위·수탁계약이 오는 12월 31일 종료됨과 동시에 사실상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전시관을 위탁받아 운영했던 청주문화원은 계약기간이 종료됐음을 등기로 알려왔고, 청주시에서는 ‘이제 일을 그만두라’는 메시지를 수차례 전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학예사는 본인이 근무하는 기간 동안만이라도 전시를 해야겠다고 결정했다. 한영희 학예사는 “이 유물들은 청주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로 청주시민들에게 꼭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어서 서둘러 준비했다. 전시기간을 짧게 잡은 것은 내년에 고용승계가 어떻게 될지 몰라 일단 근무할 수 있는 기간까지만 잡았다”며 “지금 이 상태에서 전시를 그만두는 것은 정말 아쉽다. 방학을 맞은 학생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문화재연구원 측에서도 전시연장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29일 이후 전시관 유물 빼라” 지시하기도

청주시는 전시연장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밝히고 있다. 청주시 문화예술과 A씨는 “연장신청이 들어온 것은 맞다. 어떻게 할지는 현재 상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계자들에 따르면 청주시 관계자가 29일 전시를 끝으로 유물을 모두 철수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전시관 운영을 직접 담당할 청주고인쇄박물관 관계자들도 전시연장과 관련해 20일 현재까지 청주시로부터 어떠한 의견도 듣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인쇄박물관의 한 관계자는 “저희는 현재 백제유물전시관과 관련된 인수인계 자료나 서류가 하나도 없는 상태다. 어떠한 이야기도 할 수가 없다. 일단은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시연장 관건은 학예사와 유물보안능력

전시연장을 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학예사 존재’ 여부와 ‘유물 보안능력’이다. 전시관에 학예사가 반드시 있어야 하고 유물을 보관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유물을 대여해준 국립청주박물관의 한 관계자는 “유물대여연장을 결정하는 것은 전시관에 학예사가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이다. 청주시가 12월 말에 학예사를 채용하겠다고 했으니 일단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청주시는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우선 ‘학예사 존재’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소한 1월 한 달은 준학예사가 유물을 관리해야 한다. 청주시는 기존에 십수년간 근무했던 한영희 3급 학예사에게 사실상 ‘해고통보’를 했고 1월부터 3월까지 전시관 학예업무를 담당할 기간제 근로자로 준학예사를 채용한다는 공고를 고인쇄박물관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최종 결정은 24일 발표될 예정이다. 또 4월부터 학예업무를 담당할 시간선택제공무원은 1월중 공고를 내 1월 말에 채용할 계획이다. 청주시가 1월 말에 시간선택제 학예공무원을 채용한다 하더라도 3개월 기간제 근로자 준학예사가 최소 한 달 동안은 유물을 관리해야 한다는 얘기다.

유물보안능력도 문제다. 문화재청 대여승인 조건에 따르면 ‘전시유물 보험가입 및 화재·도난 등 안전사고대비 철저’가 필수항목이다.

그러나 전시관이 청주시 직영이 되면서 유물보안을 담당할 청원경찰(경비) 인사이동이 1월 중순에나 될 예정이어서 보름가량 유물보안에 공백이 발생한다. 보름동안 경비를 어떻게 할 것인지 청주시가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국립청주박물관의 한 관계자는 “박물관 구성원이 유물을 얼마나 잘 관리할 수 있는지 실사를 통해 알아보고 대여 연장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번 전시에 대해 청주시는 처음부터 큰 고민이 없었고 20여일 만에 끝내도 상관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황평우 소장은 “청주에는 국립청주박물관이 있지만 충청도나 청주의 핵심적인 유물을 보기는 어렵다. 청주시는 이번 전시를 더 보강할 생각을 해야지 그만한다고 생각하는 게 말이 되나? 기껏 발굴을 해놓고 전시관을 깡통으로 해놓으면 무슨 소용이냐”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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