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야모야병 딛고 세상으로 나가는 숭덕학교 전영호 군
14일~17일 열린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서 은메달 수상
“보치아는 나에게 꿈, 장래희망, 목표, 그 이상의 무엇”
훈련, 또 훈련…보치아로 시작해 보치아로 끝나는 일과

역경과 고난을 딛고, 최선을 다해 노력한 결과 영광의 메달을 땄다는 이야기.

‘개천에서 용났다’?, ‘누구든지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희망찬 내일을 만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기사를 읽은 독자들의 일부는 희망의 메시지를 얻을 수도 있겠고 또 일부는 그러지 못하는 자신과 환경을 탓하는 감정도 느끼게 될 것이다.

장애를 갖고 있지만 열심히 노력한 결과 ‘제13회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 보치아 개인전에서 은메달을 땄다는 전영호 군(19).

그를 만나기 전, 사실 그의 기사가 희망보다는 자신과 환경을 탓하는 느낌을 주게 될까봐 걱정했었다.

하지만 그를 만난 후 느낌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았다. 만감이 교차했다.

장애인 선수에 관한 처우부터 그들의 삶, 노력, 앞으로의 삶 등등. 인터뷰를 마쳤지만 오히려 묻고 싶은 것과 알고 싶은 것이 더 많아졌다.

 

숭덕학교 전영호 군이 보치아 훈련을 하고 있다.
숭덕학교 전영호 군이 보치아 훈련을 하고 있다.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전북 익산에서 진행된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 보치아 개인부문에서 당당히 은메달을 딴 보치아 선수, 전영호 군.

이름조차 생소한 보치아라는 운동이 그에게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모야모야병

2010년.

전영호 군은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놀기 좋아했던 대가 초등학교 3학년, 열 살 평범한 어린아이였다.

시련은 갑자기 온다더니 영호 군에게도 시련은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에 있는데 갑자기 눈이 안보이고 손과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정신을 잃었어요. 선생님이 저를 보건소에 데리고 갔더니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대요. 모야모야병이라는 것은 이 병원, 저 병원 다닌 후에 알게 됐어요. 제 머리에 피가 굳어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 했었다고.”

뇌수술을 두 번이나 받고 보름가량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만 있은 적도 있었다. 의식이 회복된 후에는 이미 하반신과 오른손이 마비된 상태였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동안 영호 군은 모야모야병 환자로 병원신세를 졌다.

퇴원 후에는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고작 열두 살 나이. 장애를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열두 살 나이로 다시 초등학교 4학년에 복학했지만 학교생활은 순탄치 못했다고. 친구, 학교, 환경, 모든 것은 달라져 있었다. 교과 진도를 따라가지 못했고 교실에서 다른 친구들과 함께 교사의 수업을 들었지만 '나만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재활전문학교인 숭덕학교를 찾은 것은 영호 군이 15살 되던 해였다. 더 이상 일반학교에서 생활하기에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집을 떠나 숭덕재활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부모님 사정으로 일찍부터 홀로서기를 시작한 것이다.

 

전영호 군
전영호 군

 

보치아를 만나다

보치아는 숭덕학교에 온 후 처음 알게 됐다.

표적구에 공을 던져 표적구에 가까운 공의 점수를 합하여 승패를 겨루는 경기, 보치아는 뇌성마비 중증 장애인과 운동성 장애인만이 참가할 수 있는 종목이다. 얼핏 보기에 컬링과 유사한 보치아는 뇌병변 장애인을 위한 경기로 올림픽,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이다.

충주시 봉방동에 위치한 숭덕학교는 지체장애, 지적장애, 정서행동장애, 자폐성장애, 발달지체 학생들을 위한 사립 특수학교로 보치아 등 운동을 장려한다. 숭덕학교 졸업생 중에는 현재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하는 선수도 여럿 있다.

“보치아라는 운동경기는 숭덕학교에 오고 나서 처음 알았죠. 처음에는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어요. 경기규칙을 알게 되고, 하나보니 재미도 있었어요. 무엇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이 정말 기뻤어요.”

장애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시기, 보치아는 영호 군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운동경기였고 ‘잘 한다’는 소리도 들으니 보치아에 점점 빠져들었다고.

특히 전영호 군을 지도하고 있는 충북 장애인 보치아연맹 윤영웅 감독이 지난해 영호 군만을 위한 보치아 개인 공을 사주었을 때 왠지 모를 사명감까지 느끼게 됐다고.

“그 전까지는 학교에 비치돼 있는 공으로 연습을 했었는데 연맹에서 저만을 위한 공을 사주셨어요. 꽤 비싸다고 들었는데…. 앞으로 보치아를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은 그때 하게 됐어요.”

유난히 떡 벌어진 어깨, 단단한 팔 근육, 영호 군의 외모는 보치아 선수로 그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그의 하루 일과는 보치아로 시작해 보치아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 일과가 끝난 후, 저녁을 먹고 난후, 특히 방학이나 주말엔 하루 종일 보치아와 함께 한다. 

그결과 전영호 군은 제10회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 첫 출전부터 은메달을 땄고 중3때는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단체전 은메달, 제 12회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에선 개인전 동메달,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에서는 은메달을 수상했다. 

숭덕학교 백성현 체육교사는 "영호에게 보치아는 전부예요. 정말, 늘, 열심히 하거든요. 상대가 있어야 하는 경기지만 혼자서도 쉬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보치아는 나에게 전부”

영호 군에게 보치아는 꿈, 미래, 희망사항 등 이 모든 것을 포함한다.

평범하게 자라나,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영호 군에게 보치아는 ‘장래희망’이나 ‘꿈’ 이상이다.

그는 “보치아 국가대표 선수가 되고 싶어요. 나이 들어서도 평생 보치아를 하고 싶어요. 보치아는 저에게 전부인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여자친구 있나요?’, ‘보치아 말고 좋아하는 것은?’ 이런 질문에는 수줍게 웃어버리고 마는 영호 군. 그 또한 여느 10대 청소년들처럼 음악듣기를 좋아하고, 영화보기도 좋아한단다.

하지만 이것은 보치아에 비하면 늘 뒷전이다.

경기를 앞두고서는 이를 악물어야 하고, 사랑이나 레저, 문화생활은 생각할 수 없었다. 자신의 존재를 지탱해주는 것. 영호 군에게 보치아는 그런 것이다.

물론 현재 갈 길은 멀다.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서는 성인부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대회에 전부 참여해야한다. 당연히 하루라도 연습을 거르면 안 된다.

국가대표가 못될 경우는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영호 군.

인터뷰 후 그에게 ‘더 열심히 해서 꼭 국가대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정말 해주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보치아 말고도 앞으로는 좋은 사람도 만났으면 좋겠고, 사랑도 했으면 좋겠고, 너무 보치아에 목숨 걸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

결국 이 말은 그에게 해주지 못하고 입속에서만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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