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민 전 경무관, 김학의 사건 수사단 발표 정면 반박
청와대 외압 정황 제시, 수사진 보복인사 법적대응 시사

청주 출신 이세민 전 경무관(58)이 검찰 과거사위원회 진상조사단 등에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 사건 관련 모든 사실을 진술했는데도 외압이 없었다고 발표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청와대 외압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하고 나섰다. 김 전 차관 성폭행 의혹이 불거진 2013년초 경찰청 수사기획관이었던 이 전 경무관은 17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청와대의 외압 의혹과 보복 인사 경위에 대해 소상하게 밝혔다.

그동안 언론과의 직접 접촉을 피했던 이 전 경무관은 출연 배경에 대해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수사권고 관련 수사단(단장 여환섭 청주지검장)의 ‘청와대 외압 증거불충분, 김 전 차관 성폭행 무혐의’라는 4일 중간수사 발표를 듣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검찰과거사위 수사단에서 자신이 진술한 내용을 녹음한 파일을 공개하겠다는 뜻과 함께 보직 1년도 안된 자신을 전보발령한 이성한 전 경찰청장에 대한 법적 대응 방침도 덧붙였다.

 

17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이세민 전 경찰청 수사기획관./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유튜브 캡쳐
17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이세민 전 경찰청 수사기획관./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유튜브 캡쳐

 

경찰청은 2013년 1월부터 김 전 차관의 성접대와 이를 촬영한 동영상의 존재를 알게 돼 첩보 수집에 나섰다. 경찰청 범죄정보과는 여성 사업가 A씨가 건설업자 윤중천씨를 고소하는 과정에서 김학의 전 차관의 이름이 거론됐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범죄정보과는 A씨로부터 구체적인 진술까지 받았지만 일명 ‘성접대 동영상’은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다.

경찰은 그 해 2월들어 A씨 등으로부터 “수사에 착수하면 협조하겠다” 정도의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는 것. 이런 와중에 당시 김학의 대전고검장이 법무부차관 물망에 올랐고 3월 2일 청와대에서 먼저 경찰청 수사국장에게 전화를 해왔다는 것. 이 전 경무관은 “‘김 전 차관에 관련된 내용을 수집하거나 갖고 있는 게 있느냐, 내사나 수사에 착수했느냐’는 질문이었고 ‘내사나 수사 단계는 아니지만 내용이 상당히 심각하다. 동영상이 시중에 유포되고 있는데 나오는 인물이 현직 대전고검장’이라는 내용을 보고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 전 경무관은 “이후에도 수차례 청와대 정무수석실, 사회안전비서관에게 대면, 전화, 팩스 보고를 했고 ‘이런 사람을 고위공무원에 임명하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의견도 전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청와대 행정관이 경찰청을 방문해 은근한 압력을 가했다는 것. 이 전 경무관은 “내정 발표전인데 국장실로 오라고 해서 갔다. 수사국장과 박관천 행정관이 만나고 있었는데 내가 들어가자 박 행정관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김학의라는 사람은 VIP의 관심 사안’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결국 경찰의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3월 13일 김 전 차관 내정 사실이 발표됐고 이에 경찰은 내부회의를 거쳐 종합적인 보고서를 작성, 첩보수집 담당직원이 직접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재차 보고를 했다는 것. 이날 경찰의 종합 보고 사실은 TV조선을 통해 단독보도됐지만 청와대는 15일 김 전 차관 임명을 전격 발표했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수사권고 관련 수사단장 여환섭 청주지검장./ 뉴시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수사권고 관련 수사단장 여환섭 청주지검장./ 뉴시스

 

제천출신 김기용 청장도 경질 ‘후폭풍’

또한 김 전 차관이 임명되던 날 당시 임기가 남아있던 김기용 경찰청장(제천 출신)은 경질되고 이성한 청장이 부임했다. 하지만 이 전 경무관은 18일 김학의 사건 내사 착수 사실을 언론에 발표했다. “이미 언론에서 다 알고 첩보가 무르익었기에 수사에 착수할 수밖에 없었다”며 “3월18일 특수수사과장과 함께 내사 착수를 발표했다. 이후 청문회 과정을 거쳐 4월초 새로 임명된 이성한 청장에게 보고했는데 ‘기획관이 보고하는 내용을 하나도 모르겠다. 남의 가슴에 못을 박으면 벌 받는다’는 얘기를 해 모멸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결국 이 청장은 4월 12일 금요일자로 이 전 경무관을 경찰대학 학생지도부장으로 사실상 좌천시켰다. 이 전 경무관의 지시에 따라 내사를 진행했던 과장, 계장, 팀장 등 다른 경찰관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내사 착수 1개월도 안돼 사실상 수사팀은 해체됐고 이 전 경무관은 보직 발령 4개월만에 비수사 부서로 쫓겨난 셈이다.

특히 이 전 경무관은 지속적인 진실 규명 작업에 대한 뚜렷한 의지를 드러냈다. “검찰과거사위 수사단에서 두번에 걸쳐 장시간 진술했는데 첫째 날은 녹음을 했고 두번째 날은 녹음을 못하게 해서 하지 못했다. 첫날 녹음 파일을 일반에 공개할 용의가 있다. 두번째 날 진술은 이미 대검찰청에 녹음, 녹화한 CD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그것도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전 경무관과 함께 검찰과거사위 수사단에 출두한 경찰청 수사과 직원들도 자신과 동일한 진술을 했다고 강조했다. “나중에 사전에 말맞추기 의혹이 제기될까봐, 우리 직원들과 전화연락도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각자의 업무일지에 동일한 내용이 있기 때문에 수사단 진술도 일치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단에서 청와대의 압력이 없었다고 결론을 낸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밖에 당시 이성한 경찰청장이 ‘보직 1년 미만인 경우 인사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경찰공무원법과 임용령을 어기고 4개월만에 자신을 좌천인사시킨 것은 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이 전 경무관은 “공직에 몸담고 있던 신분이라 특별조사단의 조사가 끝날 때까지 언론 접촉을 자제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대로 진실규명이 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처음으로 공개 인터뷰에 응하게 됐다. 이 전 청장은 직접 모시기도 한 상사인데 어떻게 그런 인사를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법률 전문가들과 법적 대응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응천 ‘인사 불이익 줬다’ 발언 주목

한편 이 전 경무관은 이성한 청장의 수사과 직원 집단인사 조치 또한 청와대의 외압 의혹이 짙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2014년 12월 2일 조선일보 기사를 증거로 검찰과거사위 수사단에 제출했다는 것. 해당 조선일보 기사는 ‘조응천 前 청와대 비서관(민정수석실 공직기강 비서관)이 전하는 人事 실태’라는 제목의 단독 인터뷰였다. (박근혜 정부)청와대 인사시스템의 문제점을 얘기하면서 재직시절 ‘모 차관급 인사’(김학의 법무부 차관)에 대해 언급했다. 기사 원문을 옮기자면 “경찰에 그 사람과 관련해 내사를 진행 중인 게 있느냐고 물었더니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나중에 그와 관련된 의혹이 불거졌고 경찰 지휘 라인에 대해 그 책임을 물어 인사상 불이익을 준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분명히 5년전에는 경찰 보고에 문제가 있어 인사상 불이익을 줬다고 취재기자를 상대로 진술했다.

하지만 올해 김학의 사건 재수사가 벌어지자 민주당 국회의원으로 신분이 바뀐 조응천 전 비서관은 여전히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조 의원은 지난 3월 ‘머니투데이’ 취재진에게 “청와대는 김 전 차관의 임명 전 검증 과정에 김 전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이 사실이라면 어떻게든 알리려고 했다. 경찰이 임명 전에는 ‘처음 들어본다, 전혀 그런 것이 없다”고 검증 기간 내내 한 번도 비슷한 얘기를 하지 않다가 청와대가 김 전 차관을 임명하자마자 뒤통수를 쳤다”고 주장했다. 이 전 경무관이 주장한 당시 상황과 정면으로 배치돼 검찰과거사위 수사단의 조사가 필요한 대목이다.

하지만 조 의원은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수사 권고대상에서 아예 제외됐고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은 조사를 받았다. 결국 검찰이 주축이 된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수사권고 관련 수사단’은 청와대 등 윗선의 외압 의혹은 ‘증거불충분’으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 전 경무관이 수사단에서 진술한 녹취 파일 등을 공개할 경우 2차 진실공방의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당시 청와대 책임자였던 곽상도·조응천 의원이 모두 검찰 출신이고 현직 의원이다. 당시 경찰청 수사국장이나 이세민 수사기획관이 접하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아마도 경찰청 수뇌부와 직접 연결됐을 가능성이 있고 그러다보니 청와대 고위층과 연결고리를 찾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행정관-비서관-수석 시스템을 감안하면 박관천 행정관부터 보고라인을 제대로 수사했는 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