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100주년, 기억해야 할 저항의 역사 … 음성군 독립유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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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100주년, 기억해야 할 저항의 역사 … 음성군 독립유공자
  • 고병택 기자
  • 승인 2019.08.14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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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는 절망으로 점철된 시기가 아니라 희망과 용기의 시대다. 외면하고 싶은 아픈 역사가 아니라 기억해야 할 저항의 역사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았다.

이른바 일본과의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는 작금의 현실 앞에, 이들의 저항의 역사는 99년의 시간을 거슬러 우뚝 다가선다. 

음성군 출신의 독립유공자는 총 41명으로 파악됐다. 이 가운데 후손들이 음성군에 거주하는 유공자는 6명이다. 또 타 지역 출신을 포함하면 총 15명의 유공자 후손들이 음성군에 살고 있다.

하나의 뜻 아래 목숨을 걸고 맞서 싸웠던 음성군 애국지사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애국지사는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항거한 사실이 있는 자로서, 그 공로로 건국훈장·건국포장 또는 대통령표창을 받은 자이다./편집자주

음성군 출신 독립 유공자 명단.
음성군 출신 독립 유공자 명단. (제공=음성타임즈)

[후손들이 음성군에 거주하고 있는 음성군 출신 독립유공자 / 출처:국가보훈처]

김영익(金榮翼), 생년월일:1898-09-16

충북 음성(陰城) 사람이다.

1919년 3월 28일 음성군 음성면(陰城面) 음성시장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3월 18일 천도교인들이 주도한 만세운동이 일어난 후에 전개되었다. 초천리(草川里) 서당에 다니고 있던 김영익이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정민영(鄭玟永)과 함께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심하면서 추진되었다.

거사 당일인 3월 28일 오후 4시경 김영익은 서당 동료들과 함께 음성시장에 가서 준비한 선언서와 태극기를 운집한 군중에게 배포하였다. 

그리고 김영익이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장터에 모인 군중들도 이에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시가행진을 전개하였다.

그는 이 일로 인해 같은 해 7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4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제성(朴濟成), 생년월일:1902-12-26

충북 음성(陰城) 사람이다.

그는 1919년 4월 2일 충북 음성군 대소면(大所面) 오유리(五柳里) 뒷산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대소면의 만세운동은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평소 항일의식이 투철하던 박제성을 비롯하여 민병철(閔丙哲)·박영록(朴永祿) 등이 만세운동 계획을 추진함으로써 비롯되었다.

이들은 거사일을 4월 2일로 정하고, 거사에 필요한 선언서와 태극기를 인쇄·제작하는 한편 동지 포섭 등 준비에 만전을 기하였다. 그리하여 거사 당일인 4월 2일 밤 면사무소에 운집한 군중은 1천여 명에 달했다.

그는 이 일로 1919년 5월 10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형(笞刑) 90도를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유근배(柳根培), 생년월일:1921-03-25

충북 음성(陰城) 사람이다.

1942년 11월 충북 음성에서 비밀결사 흑민단(黑民團)의 단원으로 독립운동자금 모집활동을 하였다.

유근배는 윤규섭(尹 燮)·최규동(崔奎東)·김시중(金時中)·남상엽(南相燁) 등과 함께 1941년 흑민단이란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흑민단은 독립운동자금 모집·동지규합·특공대 조직결성·타단체와의 연락 및 접선 등을 주 목적으로 하였다.

그들은 목적에 따라 독립자금 모집과 단원모집활동을 전개하다가. 일경에 발각되어 1942년 9월 피체되었다.

그는 이 일로 1944년 11월 29일 대전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정학(尹正學), 생년월일:1867-10-25

윤정학은 충북 음성 출신으로 유인석의 문인이었다. 1896년 을미의병 당시 유인석의진(柳麟錫義陣)에 참여하여 의병 활동을 하였으며, 1909년경 국내에서 유인석으로부터 의병봉기를 촉구하는 서신을 받았다.

유인석은 1895년 8월 명성황후 시해사건 후 1896년 1월 12일 문인 이필희(李弼熙),서상열(徐相烈),이춘영(李春永),안승우(安承禹) 등이 일으킨 지평의진(砥平義陣)의 대장으로 추대되었다. 

윤정학은 1896년 2월 유인석의진이 충주성을 공격하여 점령할 때 참여하였다. 1898년 유인석인 중국 요동으로 들어간 뒤 은거하였는데, 1909년 연해주에서 국권회복을 위해 활동하고 있던 유인석으로부터 의병봉기를 촉구하는 서신을 받기도 하였다. 

윤정학은 학문에 몰두하여 50여 권의 저술을 남기기도 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용호(李龍浩), 생년월일:1889-03-11

충청북도 음성(陰城) 사람이다.

1919년 4월 1일 소이면(蘇伊面) 한천(漢川) 장터에서, 김을경(金乙卿)·이중곤(李重坤)·권재학(權在學) 등이 주동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여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고, 군중들을 이끌고 면사무소까지 행진하여 당시 면장이던 민병식(閔秉植)에게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도록 권유하였다.

그러나 출동한 일본 경찰에게 김을경·이중곤이 연행되자, 시위군중을 이끌고 경찰주재소로 몰려가서 구금자의 석방을 요구하며 계속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주재소를 파괴하는 등 활동하다가 체포되었다. 

이해 10월 2일 고등법원에서 태(笞) 90을 확정 받았으나, 혹독한 고문과 모진 태형의 여독으로 바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이헌(鄭履憲), 생년월일:1872

충청북도 음성(陰城) 출신이다.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화 책동이 노골화 되어가자 문경(聞慶)에서 거의한 운강 이강년(雲崗 李康秊) 의진에 입진하였다. 이강년 의진은 처음에는 경북에서 활약하였으나 후에는 충북과 강원도에서 활약하였다.

이러한 때에 이강년 의진에 입대하게 된 정이헌은 충주(忠州) 금목 일대에서 의병 소모 활동과 아울러 직접 전투에 참가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1907년 적과의 접전에서 실패하고 형의 집에 은신하던 중 체포되어 10월 23일 우목동 후산(后山)에서 적에게 피살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음성군 거주 독립유공자 후손 명단.
음성군 거주 독립유공자 후손 명단. (제공=음성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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