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현감 송덕비를 일제 군수관사 주춧돌로 사용한 일제의 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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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현감 송덕비를 일제 군수관사 주춧돌로 사용한 일제의 만행
  • 김남균 기자
  • 승인 2019.05.26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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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군, 훼손된 송덕비 그대로 방치…친일파 군수 송덕비는 여전히 우뚝
충북 보은군 보은읍 보은동헌 앞에 보전돼 있는 조선시대 현감과 군수의 공덕비
일제강점기시절 일제가 조선총독부의 관사 주춧돌로 사용해 훼손된 조선시대 현감과 군수의 송덕비. 일제에 의해 훼손된 채로 여전히 방치돼 있다.

 

“왼쪽의 훼손된 비석은 우리 문화를 말살시키고자 관내의 여러 현감 송덕비를 일제군수관사 주춧돌로 사용하였던 것을 이곳에 모아놓은 것입니다” (보은군 현감(군수) 송덕비 이전기 중에서)

충청북도 보은군 보은읍 동헌 앞에는 조선시대 현감과 군수를 지낸 송덕비가 모아져 있습니다.

1994년 편찬된 보은군지의 비갈, 비문 편에는 1988년 산재돼 있는 현감 4명, 군수 1명, 선정훈 송덕비를 보은 동헌 경내로 이전 건립했다고 적혀있습니다.

송덕비가 자리한 곳에는 철제 울타리가 쳐져 있고 ‘현감(군수) 송덕비 이전기’가 적혀있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철제울타리에서 몇 미터 떨어진 주택 담장 아래에는 송덕비로 추정되는 비석이 쓰러진채 방치돼 있습니다.

도대체 방치돼 있는 저 비석은 무얼까요?

‘현감(군수) 송덕비 이전기’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군수 관사의 주춧돌로 사용해 훼손된 조선시대 현감과 군수를 지낸 인물의 송덕비입니다.

일제가 왜 이런 짓을 했을까요? 보은군은 “우리 문화를 말살시키고자 주춧돌로 사용”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일제가 의병운동을 탄압하가 위해 헌병대 건물로 사용하다 나중에 조선총독부 경찰서 건물로 사용한 옛 보은동헌. 보은군이 1983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송덕비 앞에 자리한 옛 보은동헌 건물도 일제로 부터 수난을 겪었습니다.

보은군에 따르면 보은동헌은 처음 지은 시기는 알수 없으나 철종 11년(1860년) 고쳐서 다시 지은 것입니다.

일제는 보은군의 역사가 담긴 이 건물을 헌병대 건물로 사용하다 나중에는 경찰서로 사용합니다.

보은군에 따르면 1907년 항의 의병운동이 전개되자 이를 진압하기 위해 일본의 헌병대가 사용합니다. 그 뒤에는 조선총독부 경찰서로 사용되며 그 구조를 변형합니다.

현재의 모습은 1983년 보은군이 복원한 것입니다.

 

그대로 보전된 친일파 군수 선정비

 

일제강점기 보은,제천,단양군수를 지낸 친일파 최재익의 선정비.

 

일제가 훼손한 조선시대의 현감과 군수의 송덕비는 이미 전해드렸듯이 지금도 바닥에 쓰러진채 그대로 방치돼 있습니다.

반면 조선총독부의 군수를 지낸 선정비는 햇빛을 보며 제자리를 지켜 대조를 이룹니다.

국도 19호선이 지나는 보은군 보은읍 금굴1리에는 1931년부터 1936년까지 보은군수를 지낸 최재익의 선정비가 지금도 잘 보전돼 있습니다.

비문의 내용은 조선총독부 보은군수 최재익이 선정을 베풀었다는 내용입니다.

최재익은 조선총독부 보은군수로 부임하기 이전인 1930년 단양군수를 지냈고 1936년에는 충북 제천군수를 지냈습니다.

이런 전력 때문에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에 최재익은 친일관료 명단에 올라있습니다.

하지만 최재익의 선정비에 대해 이런 사실을 알려주는 안내판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보은군의 한 지역신문은 선정을 베푼 보은군수의 비석이 망초더미에 방치돼있다며 보은군이 관리를 잘 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상황도 발생했습니다.

조선시대 현감의 공덕비를 일제 군수의 관사 주춧돌로 사용해 모욕을 준 일제국주의.

여전히 버젓이 서있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군수의 선정비.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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