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아 학교’로 낙인찍혔던 주덕고, 2022년 폐교 결정

공동체회의 등 변화의 바람 불기 시작했는데 아쉬움 남아

주덕고등학교 전경.
주덕고등학교 전경.

 

쓸쓸했다.

그동안 많은 학교를 방문해 봤지만 쓸쓸함이 느껴지는 학교는 이번이 처음이다.

3년 후, 정확히 말하자면 2년 6개월 후면 이 학교가 없어지기 때문일까?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명색이 개교한지 30년이 넘고, 20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다녀간 고등학교인데 쓸쓸함이라니…. 수업시간이어서 그런가? 교실 안은 조용하기만하다.

유난히 크게 들리는 나뭇잎 소리, 새소리마저 쓸쓸하게 느껴진다.

2년 6개월 후면 충주의 주덕고가 사라진다. 35년의 전통을 뒤로 하고 그야말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다.

충북도교육청은 지난 20일 충주의 주덕고와 괴산의 목도고를 2022년 3월 1일자로 폐교한다고 밝혔다. 이미 69.4%, 78.7%의 학부모 동의도 얻었다.

물론 농촌지역의 폐교는 뉴스거리도 되지 않을 만큼 흔한 일이 됐다. ‘저출산의 폭격’은 가장 먼저 학교를 강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주덕고 폐교를 저출산 때문만이라고 할 수 있을까? 큰 학교는 아니지만 바로 옆 주덕중학교에는 현재도 70명이 넘는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다. 이 학생들이 주덕고로 그대로 진학만 해줘도 주덕고가 폐교됐을 리는 만무하다.

 

“지역명문고로 거듭날 계획도 있었는데… ”

주덕고는 1985년에 문을 열었다.

당시 신니면, 주덕읍 등 인근 지역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훌륭한 학생들을 양성해보자며 희망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개교 당시에는 100명이 넘는 학생이 이곳에서 꿈을 키우기도 했다. 주덕중학교와 나란히 붙어있으니 소규모 학교로 수월하게, 또 알차게 아이들을 교육시키겠다는 다짐도 있었다.

지금도 주덕고 입구에는 학교의 발전계획을 써놓은 ‘중·장기 발전계획’이 당당히 붙어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는 ‘적용발전기’로 학습환경을 개선하고 학력을 도약시키며 기숙사도 조성할 계획이었다. 또 ‘확장성장기’인 2021년부터 2022년까지는 수월성교육과 지역인재를 육성해 이른바 지역명문고로 거듭난다는 계획도 있었다.

 

주덕고등학교 현관 앞에 붙어있는 주덕고의 '중장기 발전계획'
주덕고등학교 현관 앞에 붙어있는 주덕고의 '중장기 발전계획'

 

하지만 계획은 계획일 뿐.

주덕고는 결국 비평준화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30여 년 동안 어깨 한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됐다.

주덕고가 없어진다고 했을 때 반대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 흔한 동문회의 반대도, 지역주민의 반대도 없이 순리로 받아들여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주덕고에는 동문회 자체가 없단다. 마을에서 학교가 없어지는데 이렇게 조용할 수 있는 걸까?

하지만 대놓고 말하진 못하지만 우리는 모두 이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주덕고? 없어져도 상관없는 학교 아닌가?’

 

비평준화의 그늘 속에서…

인문계고인 주덕고는 다른 인문계고등학교와는 달리 조금은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비평준화제도로 인해 발생된 특징인데 주덕고는 일명 ‘공부꼴찌’, ‘문제아’ 학교로 알려져 있다.

“자가용으로는 충주 시내권에서 10~15분 거리이지만 버스로는 40~50분, 1시간까지도 걸립니다. 일단은 교통이 불편하니까 아이들이 진학을 안 합니다. 또 성적이 낮은 아이들이 점수에 밀리고 밀려서 주덕으로 옵니다. 한마디로 공부를 못해 갈 때가 없는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죠. 그렇다보니 주덕중학교 학생들도 충주시내로 나가지 주덕고로는 진학하지 않습니다.”

충주고, 충주여고, 중산고, 예성여고, 국원고 등을 거쳐 탈락한 학생들이 마지막으로 주덕고로 온다는 얘기다.

문제(?) 많은 아이들은 한곳에 모이니 이 아이들이 힘을 모아 더욱 큰 문제(?)를 일으켰고, 급기야는 교사도, 부모도 감당할 수 없는 통제 불능 학교가 됐다고. 학업중단률 1위, 학교폭력 1위는 주덕고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체험학습을 가려고 해도 관광버스 기사들도 오려고 하지 않아요. 의자시트를 찢어 놓기도 하고 운전에 방해가 되니까요. 수업시간은 또 어떻고요. 엎드려 자는 건 양반이죠. 책상을 붙여놓고 누워 잠을 자기도 하고 아예 바닥에 누워 자는 아이들도 있었어요. 담배를 피지 말라고 해도 선생 말을 들은 척도 안해요. 통제가 전혀 안된다고 봐야죠.”

“학교 안에서 거의 매일 주먹다짐이 있었어요. 경찰이 오는 경우도 비일비재했고 수업을 할 수가 없었어요.”

주덕고와 관련된 일화는 교사마다 끊임이 없다.

주덕고가 한창 ‘문제학교’로 명성(?)을 떨치던 시절, 이 학교에 재직했던 교사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한다.

“교사로써 좌절감과 자괴감을 느꼈어요. 희망과 꿈을 주고 싶은데 정말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안타깝고 아쉽고 너무 힘들었습니다.”

“수업에 들어간 여교사들 중에 울지 않은 교사는 아마 없을 겁니다. 사표를 낸 사람도 있었으니까요.”

충주고등학교와 충주여고가 지역의 명문고로 명망과 추앙받던 시절, 주덕고는 그렇게 악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어느덧 ‘없어져도 되는 학교 아닌가?’하며 외면 받는 학교가 돼버렸다.

 

교사가 변화의 물꼬 터

그렇게 주덕고가 모두에게 외면당하던 시절, 변화는 일부 교사들에 의해 시작됐다. 현재는 도교육청에서 근무하고 있는 신현규 교사.

그는 2008년 주덕고 재직 당시 교사들과 의견을 모아 일주일에 하루정도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먹기대회, 팔씨름대회,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학교문제를 논의하고 해결해나가는 공동체 회의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아침모임 등등.

“아이들이 즐거울 수만 있다면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통제하고 억압하는 말투대신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죠. 비난과 지시적인 언어를 버리고 최대한 존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아이들을 대했습니다.”

10여 년 전 변화의 물꼬를 교사들이 튼 이후 학교는 조금씩, 조금씩 안정화되었다.

이경희 교무부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들의 마인드였다는 생각을 합니다. 교사들이 변하니 아이들도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고 예전처럼 좌절감이나 절망감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비록 공부는 못하지만 이제는 학생들이 교사를 존중하고 교사도 학생들을 사랑으로 대합니다.”라고 말했다.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주덕고를 왜 문제아학교라고 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중학교 때 주변에서 주덕고는 문제 많고 공부 못하는 학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는데 막상 학교에 들어와 생활하다보니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아요. 중학교 동생이 있다면 주덕고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다른 학년 아이들과도 친하게 지내요. 학교생활에서 가장 좋은 것은 공동체회의예요. 중학교 때는 굉장히 안 좋게 소문을 들었는데 쌤들도 다 좋고 친구들도 다 좋아요.”

분명 너무 늦은 의견이다.

폐교를 앞두고 나서야 듣는 3학년 김○○양과 유○○군의 말은 더욱 안타까움을 준다.

도교육청은 주덕고 폐교는 인구감소, 신설학교 등 여러 문제와 얽혀있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쉬움을 넘어 어쩐지 설명할 수 없는 미안함과 짠한 감정도 있다.

능력을 제대로 발현도 해보지 못한 채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소리 없이 사라져가는 우리네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주덕고는 더욱 쓸쓸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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