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오토바이 몰다 교통사고, 1년간 의식불명
기적적으로 회복, 사고 합의금은 고모가 가로채

지난 2008년, 불법유턴하던 택시와 충돌해 입은 상처. 김영재(가명) 씨는 이후 1년간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에 입원해있었다.
지난 2008년, 불법유턴하던 택시와 충돌해 입은 상처. 김영재(가명) 씨는 이후 1년간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에 입원해있었다.

지난 2008년 8월1일 새벽 2시. 청주시 금천동 한 도로에서 배달 오토바이를 몰던 김영재(가명·28)씨는 맞은편 도로에서 불법유턴을 하던 택시와 충돌했다.

이 사고로 외상성 뇌출혈 등 머리에 큰 충격을 받은 김 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당시 그의 나이는 18살에 불과했다. 병원에서조차 그의 회복가능성을 낮게 봤지만 사고 후 1년 뒤. 그는 기적적으로 의식을 회복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김 씨는 “눈을 떠보니 대구의 한 요양병원이었고 사고 당시 기억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사고가 났었는지도 몰랐다”며 회상했다.

'기적', '축복' 1년 만에 병상에서 일어선 그에게 붙여진 수식어였지만 현실은 달랐다. 의식을 회복한 뒤에도 6개월 이상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아야 했고 사고 후유증도 심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막막했다. 술만 마시면 가족에게 폭력을 일삼다 가족 곁을 떠난 아버지. 몸이 불편해 기초생활수급비로 생계를 이어가는 어머니. 장애를 가지고 있는 여동생. 10살 터울의 막내까지, 그에게 ‘기적적 생존’의 기쁨은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당장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가 그에게 닥친 현실이었다. 병원에서 퇴원한 뒤 청주에 살고 있는 어머니 집으로 향한 김 씨. 10평 남짓의 임대아파트에는 어머니를 포함해 여동생 2명, 중학생인 막내 남동생까지 이미 4명이 함께 살고 있었다.

여기에 김 씨 까지 5명이 생활을 해야 했고 당장 돈을 벌지 못하면 다음날 끼니 걱정까지 해야 했다.

김 씨는 “엄마와 동생들은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했다. 몸이 불편해 기초생활 수급비로 연명했고 동생은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며 “당장 내가 돈을 벌어야지 가족들이 굶지 않고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1억7천만 원의 보상금, 누가 가져갔나?

근근이 가족들과 생활을 이어가던 김 씨는 자신이 사고를 당한 것과 관련해 택시회사로부터 거액의 보상금이 지급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실제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는 김 씨의 사고 합의비 명목으로 2008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총 1억7000만 원을 지급했다.

지난 2010년 12월, 대구지방법원이 김 씨와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에 내린 화해권고결정을 살펴보면 당시 재판부는 “피고(택시운송조합연합회)는 원고에게 170,000,000원을 2011년 1월14일까지 지급한다. 만일 피고가 위 지급을 지체하면 미지급 금원에 대해여 지급기일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20%의 비율에 의한 지연손해금을 가산하여 지급한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당시 지급 기록에 따르면 이 합의금을 받은 것은 다름 아닌 김 씨의 고모였다. 김 씨의 아버지가 사망한 뒤 당시 미성년자였던 김 씨의 친권을 가져간 고모가 합의금을 대신 지급받게 된 것.

이 사실을 알고 김 씨는 고모를 찾아가 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합의금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그에게 돌아온 건 폭언뿐이었다.

김 씨는 “합의금을 돌려달라고 하자 소리를 지르며 ‘돈 없다’, ‘변호사 비용으로 다 썼다’고 말했다”며 “집으로 돌아가라며 5만 원 짜리 한 장을 쥐어준 것이 전부였다”고 토로했다.

이어 “어렵게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돈이 없어서 제대로 된 치료도 못 받고 가족들이 기거할 제대로 된 집도 하나 없다”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는 김 씨의 사고 합의비 명목으로 2008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총 1억7000만 원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는 김 씨의 사고 합의비 명목으로 2008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총 1억7000만 원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변호사 비용만 수백만 원, 도움 절실

합의금을 모두 사용해 돌려줄 돈이 없다는 고모에게 김 씨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민사소송뿐. 하지만 당장 돈이 없어 다음날 끼니 걱정을 먼저해야하는 김 씨에게 소송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사정을 전해들은 한 공익변호사의 도움으로 법원으로부터 소송구조를 받아 김 씨가 그동안 지급받지 못했던 합의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김 씨를 대리해 소송을 맡은 변호사는 “피고(고모 A씨)가 지급받은 돈은 원고를 위한 교통사고 합의금이고 피고는 이를 알고 있었다”며 “피고는 택시공제조합으로부터 받은 합의금에 이자를 붙여 반환하고 손해가 있으면 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 씨의 고모가 받은 합의금은 부당이득이고 이에 따라 즉각 원 소유자인 김 씨에게 반환되어야 한다는 것.

기적적으로 의식을 회복했지만 단 한 푼의 보상금도 지급받지 못한 김 씨. 당시 사고로 인한 후유증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도 구할 수 없어 일용직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남은 가족들도 부양해야 하는 것은 물론 사고 후유증에 따른 치료도 현재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고모에게 돈을 돌려받으면 무엇을 제일 먼저 하고 싶은지 묻자 김 씨는 웃으며 답했다.

"제대로 된 집이 없어 가족들이 이리 저리 옮겨 다니며 잠을 청해야했습니다. 합의금을 받으면 제 치료비 보다는 작게나마 편하게 쉴 수 있는 전세집을 가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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