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페인 : 지역과 노동을 잇다> 비정규직 없는 충북만들기 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는 비정규직 문제를 고민하는 충북의 시민사회노동단체들의 연대체로 충북비정규직의 처우개선과 나아가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회양극화 및 불평등 해소’, ‘비정규직 문제 해결’, ‘노동존중’ 등이 시대적 과제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운동본부는 충북인뉴스와 지역의 저임금‵비정규 노동의 현실, 노동정책과 이슈 등을 통해 시대적 과제로 제기되는 문제들을 집어보려고 합니다. 지역과 노동을 잇는 소식이 ‘노동이 존중되는 충북, 살 맛 나는 충북’을 만들기 위한 걸음에 보탬이 되길 희망합니다. 충북인뉴스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뿐만 아니라 모든 차별을 반대합니다. 비정규운동본부의 활동을 지지하고 응원하면서 활동가들이 기고한 글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글쓴이 :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 하태현

 

하태현 노무사

‘비정규직’이라는 말은 여러 유형의 고용형태를 포괄하는 용어이다. ‘비정규직(非正規職)’은 말 그대로 ‘정규직’이 아닌 노동자를 지칭하는, 잔여범주 성격의 용어이기 때문에 ‘비정규직’이 뭔지를 이해하려면 ‘정규직’의 특성이 무엇인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정규직’이라고 하면 '9 to 6'로 표현되는 것처럼 하루 8시간, 주 5일 일하면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노동자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리고 근로계약을 작성한 뒤 실제로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지급받는 사용자는 하나뿐이고 딱히 변동되는 일도 없다. 물론 정규직 노동자는 말 그대로 노동자이므로 근로소득세를 내고, 4대 보험의 적용을 받으며 근로기준법이나 노조법 등 여러 노동관계법률의 적용을 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반면에 ‘비정규직’은 이와 같은 ‘정규직’의 특성들 중 어느 하나라도 갖고 있지 못한 모든 경우를 말한다. 예컨대, 하루 2시간 또는 4시간 정도만 근무하거나, 1주에 2~3일만 일하는, 흔히 ‘알바’라고 부르는 ‘단시간 노동자’가 있다.

또 하루 8시간, 1주 5일을 일하기는 하지만 정년까지 고용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일할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는 ‘기간제 노동자’도 있다. 흔히 ‘계약직’이라고 불리는 비정규직인데, 대개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계약기간을 두는 경우들이 많다.

임금을 주는 사용자와 실제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용자가 다른 경우도 있다. 파견업체에 소속되어 다른 사용자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파견노동자들과 원청 사업장에서 용역이나 하청의 형태로 일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고용보장이나 근로조건은 형식적으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파견업체나 하청업체가 아니라 사실상 원청이 쥐고 있는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실질적으로는 몸뚱이 하나로 일해서 번 돈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것은 일반적인 임금노동자와 하등 다를 바 없음에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그래서 노동관계법령이 정하는 최소한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도 있다.

비정규직의 범주를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 통계수치에 커다란 편차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을 모두 포함하면 적어도 전체 임금노동자의 50%이상이 비정규직으로 분류될 것임은 틀림없다. 그러고 보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비정규직’이라는 용어 자체는 정규직을 뺀 나머지를 말하는 것으로 정의되고 있는데,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오히려 비정규직이 일반적이고 정규직이 잔여 범주 같은 모습이니 말이다.

1997년 IMF 이후 사회 전반에 몰아닥친 구조조정과 더불어 절대선인 듯 만연했던 비정규 고용이 급속히 사회문제화 되기 시작하였을 때, 어느 연구에 따르면 한 번 비정규직의 길에 들어서면 정규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징검다리(step)가 되기보다는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려운 함정(trap)이 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어느 순간 비정규직의 고용형태에 발을 들여 놓은 순간 수년이 지나도 비정규직을 벗어 날 수 없다는 연구 결과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통용되는 시대가 이미 지난 것처럼 비정규직의 문제는 비정규직 노동자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해지자 2007년에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이 당시 기간제의 사용이 남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합리적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기간제를 사용할 수 있도록 사용사유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광범위하게 제기되었지만, 실제 제정된 기간제법은 단지 기간제의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였을 뿐이고, 이 경우에도 다양한 예외 조항을 두어 2년을 초과하더라도 기간제 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었다. 이러다 보니 기간제법은 비정규직의 사용을 억제하는 장치로 기능하기 보다는 2년이 되기 전에 새로운 비정규직으로 대체하는 계기로 작용할 뿐이었다.

최근에 강원도에서 발생한 산불 관련 기사에서 소방호스를 직접 어깨에 짊어지고 산 비탈을 올라가 산불 진화를 하고 있는 산림청 소속의 산불재난 특수진화대가 6개월 내지 10개월의 계약기간만 일하는 비정규직이라는 얘기가 나오자 전문적이고 신속한 재난 대응을 위해서는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단기 알바 형태의 고용으로는 상시적이고 전문적인 재난대응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목소리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기간제법에는 이런 목소리와 정면으로 배치되어 오히려 비정규직의 남용을 조장하는 조항이 존재한다. 소위 “정부의 복지정책·실업대책 등에 따라 일자리를 제공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기간제법의 사용기간의 제한과 상관없이 무기한으로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복지와 관련된 수많은 공공서비스 부문의 노동자들이 기간제법의 예외조항에 따라 비정규직으로 남발되어 사용되어 왔다.

독거노인생활관리사, 방문간호사, 아동복지교사 등이 기간제법 예외조항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10여년을 근무하고도 언제 짤릴지 모르는 불안정한 고용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산불재난 특수진화대에 대한 칭찬과 응원이 비정규직의 문제를 새로 환기시켰다면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의 해결은 단지 산불재난 특수진압대의 정규직화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 안전 그리고 복지와 관련하여 상시적이고 필수적인 공공서비스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비정규직의 문제는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될 수도 없고, 정치적 제스쳐만으로 가려질 수도 없기 때문이다. 2007년에 제정되어 이미 10여년이 지난 기간제법의 문제를 다시 차분히 살펴보는 것도 그 고민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