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의 박정훈 작가와 북토크 사회를 본 '충북인뉴스' 계희수 기자 ⓒ충북인뉴스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의 박정훈 작가와 북토크 사회를 본 '충북인뉴스' 계희수 기자 ⓒ충북인뉴스

지난 7일 오후, 청주시 금천동의 독립 서점 <꿈꾸는 책방>에 30명이 둘러앉았다. <충북인뉴스>와 정의당 김종대 국회의원이 마련한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이하 <친웃결남>) 북토크 자리다. <친웃결남>은 오마이뉴스 기자인 박정훈 작가가 페미니즘과 여성인권에 대해 SNS에 써온 글을 한 데 엮어 출판한 책이다. 저자는 남성 문화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자신이 한 처절한 반성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러면서 남성들을 향해 ‘같이 하자’라고 설득하고 있다.

이날 북토크의 주제는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었다. <친웃결남>을 쓴 박정훈 작가를 청주로 불렀다. 약속으로 꽉 찬 연말, 그것도 황금 같은 토요일에 준비된 30석이 모두 채워질지 걱정스러웠다. 웬걸, 자리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로 꽉 들어찼고, 참여자의 3분의 1이 남성이었다. ‘여성인권’에 대해 연대하고 싶은 여남소노(女男少老)가 한 자리에 앉은, 꽤 이례적인 풍경이었다.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 북토크 ⓒ정의당 김종대 의원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청중들이 참여한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 북토크 ⓒ정의당 김종대 의원실

페미니스트가 된 ‘프로반성러’

박정훈 작가는 책에서 고백과 반성을 거듭한다.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과거를 거짓 없이 드러내고 통렬하게 반성하는 과정을 그대로 서술해냈다. 그는 반성을 ‘프로’처럼 했다. 깔끔하고 허심탄회하게, 재발 방지는 확실히. 책을 통해 그에게 받은 인상이다.

그가 페미니즘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시작한 계기가 있다고 했다. 과거 ‘요즘 페미’가 가진 과격함을 지적했다가 친구의 송곳 같은 지적을 마주했을 때다. 친구는 ‘네가 여성의 분노를 알아? 네가 여성으로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페미니즘을 그렇게 쉽게 재단할 수 있어?’라고 박 작가를 몰아붙였다고 한다.

박 작가는 그제야 본인에게 ‘당사자성’이 없음을 인지했고, 오만하게도 페미니즘에 대해 쉽게 규정하고 있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맨 앞줄에 앉은 여성들은 상황이 이해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의 북토크 ⓒ충북인뉴스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의 북토크 ⓒ충북인뉴스

“그동안 젠더 문제에 관해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했는데, 그 ‘합리’와 ‘상식’ 이 누구의 기준에서 규정된 것인지 되돌아봤어요. 누구의 기준일까, 바로 남성의 기준이겠죠? 제가 이전까지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한 것은 어쩌면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은 아닐까 처음으로 깨닫게 된 거예요”

이후 박정훈 작가는 <오마이뉴스> 기자로 일하며 여성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가 많아졌다. 서울에 사는 이성애자, 비장애인 남성이라는 기득권 위치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차별과 폭력을 취재를 통해 간접 경험했다. 자신이 반사적으로 누려온 “부당한 특권과 이익”에 대해 인지했고, “폭력을 묵인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던 지난날”을 실감했다.

“페미니즘은 공부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여성들과) 같은 구호를 외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삶에 녹아들어야 실천이 가능한 거거든요. 남성 중심 사회와 남성 중심적 언어가 불편해야 페미니즘이 가능한 건데, 내 삶에 대해서 돌이켜보는 과정이 있어야 하죠. 반성이라는 건 내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 즉 여성의 말을 듣겠다는 거고요. 또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반성하는 과정을 거치면 사회가 예전과 같이 보이지는 않을 겁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소한 불편함이 늘어갈수록, 박 작가는 동료 남성들의 폭력성과 모순을 지적하고 설득해야 했다.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박정훈 작가에게 페미니즘 운동은 ‘나의 일’로 여겨진다고 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남성들의 표정이 더욱 진지해졌다.
 

내부고발자는 남성들 사이에서 ‘공공의 적’이 됐다

책을 통해 남성 문화를 폭로하고 비판한 박정훈 작가에게 ‘악플’이 쏟아졌다. 남성들이 박 작가를 향해 쏟아내는 비난과 욕설은 ‘사이버 괴롬힘’ 수준이다. 박 작가는 자신에게 쏟아진 악플 가운데 몇 개를 청중에게 읽어줬다.

‘아 이 XX 얼굴만 봐도 딱 징그러운 변태상인데. 남페미? 페미들이 남자들 중에서 쓰레기만 골라서 싹 수거해 가네’
‘페미니즘 같은 정신병 사상 없어도 똑바르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남자들이 세상 대다수다. 본인 고해성사는 블로그에나 끄적이면 되지 왜 이런 게 책으로 나오는지... 정말 페미니즘은 돈이 되는구나’

그렇지만 박정훈 작가는 페미니즘 이야기를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자신의 글을 읽고 여성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한 남성 독자들 때문이다. 박 작가의 글과 말을 통해 인지하지 못했던 자기 주변의 ‘불편함’을 깨닫는 사람들이 있다.

북토크에 참여한 청주시민 이재헌(38) 씨는 남성이 주변에 무감각하고 무신경하게 살 수 있는 것도, 보장된 안락함에 기반한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 씨는 “나의 성격 좋음이나 편안함은 누군가의 희생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면서 “친구들 눈치 보며 불편해도 말하지 않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라고 말했다.

박정훈 작가는 불편함을 깨달은 남성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왜곡된 시선을 지닌 주변 남성을 설득하고 혐오와 차별적 언사에 제동을 걸어보라는 것이다. 박 작가는 자신이 페미니즘과 성평등 가치를 지지한다는 것을 표명하면서부터, 사람들이 그 앞에서 말과 행동을 조심한다고 말했다. 대놓고 지적하지 못하겠다면, 눈앞에서 혐오 발언이나 폭력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눈치를 보게 만들라”는 것이 그의 조언이다.
 

“이런 자리가 많아졌으면”

마지막은 청중이 질문하는 시간이었다. 메모지에 질문을 적어내지 못한 사람들은 즉석에서 궁금증을 해소하기도 했다.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지만, 남성으로서 어떻게 설득하고 연대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이 많았다. 

페미니스트임을 의심받을 때의 억울함이나 어려움은 없느냐는 물음에 박 작가는 “그런 비판을 받을 때도 있지만,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행동으로 증명해내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감내하고 계속 실천한다면 나를 통해 기존에 침묵하거나 애매모호한 태도를 가지고 있던 남성들이 확신을 갖고 옳은 행동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라고 답했다.
 

정의당 김종대 국회의원이 사회자의 물음에 답변하고 있다. ⓒ충북인뉴스
정의당 김종대 국회의원이 사회자의 물음에 답변하고 있다. ⓒ충북인뉴스

한 참여자가 메모지에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고 적어낸 질문은 김종대 의원에게 공이 돌아갔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가능하다고 보느냐’는 사회자의 물음에 김 의원은 “정의당은 벌써 시도를 했다. 불가능을 가능성으로 이미 현실화한 당이다. 다른 당의 문제지 저희는 가능하다”라고 기존 정치권과 선 긋기를 해 청중에게 웃음을 안겼다.

이번 자리에는 경남 김해, 인천, 세종, 서울 등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참여했다. 남성들이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흔치 않은 탓이다. 박진희(29) 씨는 “지인 소개로 북토크 소식을 접하고 인천에서 청주까지 오게 됐다”면서 “‘많이 참여할까?’ 걱정도 했지만 다양한 연령층에서 많은 분들이 참여하신 걸 보고 놀라웠고, 한편으로는 너무 다행스러웠다”라고 전했다.

이어서 그는 “남성으로서 반성하고 성찰할 수 있는 너무나 뜻깊고 좋은 자리”였다며 “아직도 페미니스트가 되기에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페미니즘을 배우는 남성으로서 갖춰야 할 자세나 역할을 더욱 잘 알게 된 좋은 경험이었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청주시민 조명국(28) 씨는 “페미니즘은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하나의 흐름이다. 충북에서도 이런 주제를 다룰 수 있는 기회가 있어 좋았고 앞으로 더 공정한 사회를 위해 고민하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 북토크 ⓒ충북인뉴스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의 저자 박정훈 작가가 독자에게 싸인을 해주고 있다. ⓒ충북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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