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동네 현진섭 수사신부가 로마에서 보내 온 편지 Ⅰ

병석에 누워 있는 독일인 노숙자 요크 씨와 꽃동네 수도자들.
병석에 누워 있는 독일인 노숙자 요크 씨와 꽃동네 수도자들.

예수의꽃동네형제자매회 현진섭 발토로메오 수사신부가 최근 로마에서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다. 

현진섭 신부의 편지에는 현지에서 만난 독일인 故 요크 씨를 애도하는 심경이 절절히 녹아 있었다. 

그는 임종 직전 “나는 다시 너희 곁에 돌아와 너희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사랑의 꽃동네와 로마 노숙인 요크씨와의 인연을 <음성타임즈>에서 2회에 걸쳐 소개한다. 

현재 꽃동네(설립자 오웅진 신부)는 예수의꽃동네형제자매회 소속 수도자들을 로마 바티칸에 파견해 현지 노숙인들을 보살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편집자주

로마에서 보내 온 편지

병석에서 마지막 성체를 모시고 있는 요크 씨.
병석에서 마지막 성체를 모시고 있는 요크 씨.

하루는 바티칸을 지나가다가 몇 번 얼굴을 익힌 노숙인분(요크)이 계셔서 너무 반가워 인사하려고 다가갔는데 저에게 심한 욕을 하면서 가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이 원래 늘 손가락으로 브이자(V)를 가리키면서(평화를 상징) 인사하는 분이셨는데 심한 욕을 하는 모습에 많이 놀랐습니다.

그런데 그 날부터 계속 표정이 어둡고 저희가 나눠주는 밥을 더 이상 받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분이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렇게 고통스럽게 사는 것 보다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목과 임파선 주변에 혹이 있었고 음식을 삼키지도 못한 채 뜨거운 태양 아래 그렇게 누워서 신음만 하고 있었습니다.

제 머리에서 ‘죽는 게 낫겠다는...’ 그 소리가 지워지질 않았습니다. 

한국에 총회가 있어서 1주일간 다녀 온 후 바티칸 광장에서 다시 요크를 만났는데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보였습니다. 병원에 모시려고 몇 차례 본인 의사를 물어봤는데 극구 거절해서 방법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고통 때문에 그렇게 삶을 원망하고 욕을 하는 모습이 안타깝고 마지막 순간까지 보살핌 없이 세상을 떠날까봐 걱정스러웠습니다. 

무조건 저희 집에 모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일인 노숙자 요크 씨와의 즐거운 한 때.
독일인 노숙자 요크 씨와의 즐거운 한 때.

예수님의 가르침 ‘사마리아인’
그런데 요크는 이태리 사람이 아니라 독일인이었고 신분증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저희 집은 가족 분을 모실 수 있도록 시설 허가가 된 집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그러다가 집에서 돌아가시게 되면 너희가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걱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복음 말씀이 착한 사마리아사람의 비유였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지나쳤던 사제도 율법학자도 각자 자신의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는 오직 한가지의 이유, 사랑만이 필요하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떠올랐습니다.

요크 씨를 집으로 모셔와 목욕을 시키고 있는 현진섭 수사신부.
요크 씨를 집으로 모셔와 목욕을 시키고 있는 현진섭 수사신부.

그렇게 집에 모셔서 샤워를 시켜드리고, 스프를 끊여드리고, 같이 기도하고 지내면서 저녁마다 자연스럽게 요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4남매 중 2번째로 태어났는데 부모님과 소식을 끊은지는 오래 됐고 형제자매들하고도 더 이상 연락하지 않고 그렇게 30년간을 유럽을 돌아다니며 노숙생활을 하다가 1년 전에 로마로 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독일은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고 자신이 연락하고 싶은 사람도,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렇게 서로 이야기하다가 영원한 삶에 대해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교리를 하면서 저희 집에서 세례성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병원을 가는 것을 극구 거부하는 요크 씨를 설득해 병원에 가기로 하였습니다. 병원에 가기로 약속한 그 날 저에게 여러 번 되물었습니다. 

“다시 너희 집에 올 수 있는 거 맞지? 맞지...?” 

그래서 그렇게 될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요크 씨와 바티칸 시내 산책에 나선 꽃동네 수도자들.
요크 씨와 바티칸 시내 산책에 나선 꽃동네 수도자들.

간암말기 판정, 받은 독일인 요크씨
그런데 요크는 여권도 신분증도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 어떻게 병원에 입원이 가능한지, 병원비는 어떻게 처리가 되는지, 병원에 가게 된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건지... 로마에 온지 4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때라서 아무것도 몰랐고 언어도 서툴렀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로마에 계셨던 박야고보 수녀님도 한국에 계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본당 신자분에게 이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분을 통해서, 그렇게 건너건너 여러 사람들을 소개 받게 되었고 모든 행정적인 처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故 요크 씨의 묘소.
故 요크 씨의 묘소.

독일대사관을 통해서 여권을 새로 발급받고 로마에 거주하는 외국인 신분을 얻어서 의료서비스를 받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연고자가 없다는 대사관 확인 후 보호자로는 제가 거주지로는 예수의꽃동네형제회로 등록이 되었습니다.

결국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저희가 매일 면회를 갔는데 지나가는 간호사를 붙들고 이 사람들이 내 가족이라면서 저희를 너무나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병원검사 결과 병명은 간암 말기였습니다. 더 이상 병원에서도 해 줄 수 있는 치료가 없다고 했습니다.

(기사 사진= 음성꽃동네 제공)

[ 이 편지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

故 요크 씨 묘소 앞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 꽃동네 수도자들.
故 요크 씨 묘소 앞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 꽃동네 수도자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