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교육심리학자 알피콘, ‘교육자치콘퍼런스’에서 주장
1등 강요하는 경쟁사회 구조, 학부모·교사 인식 개선해야
“고등학교 전까지는 숫자로 매겨지는 모든 평가 없애야”

‘2019 대한민국 교육자치 콘퍼런스’에서 첫 번째 특강 강연자로 나선 미국 교육심리학자인 알피콘(Alfie Kohn) 씨가 강의를 하고 있다.
‘2019 대한민국 교육자치 콘퍼런스’에서 첫 번째 특강 강연자로 나선 미국 알피콘(Alfie Kohn) 교육심리학자가 강의를 하고 있다.

미국 교육심리학자인 알피콘(Alfie Kohn) 이 청주에 왔다. 그의 대표 저서인 ‘경쟁에 반대하다’는 경쟁은 좋은 것이고 권장해야 한다는 기존의 통념에 반기를 든 책으로 경쟁교육으로 찌들어져 있는 대한민국 교육자,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내용이다.

‘자치와 혁신, 교육이 지역을 살린다’는 주제로 7일부터 9일까지 한국교원대학교에서 열리는 ‘2019 대한민국 교육자치 콘퍼런스’에서 첫 번째 특강 강연자로 나선 알피콘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경쟁이데올로기.

‘선의의 경쟁을 통해 최고의 성과물을 얻어야 한다’, ‘이기고 지는 것에 관대해야 한다’, ‘좋은 경쟁자가 되자’

수많은 미사여구가 있지만 경쟁이데올로기는 수십 년간 우리 교육계를 군림, 많은 학생들에게 피해와 고통을 줬다. 가장 높은 성적을 받은 학생만이 우월한 지위와 대접을 받았고, 그렇지 못한 대다수 학생들은 부당한 지위와 대접을 감수했다. 심지어 ‘나쁜 결과’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열등감을 키워왔다.

교육혁명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쟁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경쟁논리는 우리교육 뿌리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경쟁교육으로 인한 폐해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한다.

그렇다면 경쟁교육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학급에서 반 등수를 매기지 않는 것? 우수한 아이들에게만 발언권이 주어졌던 과거의 수업방식을 개선하는 것? 과연 그것만으로 가능할까?

‘경쟁에 반대하다’의 저자이자 미국 교육심리학자인 알피콘(Alfie Kohn) 은 다소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숫자로 된 모든 평가를 없애야 합니다! 경쟁과 평가가 없을 때 학생들이 더 좋은 성취감을 느끼고, 더 좋은 학습자가 된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밝혀진 내용입니다.”

 

알피콘은 ‘경쟁을 넘어서야 미래교육이 보인다’는 주제로 2시간 동안 특강을 진행했다.

1000석이 넘는 한국교원대 교육문화원에는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참석, 큰 관심을 받았다.

 

그는 특강에서 숫자로 아이들을 점수화하고 서열화하는 것은 '최악 중의 최악'이라고 못 박았다. 

“지금 당장 경쟁위주의 교육환경을 바꿔야 합니다. 대다수 학생들은 침묵하고 있지만 많은 학생들이 경쟁교육으로 너무나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사회문제로 확대될 것입니다. 특히 시간을 정해놓고 평가하는 4지 선다형의 테스트는 최악입니다. 객관식 문제는 학생들을 속이기 위해 만든 테스트로 학생 스스로 답을 만들어가고 찾는 기회를 빼앗습니다.”

강연에 따르면 사람은 내재적·외재적 동기에 의해 학습 또는 활동을 하게 된다.

경쟁에서 이기고자 하는 심리는 지극히 외재적인 동기다. 외재적 동기와 내재적 동기는 서로 반비례 관계로 경쟁이 심화될수록 내면에 있었던 본래의 동기는 감소하게 된다. 예를 들어 경쟁관계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은 결국 공부를 하는 목적, 즉 꿈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특히 경쟁을 부추기는 보상이나 상은 절대 교육적이지 못하다.

나아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공부는 학생들의 인간관계를 망치고 정신세계를 피폐하게 만든다.

알피콘 씨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왜, 수십년째 1등 또는 우수한 학생을 강조하는 경쟁교육이 계속되는 것일까?

그는 이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부모들의 대리 성취감 때문입니다. 이것은 질병입니다. 부모는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만 이것은 자녀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알피콘은 학부모와 교사들의 인식개선과 함께 사회구조적인 문제도 언급했다.

경쟁교육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방법과 장기적인 방법이 있는데 학부모들과 교사들의 인식개선은 단기적인 방법에 해당된다. 또 사회구조를 바꾸는 것은 장기적인 방법이다.

“경쟁교육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많은 학부모들과 교사들은 우리 아이들만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합니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러면 교육은 변화할 것입니다. 또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명문대에 가고, 또 명문대에 가기 위해서 어릴 적부터 학생들을 경쟁교육에 내모는 시스템을 바꿔야 합니다. 근본적인 것은 사회구조와 제도, 법을 바꾸는 것입니다. 명문대에 가도 대접받지 않는 사회, 무조건 돈을 많이 벌 수 없는 구조, 점수에 따라 대학의 서열을 매기는 시스템을 바꿔야 합니다.”

‘한국에서 숫자로 된 점수를 없애다니…’

파격적인 내용인 만큼 ‘현실적이지 못하다’라는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알피콘의 특강은 분명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았다.

그는 '자원이 없는 한국과 같은 작은 나라에서 경쟁을 없앤다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청중 의견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쟁을 통해 성과를 얻고 성취감을 얻었다는 연구결과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것은 경쟁관계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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