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군 옥천읍에 소재한 춘추민속관 전경
옥천군 옥천읍에 소재한 춘추민속관 전경

 

2019년 2월 11일 보도한 <옥천갑부 오윤묵 집터 명치천황추모비는 누가 만들었을까?> (http://www.cbi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6641) 기사 중 “이 집은 오윤묵의 부친인 오상규(조선 말 강화군수)가 1856년 건축하고 이후에 아들인 오윤묵이 증축한 건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에서 사실과 다른 부분을 바로 잡습니다.

기사에 언급된 ‘이 집’은 옥천군 옥천읍에 소재한 ‘춘추민속관’을 지칭합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제공하는 ‘한국역대인물종합시스템’에 따르면 기사에서 언급한 오상규 선생은 1858년(철종 9년)에 출생한 조선말기 무신으로 본관은 해주이고 함경북도 회령출신입니다.

1879년 병조판서 조영하가 무관으로 천거하여 선전관 6품에 올랐으며 이후 중추원 의관, 강화군수를 거쳐 가의대부 시종원부경에 이르게 됩니다.

1910년 경술국치 후 충북 옥천군으로 옮겨 살다 1922년 65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슬하에 아들 오종목과 오윤묵 등 2남 1녀를 두었습니다.

또 정부가 운영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도 1858년 출생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기사에서 오상규 선생이 1856년 건축했다고 언급한 것은 그의 출생이전으로 사실과 맞지 않습니다.

이에 춘추민속관을 오상규 선생이 건축했다고 보도한 부분은 사실과 달라 바로잡습니다.

그의 후손들은 오상규 선생은 독립운동가 이동휘 선생과 함께 1906년 한북흥학회를 창설하고 교육구국운동을 펼쳤다고 밝혔습니다. 1908년에는 안창호 선생등과 함께 서북학회를 설립했다고 알렸습니다.

또 안중근 의사와 교류하였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실린 일제의 ‘안중근과의 국내외교유자 조사보고’서에 ‘오상규’라는 명단이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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