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이 싫은 사람들 ①] 충북 청주시 서원구 사직동

재개발은 모두가 반기는 일이 아닙니다. 지역 부동산 경제 전망은 어둡기만 합니다. 특히 청주시는 2018년 6월 미분양 물량이 전체 18.6%(3,072)에 이르기까지 했습니다. 아파트 미분양으로 인한 손해는 건설사보다 재개발 조합원들에게 더욱 무겁게 다가갑니다. 게다가 비민주적인 재개발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개발이 싫은 사람’들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 봤습니다. - 편집자 주 

호시절은 짧았다. 그 동네와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는 ‘역세권’, ‘부촌’이었다. 철로가 지나갔고, 시외버스터미널이 자리했다. 도시로 들어가는 관문이자 중심지 역할을 했다. 대학교수, 공무원, 은행원 등 돈 좀 번다는 이들이 모여 살던 중산층 동네였다. 해가 기울 듯 세월에 따라 시절은 저물었다. 충북 청주시 서원구 사직동의 얘기다. 

사직1동의 경우 △사직1 구역 (사직동 247-1번지 일원) △사직3 구역(215-8번지) △사직4 구역(사직동 235-11번지)로 나뉘어 재개발 몸살을 앓고 있다. 그 옛날 사직동이 누렸던 영광은 사라진 지 오래다. 재개발이 필요한 ‘오래된 동네’로만 치부됐다. 

충북선이 사라지고, 시외버스터미널까지 없어지자 사직동을 향한 사람들의 발걸음은 예전만 못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동네에 ‘재개발’이란 단어가 들리기 시작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남상우 청주시장은 도심공동화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지역 경제 활성화를 재개발을 통해 밀어붙이겠다는 그의 포부가 청주시 전역을 덮쳤다. 

“재개발로 사직동을 다시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듭시다!” 

남 시장은 오래된 동네에 사는 주민들의 박탈감을 건드렸다. 남 시장은 사직동 서부교회 본당으로 직접 찾아와 주민들을 설득했다. 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직동이 가졌던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주민들의 머릿속을 스쳤다. 

그렇게 개발 논리는 빠르게 들어와 주민들의 삶을 헤집었다. 남상우 청주시장이 다녀간 지 불과 몇 년 사이에 추진위원회가 꾸려졌고, 주민 70% 이상의 동의를 받아 조합이 설립됐다. 일부 주민들은 재개발의 허상을 알았더라면 동의하지 않았을 거라고 가슴을 쳤다. 

 

사직동 주민 일부는 여전히 재개발 반대를 외치고 있다. 이미 조합설립인가가 난 이상 재개발을 되돌리기는 어려운 처지다. ⓒ 김다솜 기자

 

“땅 60평 가졌으면 35평은 아파트로 주고, 나머지 25평은 현금으로 준다니까 너도 나도 찬성을 하는 거예요. 게다가 청주시장이 직접 설명하는데 주민들은 ‘건설사가 아니라 시에서 주도적으로 하는 거구나’, ‘공영 개발이니 좋은 사업이겠구나’, ‘개인 주택은 춥고 그랬는데 아파트에서 편하게 살겠구나’ 그런 기대감을 가졌던 거죠.”

A씨(60)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남상우 청주시장이 다녀간 뒤 4~5년이 지나고 나서 재개발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재개발 추진 조합원들은 도시 및 주거 환경 정비법(이하 도정법)으로 맞섰다. 그제야 A씨가 도정법을 들여다봤다. 도정법은 ‘개발업자들을 위한 법’이였다. 

도정법에는 주민에게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추상적인 내용만 언급돼있을 뿐 주민공청회를 강제하진 않는다. 게다가 기본계획의 수립권자가 계획을 통지한 날부터 60일 이내에 의견을 제시하지 않으면 이의가 없는 것으로 본다. 재개발의 정확한 개념을 알기 어려운 평범한 사람들에게 60일은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재개발에 대해 전혀 모르고 평범하게 살던 사람들이었다. 나고 자란 곳에 사는 게 당연하다 느끼던 세대였지만 갑작스러운 재개발 바람에 허겁지겁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 김다솜 기자

 

처음에는 회유, 나중에는 협박

호형호제하던 사람들이 원수로 불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주민들은 서로를 ‘찬성파’, ‘반대파’로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회유, 나중에는 협박이 오갔다. 그렇게 공동체가 부서졌다. 도정법의 맹점을 알게 된 뒤 김 씨는 반대 측 총무를 맡게 됐다. 도정법을 알아갈수록 재개발은 위험해 보였다. 주민들에게 재개발은 보다 신중해야 한다고 설득했지만 자본 앞에선 그 힘을 잃었다. 

도정법에는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표하거나 약속하는 행위를 일체 금지하고 있지만 재개발 추진 조합에서 돈을 뿌렸다. 재개발 관련 총회에 참석만 하면 현금 5만 원을 나눠줬다. 참석자 수는 찬성표로 계산됐다. 총회가 열리는 날이면 새벽부터 골목길에 젊은 여자의 구두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자들은 프라이팬 같은 주방용품을 들고서 새벽이고, 밤이고 집집마다 문을 두드렸다. 순식간에 재개발 찬성표가 쓸어 담겼다. 

그 여자들은 조합에서 고용한 아웃소싱 요원이었다. 그들의 하루 일당은 20만 원. 30여 명의 요원을 고용했으니 재개발 추진 조합에선 하루 인건비로만 600만 원을 썼다. 요원들은 도정법의 보호를 받았다. 하지만 조합은 A씨가 토지 소유자도 아니면서 재개발을 반대한다고 업무 방해죄로 고소했다. 재개발 반대 주민들은 자본을 이길 재간이 없었다. 

 

조합에서는 선물을 주겠다면서 사람들의 총회 참석을 독려했다. 자본이 없는 재개발 반대 주민들은 넋놓고 바라봐야만 했다. ⓒ 김다솜 기자

 

“처음에야 회유하려고 그랬지. 지금은 이 근처에도 오질 않어. 바로 뒷집에 사는 데도. 알고는 지내도 서로 소 닭 보듯이 하지. 인사해도 인사 받겄어? 죽일 놈, 살 놈 하는디….”

사직동에서 고물상을 운영하는 B씨(66)가 재개발 반대 측 총무를 맡으면서부터 회유가 시작됐다. 재개발 추진 조합원들이 B씨를 찾아와 “개발하게 되면 철거되는 집 철문을 다 뜯어갈 수 있다”고 속삭였다. B씨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재개발 추진 조합원들은 종이로 B씨를 위협해왔다. 재개발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업무 방해죄로 고발했다. B씨는 3~4년 동안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 

집 한 채가 전부인 사람들

도정법 제1장 제1조에는 법이 제정된 목적이 쓰여 있다.

‘이 법은 도시기능의 회복이 필요하거나 주거환경이 불량한 지역을 계획적으로 정비하고 노후·불량건축물을 효율적으로 개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도시환경을 개선하고 주거생활의 질을 높이는 데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사직동에 불어 닥친 재개발은 도정법의 목적과 배치된다. C씨(89)는 사직동 ‘원주민’이다. 아흔 해를 살았으니 지난날은 흐릿하다. 충북도청 공무원인 남편을 따라온 사직동은 풍경 대부분이 논밭이었다. 어느덧 아들이 장성하고 큰며느리와 함께 살게 됐다. 남편의 퇴직금을 모두 털어 집을 허물고 다시 지었다. 그렇게 지어진 집은 30년 동안 일곱 식구를 보듬었다. 

“우리 집 가보면 알겠지만 2층에 살아도 아래층에 세 집이 남어. 세 주면 한 달에만 50만 원 넘게 받아. 2층에만 방이 네 칸이고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어.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뜨시고 하나 나무랄 데가 없어.” 

C씨에게 이 집 하나면 충분하다. 사직동에서만 50년, 이 집에서만 30년을 살았다. 신 씨는 “직접 칠해가며 지은 집이다 보니 지금도 벽지만 바꾸면 새집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조합이 설립되기 전까지만 해도 해제 구역 동의서를 받으면서 반대 의견을 적극적으로 알리려 애썼다. ⓒ 김다솜 기자

 

집 한 채가 전부인 이들의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충북 진천에 살던 D(90)씨는 50년 전 동갑내기 남편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육남매를 데리고 청주로 왔다. 아이들 교육만 잘 받으면 뭐든 하겠다 싶어 고향 진천을 벗어났다. 

남의 집 셋방살이부터 시작했다. ‘집 없는 사람이 제일 서럽다’는 말의 뜻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새벽별이 지기 전에 떡 장사를 하러 나섰다. 작은 체구로 떡을 이고 지고 대전으로 향했다. 그렇게 10년을 고생하고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뤘다. 그게 지금 D씨가 살고 있는 집이다. 

“내 나이가 아흔이요. 예전에야 허리도 안 아프고 다리도 멀쩡해서 어디든 갔지만 이제 와서 가긴 어딜 가요. 아파트 들어간다고 해도 그 전까지 지낼 집도 못 구하는 처지에….” 

주민들이 재개발로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동네는 더 늙었다. 사람들이 떠난 공가에는 노숙자가 비바람과 추위를 피해 들어왔다. 원인 모를 불이 몇 차례 났었고, 빈집에 들어와 살던 노숙자가 뼛가루로 발견되기도 했다. 

 

재개발을 한다는 소리에 이미 집을 비운 사람들도 많다. 공가는 전혀 관리가 안되는 상황이다. 노숙자들이 공가로 들어와 기거하면서 시신이 발견되거나 불이 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 김다솜 기자

 

시에서는 곧 재개발 된다는 명분으로 동네를 방치했다. 보다 못한 주민들이 팔을 걷어 붙였다. 폐가구로 무너지는 벽면을 막았다. 비에 젖은 목재는 꿉꿉한 냄새를 풍겼다. 바람이라도 세차게 불면 벽돌이 무너지는 게 다반사다. 열악한 주거 환경, 부서져 버린 공동체, 모든 걸 다 잃을 수 있다는 불안…. 개발 논리가 이 동네에 스며든 뒤 집 한 채가 전부인 원주민들에게 남는 건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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