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 인류가 출현한 무렵인 신생대 제4기 홍적세에는 250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 사이에 여러 차례의 빙기와 간빙기가 있었다. 빙기는 극지방의 빙하가 땅덩어리를 얼음으로 뒤덮을 정도의 강추위였고 간빙기는 빙기와 빙기 사이로 기온이 약간 올라가 그런 대로 살만 하였다. 자연에 대한 인류의 적응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그 얼음덩어리 속에서도 번식과 생존을 거듭해왔기 때문이다. 마지막 빙기가 극성을 부리다 물러갈 채비를 차비고 있을 때, 단양 수양개에서는 지혜를 갖춘 일단의 호모사피엔스(슬기슬기사람)들이 물 좋고 양지바른 남한강가 모여 살았다.

그들은 이곳에서 사냥을 하고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살았다. 동굴인 아닌 한데(야외)에서 과감히 자연과 맞선 것이다. 구석기인이 동굴에서 한데로 나올 때에는 그만한 자신감과 지혜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정확한 집의 구조는 알 수 없으나 49개에 달하는 석기 제작소, 그리고 수만 점에 달하는 석기는 이 땅에 살다간 선인의 숨결을 확실히 말해주고 있다. 석기 중에는 ‘슴베 찌르개’라는 게 있다. 우리말로 슴베는 연결부분, 즉 목 부분을 말한다. 따라서 슴베 찌르개는 돌을 날카롭게 손질하여 삼각형으로 만든 다음 나무 등 다른 연모에 연결하여 사용하였다.

도구의 모양을 삼각형으로 만든 것은 살상력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철기시대의 화살, 창이 이런 형태를 띤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그러니까 슴베 찌르개는 그 후에 나타난 여러 무기와 사냥도구의 원조 격이 된다. 길이 10cm 안팎의 이 작은 연모는 선사인의 이동경로를 유추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수양개에서 출토된 슴베 찌르개는 전남 화순, 대전 지역에서도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일본 큐슈지방에서 출토되는 슴베 찌르개는 단양 수양개 출토품과 형제처럼 닮아 있다.

삼각형의 돌날은 지금도 살아있는 듯 예리하다. 그렇다면 양 지역의 석기가 왜 이처럼 닮아 있을까. 당시의 사람들이 돌날을 만드는 하이테크를 가지고 이동을 했던 것이다. 충북대 이융조 교수는 그 전파 루트의 한 갈래를 단양 수양개~전남 화순, 대전~일, 큐슈로 잡고 있다. 일 고고학계에서도 이 학설은 거의 정설로 수용하고 있다. 석기가 닮은꼴인데다 연대측정 결과 단양 수양개가 1만7천년~1만5천년으로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큐슈지방 전역에서는 수양개 사촌쯤 되는 슴베 찌르개가 자주 출토된다. 나고야성 박물관에서는 이 석기의 전래를 수양개로부터 왔다고 명시하고 있다.

큐슈 남단의 가고시마(鹿兒島)는 슴베 찌르개의 집중 출토지이다. 쪽빛바다와 열쇠구멍처럼 생긴 꼬불꼬불한 물굽이는 동양의 나폴리라 불릴 정도로 아름답다. 활화산 사쿠라지마가 연기를 내뿜고 크고 작은 섬이 이어져 열도를 형성하는 이곳은 ‘섬 중의 섬’으로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진다. 지난 17일~18일, 가고시마 이부스키에서는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만나 양국의 현안을 논의하는 한일정상회담을 가졌다.

고이즈미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한국 영화 쉬리, 친구를 보았다”며 “양국 관계도 진정한 친구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의 발언 이전에, 자그마치 1만5천 전부터 우리와 일본은 석기의 문화를 교류한 친구였다. 때로는 그 예리한 칼날로 적지 않게 상처를 입기도 했다. 앞으로는 그 칼날을 접고 태평양 시대의 진정한 동반자가 되길 기대해 보는 것이다.   / 언론인,항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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