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임금`장시간 체제 해결 없이 ‘노동존중사회’ 불가능

<캠페인 : 지역과 노동을 잇다> 비정규직 없는 충북만들기 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는 비정규직 문제를 고민하는 충북의 시민사회노동단체들의 연대체로 충북비정규직의 처우개선과 나아가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회양극화 및 불평등 해소’, ‘비정규직 문제 해결’, ‘노동존중’ 등이 시대적 과제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운동본부는 충북인뉴스와 지역의 저임금‵비정규 노동의 현실, 노동정책과 이슈 등을 통해 시대적 과제로 제기되는 문제들을 집어보려고 합니다. 지역과 노동을 잇는 소식이 ‘노동이 존중되는 충북, 살 맛 나는 충북’을 만들기 위한 걸음에 보탬이 되길 희망합니다. 충북인뉴스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뿐만 아니라 모든 차별을 반대합니다. 비정규운동본부의 활동을 지지하고 응원하면서 활동가들이 기고한 글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글쓴이 : 선지현(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

 

선지현(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

4월 1일은 9개월에 걸친 계도(처벌유예)기간이 끝나 주52시간제가 온전하게 시행되는 날이었습니다. 장시간노동체제를 개선하고 일자리를 나누기 위해 추진됐던 노동시간 단축. 그러나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조합들은 주 52시간제가 온전하게 시행하는 그 날에 국회 앞에서 ‘노동개악’에 맞선 투쟁을 선포했습니다.

이어 노동자들은 국회 담장을 넘어 “저임금, 비정규노동자들을 벼랑으로 내모는 노동개악 중단하라”, “장시간 노동 강요하는 탄력근로제 확대 중단하라”를 외치다 연행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그들은 국회 담장을 넘었을까요?

장시간노동체제를 개선하는 노동시간 단축은 오랜 숙원사업이었습니다. 해마다 세계1~2위를 기록하는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저녁이 있는 삶’을 기대하기 어렵고, 해마다 과로사로 죽어나간 노동자가 수 백 명에 이릅니다.

청년실업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데 좋은 일자리는 점점 더 줄어드는 현실에서 노동시간단축은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고, 일자리를 늘리는 좋은 대안으로 인식됐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2018년 7월 300인 이상 사업장에 주 52시간제도가 통과되자, 기업주들은 회사를 2~3개로 쪼개서 법을 피해갔습니다. 현장에 소사장제를 도입해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직원에서 사장으로 변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용역과 도급 등 외주화를 진행해 정규직 규모를 줄이기도 했습니다. 편법이 어려우면 아예 초과근로를 인정해주지 않아 ‘공짜 노동’을 강요받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근무 시간 중 휴게시간을 늘려 52시간을 피해가는 사업장들도 많았지요. 그러다보니 장시간 노동을 개선하겠다고 추진했던 주 52시간 제도는 온갖 편법으로 무용지물이 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노동조합이 있는 곳은 사업주와 교섭을 하면서 대응이라도 하는데 노조 없는 사업장 노동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10%임을 감안할 때, 피해를 보는 노동자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예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법은 개선됐는데 고용률은 떨어지고, 청년실업과 비정규직은 더 늘어나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는 바로 사업주들이 벌이는 편법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업주들은 이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돌리려고 합니다. 나아가 ‘주 52시간제로 기업하기 어렵다’며 볼멘소리를 이어가지요.

이를 바로 잡아야 할 정부와 국회는 기업들의 불만을 해소한다며 탄력근로제 확대 정책을 추진합니다. 그러니 정책이 효과를 보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법인데 바로 기업특혜 정책을 추진하니 기업들이 노동시간 단축을 계기로 일자리를 늘이려 하겠습니까!

 

저임금`장시간 노동체제를 고착화하는 탄력근로제 확대

 

노동시간 줄이고, 일자리 늘리고, 비정규직 줄이겠다고 했던 제도 개선은 기업들의 온갖 편법으로 누더기가 됐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 오히려 탄력근로제도 제도개선을 무력화시키는 정부와 국회입니다.

이번 임시 국회에 발의된 탄력근로제 확대는 저임금`비정규노동자들에게는 엄청난 노동조건 개악입니다.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저임금`비정규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10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률 3.5%, 비정규직 노동자 노조 가입률 2%가 이를 말해줍니다.

그러다보니 노동조건은 사업주 맘대로 이죠. 그런데 이번 탄력근로제 확대는 근로자 대표와 합의만 하면 6개월로 확대하고, 주단위로 노동시간을 줄였다 늘였다 할 수 있습니다.

임금보전 의무가 있지만, 지키지 않아도 과태료만 내면 그만입니다. 그러다보니 노조 없는 노동자들은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지요.

실제로 지난 3월 6일 국회에서 열린 <유연근로시간제 실태와 탄력근로제 확대의 사회경제적 영향분석' 토론회에서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노동조합이 있는 곳에서조차 ‘탄력근로제 도입 시 임금보전을 지키지 않은 사례’가 79%에 달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떨까요? 사업주가 맘대로 탄력근로제를 도입하고, 임금보전을 하지 않아도 저항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사업주에게 밉보이면 바로 계약해지를 당할테니까요. 누가 나서서 항의를 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말 한마디 못하고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어드는 불안정한 노동시간을 감내해야 하고, 삭감된 임금을 받아야 할 처지입니다.

노동시간은 줄어들 수 있을까요?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비정규직 사업장에서는 근로자 대표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사업주가 지명하는 경우도 50%가 넘습니다. 11시간 휴게시간을 보장하지 않아도 근로자 대표와 협의했다고 통보하면 그만입니다. 노동부의 관리감독은 너무 먼 얘기죠. 노동자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언론을 앞세운 왜곡된 프레임

 

노동자들이 반대하자 보수언론들은 ‘양보 없는 민주노총’ 때문이라며 온갖 공격을 해대고 있습니다. 대공장`정규직노조들이 ‘제 밥그릇 챙기려고 싸운다’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국민들은, 지역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완전히 정반대입니다. 저임금`비정규노동자들을 벼랑으로 내모는 것은 바로 기업들을 옹호하고 나선 정부와 국회입니다.

기업들이 52시간 제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온갖 편법을 사용하면 할수록 죽어나는 것은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로 인해 비정규직이 더 증가하고, 노동강도만 높아지는 꼴입니다. 탄력근로제 확대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바로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자들입니다.

법이 개악되면 그들은 제대로 항변조차 하지 못하고 당할 위험에 놓여 있습니다.

그나마 노동조합이 있는 노동자들의 항변으로 이 문제가 사회에 알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국회 담장을 넘어 노동자들이 처한 위험을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저임금`장시간 체제 해결 없이 ‘노동존중사회’ 불가능

 

2017년 과로사로 죽어간 노동자가 354명이었습니다. 현실에서는 산업재해 통계에도 포함되지 못한 채 죽어간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저녁 있는 삶’은 꿈조차 꾸지 못한 채 하루 12시간씩 주`야로 노동하는 800만 이상의 장시간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충북지역도 예외가 아닙니다. 충북지역은 2018년 기준으로 노동시간은 181.1시간으로 전국 광역시도 중 2위 지역입니다. 산업재해 역시 전국 2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것입니다. 좋은 일자리는 그래야만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국회 담장을 넘어 외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우리 모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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