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복천암' 2개 영화에 동시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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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복천암' 2개 영화에 동시 출연(?)
  • 권혁상 기자
  • 승인 2019.08.0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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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세종, 복천암 신미대사와 한글 창제 작업
'광대들 : 풍문조작단' 세조, 복천암가는 길 정이품송 만나

8월 휴가철을 맞아 조선시대 충북 역사가 담긴 극영화 2편이 상영돼 도민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난달 24일 개봉돼 7일 관객 100만명을 돌파한 '나랏말싸미'(조철현 감독)와 오는 21일 개봉 예정인 '광대들 : 풍문조작단'(김주호 감독) 이다.

영화 '나랏말싸미'는 세종대왕 한글 창제 과정의 주역으로 속리산 법주사 말사인 '복천암'에 기거했던 신미대사를 등장시켰다. 이같은 설정에 대해 한글학회는 '근거없는 주장'이라고 비판했고 제작사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작가의 상상력을 입힌 '픽션'임을 강조했다.

역사속 실존인물인 신미대사(1405?~1480?)는 영동 출신 명문가에 태어나 10대 후반 성균관에 입학한 수재였다. 하지만 과제급제후 관직에 있던 부친이 불충죄로 축출당하는 처지가 됐고 결국 신미대사는 속세를 떠나 속리산 법주사로 출가한다. 승려가 된 신미대사는 불교 범어는 물론 인도어, 티벳어에 능통하게 됐고 나중에 불경 원서를 한글로 번역한 '석보상절' '원각경' 등을 펴냈다. 따라서  한글학자들은 한글 대중화의 숨은 공신으로 신미대사를 첫손에 꼽고 있다.

세종대왕(송강호 분) 앞에서 제자들과 문자에 대한 설명을 하는 신미대사(박해일 분)-'나랏말싸미' 스틸 컷-
세종대왕(송강호 분) 앞에서 제자들과 문자에 대한 설명을 하는 신미대사(박해일 분)-'나랏말싸미' 스틸 컷-

이같은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영화 '나랏말싸미'는 신미대사와 제자들이 세종대왕의 명을 받아 한글을 만든 주역으로 묘사했다. 신미대사는 20년을 복천암에 기거하다가 합천 해인사, 경복궁 내불당 등을 거쳐 말년에 다시 복천암으로 돌아와 78세에 입적했다. 복천암 근처에 신미대사 부도탑(보물 1416호)이 있고 속리산둘레길 2구간을 '신미길'로 명명했다.

영화속에는 신미대사를 만나기 위해 세종대왕이 눈에 안대를 하고 초수(북이면 초정리)로 행차하는 모습과 초수로 눈을 씻는 모습이 등장한다. 현재 청주시는 초정리에 세종대왕 행궁 복원공사 중이며 오는 10월 개관예정이다. 진작 개관했다면 영화속 실제 촬영장소가 될 뻔 했는데 아쉬운 대목이다.

세조의 어가행렬이 속리산 정이품송을 지나는 장면-'광대들 : 풍문조작단' 스틸 컷-
세조의 어가행렬이 속리산 정이품송을 지나는 장면-'광대들 : 풍문조작단' 스틸 컷-

영화 '광대들 : 풍문조작단'은 세종의 차남인 세조 정권을 시대배경으로 삼았다.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집권한 세조는 권력의 정통성 확보를 위해 여론조작에 나선다는 것. 실제로 세조 실록에 기록된 13년 재임기간 동안 기이한 현상이 40여건에 달한다. 영화에서는 당시 세조의 장자방이었던 ‘한명회’가 소문난 광대에게 "왕을 위한 미담을 만들어내라"는 명을 내리는 것으로 설정했다.

이에따라 광대패 5인방이 본격적으로 풍문을 조작하기 위한 작전을 짜고 임금이 탄 가마가 행차할 때 소나무가 스스로 가지를 들어올려 길을 터주는 아이디어가 등장한다. 이게 바로 세조가 아버지 세종이 다녀간 속리산 복천암을 방문할 때 스스로 가지를 들어올렸다는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의 이야기가 된다. 이같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의 입소문이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가 세조 정권은 '풍문조작'의 효과를 톡톡히 거둔다는 스토리다. 이밖에 세조가 세운 '원각사'에 4가지 꽃비가 내리는 장면도 연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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