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충청도는 들리리만 섰지”
“다른 문화축제로 전환해야 할 시졈

진천은 깊은 충격에 빠져 있었다. 어찌 보면 그것은 실망과 좌절감을 넘어 배신감이 뒤섞인 충청도 소외론이었다. 진천에는 정치논리 때문에 탈락했다는 분위기가 짙었다. 그동안 태권도 공원 유치에 행정력을 ‘올인’해온 김경회 군수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번에도 충청도는 들러리만 섰지 뭐. 우리보다 훨씬 못한 무주가 된거 보면 몰라. 어떻게 춘천하고 무주가 우리보다 낫다는 건지 원. 이러다 제2선수촌도 천안이나 음성으로 가지 진천으로 오겠어 두고보라니까 휴~”

태권도 공원 유치 후보지 탈락이 확정된지 4일째 접어든 지난 17일 오전. 군청에서 만난 한 공무원이 내뱉은 첫마디 말이다. 군청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공무원들도 일손을 제대로 잡지 못한채 삼삼오오 모여 태권도공원 유치 좌절에 따른 여파를 걱정하는 눈치들이었다. 한 공무원은 “급한 결재가 아니면 군수결재는 맡을 엄두도 못내고 있다”며 침통한 군청내 분위기를 전했다.

같은 시각 군청에서는 이석표 부군수 주재로 김종률 국회의원과 20여명의 지역 사회단체장이 참석한 가운데 ‘태권도공원 관련 사회단체장과의 간담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사회단체장들은 한결같이 무거운 분위기였다. 인사도 나누지 않고 조용히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간담회는 시종일관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한 사회단체장은 “진천이 힘이 없고 얼마나 나약한지 다시한번 깨달았다. 심사결과 공개를 주장해야 한다. 전 군민이 죽기살기로 궐기해야 한다.”

또 다른 사회단체장은 “서운하고 참담하다. 선수촌 유치도 들리리가 뻔하다. 그래서 군민들이 충격과 좌절감을 맛보지 않기 위해서는 오히려 추진하지 않하는게 낫지 않느냐.”

김종률 의원은 “KOC와 문광부장관에게 심사결과를 공개하고 승복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심사위원회가 회의체로 운영돼 결과를 뒤집기는 사실상 힘든 상태다”고 정부의 분위기를 전했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서까지 진행된 이날 간담회에서 사회단체장들은 뒷짐만진 채 힘을 실어주지 못한 충북도에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고 정치권에 뭔가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날 김경회 군수는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출근을 하지 않았다. 핸드폰도 꺼둬 연락조차 두절된 상태였다. 김 군수가 받은 충격과 상실감을 짐작케 했다.

유승언 비서실장은 “군수님의 상실감이 누구보다 큰 것 같다. 오죽했으면 병까지 낫겠어요”라며 김경회 군수의 심정을 미뤄 전했다.

태권도 공원 후보지 탈락이 발표되자 군의회는 내년도 세계태권도 화랑문화축제 예산에 제동을 걸었다. 군이 내년 본예산에 계상한 축제 예산 8억원중 7억원을 삭감하겠다고 나섰다. 축제의 타당성을 재검토해야 한다는게 군의회의 입장이었다. 이 때문에 16일에는 군수와 군의원들간에 고성이 오가며 한때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고 한 공무원은 전했다.

점심시간이 막 끝난 시간. 군의회 의원사무실도 술렁이고 있었다. 군청 공무원들이 찾아와 태권도 화랑문화축제 예산 조정을 설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의원들의 입장은 단호해 보였다. 주민들이 반대하는 행사에 예산을 지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김덕규 부의장은 “태권도 문화축제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일단 1억원의 예산으로 행사를 추진하고 필요하면 추경에 세워주겠다고 집행부에 얘기했다. 하지만 군민들은 이제 그만하자는 여론이 많다. 군의원들은 군민들의 의견에 따를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일부 주민들은 태권도 성지는 경주, 공원은 무주, 올림픽은 춘천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래서 군민들은 태권도 행사는 이제 그만하고 다른 축제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다른 의원들도 다 같은 생각이다”며 지역 여론을 전했다.

태권도공원 유치가 무산된 진천읍내에는 아직도 도로마다 ‘태권도 공원 최적지 진천’이라는 플랜카드가 곳곳에 눈에 띄었다. 주민들은 생각보다 조용한 편이었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태권도 공원이 유치되던 말던 무슨 상관이냐는 태도였다. 한편으로는 태권도 공원에 부정적인 이야기를 꺼내기에는 아직 조심스러워 했다. 그래서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들은 모두 실명을 밝히기를 꺼려했다.

진천읍에서 수 년째 노점상을 한다는 김모(53)씨는 “충북이 힘이 없어서 안된거지. 김종호처럼 그래도 힘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모르지만. 그리고 충북사람들이 어디 추진력이 있어야 말이지”

그는 “사실 지역에 그런게 유치되면 좋기야 하겠지. 그렇지만 진천에 호텔이 있어 관광지가 있어. 외국사람들이 들어와도 볼게 없잖아. 내가 보기엔 첨부터 좀 무리라고 생각했어”라며 당연한 결과라는 눈치였다.

익명을 요구한 지역 인사는 “처음엔 군수에 대한 동정론이 강했지만 지금은 비토하는 세력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여기서 멈춰야 한다. 이제는 태권도에 미련을 버리고 다른 문화축제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진천군이 태권도 공원 유치 대상지로 발표했던 광혜원면 주민들도 외관상으로는 조용해 보였다. 드러내놓고 욕하진 않지만 태권도 관련 행사를 계속 추진하는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여론이 우세한 편이라고 한 지역인사는 전했다.

한 지역 주민은 “태권도 공원 유치 탈락으로 주민들도 기분들이 몹시 상해 있다.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다. 하지만 떠든다고 해서 정책적으로 바뀔 것은 아니지 않느냐. 여기서 손떼는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그는 또 “군수도 냉정해져야지 미련을 두면 함정에 빠질수 있다. 지금도 예산을 얼마나 썼느냐. 농사 짓는 사람들은 그 돈을 농업에 투자했으면 좋았지 않았느냐는 얘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냉정을 찾고 다른 방도를 연구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다”고 말했다.

태권도 공원 유치 실패로 김경회 군수는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일부 주민들은 군수의 책임론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었다.

한 주민은 “현명한 군수라면 태권도는 여기서 멈춰야 한다. 태권도 성지나 박물관 건립도 주민 여론을 수렴해서 결정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태권도에 미련을 두면 정말 위기를 맞을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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