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 올해 정치권 뜬별 진별


초대형 사건이 줄을 이은 2004년에는 어느 때보다 정치인들의 부침이 격심했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과 뒤이은 4·15 총선을 통해 정치무대의 주역 상당수가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고, 새로운 인물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17대 국회 초반부터 여야가 격돌하면서, 그리 아름답지 못한 모습으로 부각된 의원들도 있었다. 국민들이 새롭게 희망을 싣기 시작한 정치인들도 나타나고 있다.

박관용 전 의장 뭇매맞고 퇴장


◇ 뜬 별=정치권을 통틀어 올 한 해 가장 화려하게 정치의 전면에 떠오른 인물은 역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다. 정치에 입문해 줄곧 주변부를 맴돌던 박 대표는 거센 ‘탄핵 후폭풍’에 스러진 최병렬 전 대표에 이어 당 대표직에 오른 뒤 침몰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을 기적처럼 구해냈다. 4·15 총선을 진두지휘해 폐허가 된 한나라당을 원내 121석을 차지하는 제1야당으로, 과반을 겨우 달성한 여당의 강력한 견제세력으로 만들었다. 그는 총선 뒤 전당대회에서 압도적 우세로 당 대표에 선출됨으로써 확고하게 당권을 장악했고, 더불어 유력한 차기 대통령후보 자리를 굳혔다.

다만, 박 대표는 최근 여야 지도부의 4인 대표회담 과정에서 강경·보수적 태도로 일관하면서 여당의 공격 표적이 된데다, 당내에서도 새로운 리더십을 보이지 못하고 있어 입지가 안정적이지는 않다.

고건 전 국무총리는 탄핵정국을 전후해 보여준 인상적인 행보로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통령후보 1위로 떠올랐다. 노무현 정부 초대 총리로서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했던 고 전 총리는 탄핵 파동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으면서 안정적인 국정 관리 능력을 보여줬고, 탄핵사태 마무리 뒤 개각 과정에서는 ‘들러리’ 구실을 거부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여권에서는 이해찬 국무총리의 부상이 두드러진다. 5선의 중진으로 당내 원내대표 경선에서 천정배 현 원내대표에게 밀려 고배를 마신 이 총리는 총리직에 전격 발탁되면서 일약 여권의 핵심인물로 떠올랐다. 이 총리는 특유의 수완을 발휘해 명실상부한 ‘책임 총리’의 자리를 굳혔다.

주성영은 초선이 뽑은 최악의원


‘민주노동당 돌풍’의 전면에는 노회찬 의원이 있다. 지난 2002년 대선 때부터 촌철살인의 입담으로 대중적 인기를 모은 노 의원은 국회에 입성한 뒤에도 용산기지 문제와 주한미군 문제 등 정책 문제에서 그 나름의 성과를 거두며 정치적 위상이 급상승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진 별=우리 정치사에서 한 획을 그은 대통령 탄핵사태는 유력한 야당 지도자들을 일거에 휩쓸어버렸다. 민주당의 조순형 전 대표와 추미애·박상천·정균환 전 의원, 한나라당의 최병렬 전 대표와 홍사덕 전 원내총무 등 한때 한국 정치를 좌지우지하던 거물들이 한 순간에 정치무대에서 사라졌다.

이들 ‘탄핵의 주역’ 대부분은 4·15 총선에서 국민의 외면을 받아 아예 정치판을 떠나야 했다. 조 전 대표는 요즘 당과 일체의 연락을 끊고 집 부근 도서관을 오가며 정치적 재기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주변에서는 그가 내년 4월 서울에서 재보궐선거에 출마할 뜻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총선 기간 호남민심을 되돌리기 위해 몸을 던지는 ‘삼보일배’까지 했던 추 전 의원은, 민주당이 총선에서 참패하고 자신마저 낙선한 뒤 재충전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 현재 워싱턴에 머물고 있다.

한나라당에서 불명예스럽게 밀려난 최 전 대표는 수도권 재보선 출마를 모색하고 있고, 홍 전 원내총무도 서울 종로의 개인사무실에서 지내면서 재보선 출마를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당시 경위권을 발동해 표결 처리를 주도했던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정치인생의 막바지에 잘못된 선택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씁쓸하게 정치무대를 내려와야 했다.

책임총리 이해찬 뜨고 조순형·추미애등 지고
관리형 고건 여론관리 1위…노회찬 위상 급상승
◇ 화제의 인물들=17대 첫 정기국회 막바지 정국을 뜨겁게 달군 ‘간첩 발언 파문’은 초선의원인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과 이철우 열린우리당 의원을 일약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현역 의원을 아무런 근거도 없이 ‘암약 중인 간첩’으로 몰며 막가파식 폭로의 전형을 보여준 주 의원은 한 시사주간지 조사에서 동료 초선의원들이 꼽은 ‘최악의 의원’으로 선정되는 등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상태다. 이 사건 와중에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도 과거 공안사건 연루자들로부터 ‘고문의 당사자’로 지목되며, 덩달아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는 신세가 됐다.

정광섭 기자 iguassu@hani.co.kr



열쇠말로 본 2004년
올해도 한국정치는 굽이굽이 요동치며 숨가쁘게 달려왔다. 대통령 탄핵소추와 ‘3김시대 종식’ 이후의 첫 총선, 관습헌법 논란과 4대 법안을 둘러싼 여야 대칡. 2004년, 대한민국 정치를 4가지 열쇠말로 풀어본다.

1. 탄핵 = 올해의 한국정치를 가장 강력한 힘으로 규정했다. 블랙홀처럼 정치판을 빨아들여, 다른 모든 변수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민심의 폭풍이 휘몰아쳤고, 한때는 지역주의의 두터운 벽마저 일거에 허물어지는 듯 했다. 17대 총선은 ‘팔할이 바람’이었다. 탄핵의 역풍에 힘입어 열린우리당은 과반 의석을 확보했고, 의회권력의 교체가 이뤄졌다. 그러나 지역주의는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 탄핵은 한국 정치사의 일대 사건이었다. 수십년간 이어져온 정치지형을 단번에 재편했다.

2. 여소야대 = 과반 의석을 확보한 열린우리당은 기대에 넘쳤다. 정권을 쥐고도 소수여당의 한계에 부닥쳐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이제는 국회에서 당당히 표결을 통해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었다. 이른바 ‘4대 법안’과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재벌 금융사의 의결권 제한, 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종합부동산세 도입 등을 의욕적으로 추진한 배경도 바로 ‘여대야소 의석분포’였다. 반면, 한나라당은 두 차례 내리 정권을 빼앗긴 데 이어 국회에서마저 소수파로 전락했다는 위기의식 속에 탈출구 모색에 부심했다. ‘암약중인 간첩’ 발언 등 색깔론을 동원해 강공을 펼친 것도 여대야소에 기죽지 않고 기선을 제압당하지 않으려는 ‘선제공격 전략’으로 풀이된다. 4·19 이후 진보정당으로선 처음으로 원내진입에 성공한 민주노동당은 의욕을 불태웠으나 10석의 한계를 곱씹어야 했다.



3. 관습헌법 = 헌법재판소는 관습헌법론을 근거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500여년 전의 경국대전을 꺼내왔다. 이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뜨거워지면서, 한동안 헌재는 사법부에서 정치의 영역으로 옮겨진 듯 했다.

열린우리당은 “앞으로 법을 만들 때는 관습헌법에 어긋나는지를 먼저 따져야 하게 됐다”며, 국회의 입법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나라당은 ‘4대 법안’을 비롯한 여당의 각종 입법 작업에 위헌론을 거론하며 맞섰다.

관습헌법론과 헌재는 국회 소수파인 한나라당에게 위력적인 무기 구실을 했다.

정부·여당은 핵심 공약으로 추진해온 수도 이전 사업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한나라당은 완전히 등을 돌린 충청 민심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 하는 처지가 됐다.

4. 4대 법안 = 여야는 17대 첫 정기국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안과 과거사 규명법안, 사립학교법 개정안, 언론관계법 등 이른바 ‘4대 법안’을 놓고 격돌했다. 법안을 추진한 열린우리당이나 필사적으로 저지한 한나라당이나 이를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로 받아들였고, 양보할 수 없다는 태도로 완강하게 맞섰다.

4대 법안은 한국의 정치세력간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에서 형성된, ‘대치전선’의 성격이 강했다. 각각의 법안에 대한 찬반 지지자들도 정확하게 일치했다. 숱한 정칟사회적 논란 끝에 두 당의 최고 지도부가 정치적 타결을 시도했으나 끝내 접접을 찾지 못한 데서도, 이 전선의 화해하기 어려운 성격이 잘 드러난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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