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 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명하는 것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벗이 된다. 이제 나는 너희를 종이라 부르지 않고 벗이라고 부르겠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모두 다 알려주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내세운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세상에 나가 언제까지나 썩지 않을 열매를 맺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실 것이다. 서로 사랑 하여라.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나의 계명이다. (요한 15:12~17)
“오히려 과거가 힘이 됐기 때문에 저는 제 과거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저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녀가 컴퓨터를 치기 시작한 것은 3년 전. 이제는 희망의집 신문 편집을 그녀가 맡을 정도가 됐다. 틈틈이 쓴 시를 모아 워드 작업을 하면서 기록해 놓은 것도 꽤 된다. 50여 편 되는데 나중에 시집을 만드는 것이 그녀의 꿈이다. 세련된 기교는 없지만, 진솔한 그녀의 마음이 촘촘히 배어 있다.
사랑의 일
사랑의 일은 힘이 들지만 저에겐 다른 힘을 준답니다. 희망과 미래의 자신을 위해 사랑의 일을 해보세요.
남에게 웃음을 주세요. 따뜻한 미소 하나가 당신의 힘이 된답니다.
사랑의 일은 힘이 들지만 저에겐 소중한 힘이랍니다.
늘 평화와 희망을 주는 미소이기에 언제나 저에겐 사랑이 넘치는 하루가 오는 것이겠지요.
그녀의 욕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수예도 1년에 한두 번씩 떠서 작품 전시회 때 출품하곤 한다. 지난 해에는 4편을 냈다. 공동방 화분을 관리하고 키우는 것도 그녀의 몫이다. 화분에서 자라나는 꽃을 보면서 그녀는 새로운 삶의 모습을 보곤 한다. 욕심 많고, 똑똑하고, 성취욕이 그녀는 강하다. 외부활동을 왕성하게 한다. 방에 있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을 밖으로 ‘나돌아’ 다닌다. 그래서 혼날 때도 있다. 언젠가 강 필립보 수녀가 말했다.
“밖의 생활만 열심히 하고 공동체 생활은 소홀해서 쓰겠니? 이것저것 네 마음가는 대로 하는 것도 좋지만 서로가 서로를 감싸안는 공동체 생활에도 참여하거라.”
그녀는 내성적이며 자기폐쇄적이었다. 그런 성격이 이것저것 마음가는 대로 하다보니 이젠 누구와 만나도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건넬 수 있는 성격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레지오 단원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이번에 분가하면 단장직을 맡게 될 것 같다는데 예전 같으면 엄두도 못 냈을 그녀가 이젠 씩씩하게 말한다.
“제게 맡겨준다면 열심히 해보이죠.”
비교적 활달해진 그녀는 이제 가족들이 눈에 들어온다. 몸을 쓰지 못하는 가족을 보면 도와주고 싶고, 마음이 아픈 가족들을 보면 따뜻한 위로를 준비하고 싶어진다. 극히 이기주의적인 성향이었던 그녀가 이젠 사랑과 봉사의 의미를 알 것도 같다고 한다.
그녀에겐 양아버지가 있다. 허희 바오로 형제님이 바로 그 분인데 6년 전에 인연을 맺게 됐다. 마음아파하며 아빠가 보고싶어 어찌할 바를 몰라할 때 그분은 진짜 아빠가 돼주었다. 갖고 싶은 것 있으면 가져다 주고,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먹여주던 분이었다. 그녀가 서른이 됐을 때 양아버지가 말했다.
“이제 너도 서른이 됐으니 홀로서기를 해야한다.”
올 3월까지 오시더니 발길을 뚝 끊어버렸다.
“너도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다.”
그녀는 발길을 뚝 끊은 양아버지가 보고싶어 엉엉 울었었다. 창가만 바라보며 오늘 오시려나 내일 오시려나 기다리는 마음만 커져갔었다. 그러나 이제는 알고 있다. 양아버지의 그 냉정한 마음이 바로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이제 세상을 홀로 서야만 할 서른이 넘은 처녀에게 주어야 할 양아버지의 큰 마음이라는 것을.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무엇인가 성취했을 때 그녀는 삶의 보람을 느낀다. 그 작은 행복이 지금 그녀가 살아가는 삶의 가장 소중한 밑천이다. 꽃동네에 들어와서 그녀는 자신보다 더 아픈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은 그나마 행복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가족들, 힘만 닿는다면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다.
“주님께서 저를 좋은 곳으로 데리고 오셨구나, 난 선택된 사람이었구나. 그런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제는 제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걱정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간질병으로 학교도 중도하차해야 했고, 가족들과 자신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생이별을 겪어야만 했고, 꽃동네 들어와서도 세 차례에 걸쳐 자살을 시도했던, 이제 나이 서른의 젊은 청춘. 그러나 그녀는 누구를 원망하지 않는다. 원망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삶은 자신의 것이며, 이런 삶을 주신 것 또한 주님께서 하나의 의미를, 하나의 역할을 주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녀의 소원은 한 가지 있다. 온누리에 내리는 함박눈에 세상이 모두 정결한 모습으로 갈아 입듯이 자신의 간질병이 깨끗하게 치유돼 가족들을 돌보는 일에 소홀함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 그것이 그녀가 갖고 있는 소박한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