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도서 낙찰자 70~80%는 도서와 무관
경기도 등 지역서점 돕기 위해 서점인증제 도입

'우리문고'에 전시된 책들. <사진 충청리뷰 육성준 기자>

 

오프라인이나 온라인 서점을 운영하지 않고, 사업자등록증 상에서만 서점을 운영하는 이른바 ‘페이퍼 서점’들이 공공기관 도서구입 입찰을 독식하고 있어 지역 서점인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건설업체, 반도체 장비업체, 심지어는 청소업체 등 사실상 도서와는 상관없는 업체들이 자치단체, 학교 등 공공기관 도서입찰에 참여해 70~80%의 낙찰률을 보이고 있는 것.

청주에서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지역에서 서점기능을 전혀 하지 않는 무늬만 서점인 자들이 공공기관 입찰에서 대부분 낙찰받고 있다”며 “허탈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선 법적으로 전혀 하자가 없어 제재를 가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입찰참가는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시행령’ 제13조 및 제20조에 의거한 업체로 ‘서적을 취급하는’ 소상공인이면 누구나 가능하다.

 

충북중앙도서관 도서구입 입찰…지역서점 한곳도 없어

 

충북인뉴스가 지난해 ‘조달청 나라장터’에서 실시한 공공기관 도서구입 전자입찰(2인 수의계약 36건 포함) 72건을 분석한 결과 낙찰 받은 사람 중 지역에서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은 6명에 불과했다.

낙찰된 업체 66곳은 상호로만 봤을 때 ○○인쇄광고간판, ○○상사, ○○인터내쇼날, ○○의료기상사, 심지어 ○○중공업 등으로 사실상 도서와는 무관한 업체였다.

충북지역 공공기관 도서입찰은 1년에 2번, 많게는 10여 차례까지 진행된다. 금액은 1000만 원대부터 1억 원 이상까지이고 무려 80대 1을 기록한 적도 있다.

나라장터에 따르면 충청북도중앙도서관은 지난 2018년 초부터 올 3월까지 모두 8차례에 걸쳐 3억 4245만원에 달하는 도서를 구입했다.

이중 낙찰 받은 지역서점은 단 한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주교도소(여자교도소 포함) 역시 2018년 초부터 올 3월까지 3차례 9932만원에 달하는 도서를 구입했지만 지역서점은 없었다.

공군사관학교도 지난해 교과서 등 구입으로 4억 2000여만 원을 지출했다. 5번에 걸쳐 진행된 입찰에서 낙찰 받은 곳 중 지역서점은 한곳뿐이었다.

청주에서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B씨는 “나라장터 입찰시장은 충북의 경우 2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공공기관 입찰에서 지역서점이 낙찰 받는 경우는 20~30%가량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폐업한 통닭집에서도 낙찰 받은 사례도 있다. 도서는커녕 폐허인 곳도 상당수다. 주소지만 옮겨놓은 꼴”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업체가 사업자등록증에서만 ‘서적’관련 사업을 하고 있을 뿐 실제로만 무관한 사업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충북중앙도서관 한 관계자는 “낙찰 받은 업체는 지방계약법상 전혀 하자가 없는 업체다. 지역서점에게만 특혜를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서점인들에게 ‘너무나 공정한(?)’ 공공기관 도서입찰

 

현재 도서유통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출판사에서 도매점 유통업자로, 또 출판사에서 소매점 서점으로 직접 유통되는 방식이다.

출판사는 유통업자에게 정가의 60~65% 가격으로, 또 소매점인 서점에는 70~75% 가격으로 도서를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점 관계자들에 따르면 저렴한 가격으로 도서를 공급받은 유통업자들이 도서와 상관없는 다른 업체 종사자에게 의뢰해 입찰에 참가토록 하고 그 댓가로 일정정도 수수료를 떼어주는 방식으로 입찰에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2014년 실시된 도서정가제 이후부터 성행됐다.

그 이전에는 최저가 입찰로, 50%이상 과도하게 할인된 가격으로 입찰에 참가, 사실상 소매점인 서점에서는 ‘손해’를 감수하고 입찰에 참여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도서정가제가 실시된 이후부터는 사업자등록증 업종에 ‘서적’을 명시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10% 할인된 가격으로 전자입찰에 참가할 수 있다.

한 관계자는 “각 지자체에서는 지역서점을 살리기 위해 매년 도서구입비를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도서와는 상관없는 자들이 혜택을 누리고 있다. 지역서점 살리기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지역서점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다. 문화공간으로 서점이 주는 의미가 있다. 말로는 지역의 문화를 살리고 서점의 기능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운영조차 할 수 없는 구조”라고 강조했다

 

타지역에선 서점인증제로 지역서점살리기 앞장

 

공공기관 도서구입 입찰 참가자격은 현재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시행령’ 제13조 및 제20조에 근거한다.

제13조에 따르면 도서구매 입찰의 참가자격 요건은 허가ㆍ인가ㆍ면허 등을 받았거나 등록ㆍ신고 등을 하였거나 해당 자격요건에 적합하면 가능하다.

도서와 무관한 사람들이 입찰에 우후죽순으로 참여하는 현상은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 현상이다.

이에 따라 경기도, 전주시, 인천 등은 서점인증제를 운영, 공공기관 도서 입찰시 지역서점에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

서점인증제란 서류심사와 현장실사를 통과하면 ‘지역서점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인증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로 경기도에서는 지난 2018년부터 시행됐다.

경기도에서 2018년 인증받은 서점은 233곳으로 대형 프랜차이즈서점과 온라인서점, 서적 총판 업체는 제외된다.

인증서점에 선정되면 인증서와 현판을 받게 되며 시·군 공공도서관이 도서를 구입할 경우 우선 검토대상이 될 수 있다. 또 지역서점대상 홍보·경영 컨설팅, 교육, 시설개선 지원 등 ‘경기도 책 생태계 활성화 사업’ 공모 참여시 가점을 받을 수 있다.

A씨는 “서점인들에게만 무조건 특혜를 달라는 얘기가 아니다. 밥그릇 싸움을 하는 것도 아니다. 서점이라는 문화공간을 이어가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서점인들이 문화공간을 이어가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한편 청주서점조합청주시서점(이하 청주서점조합) 임준순(열린문고 대표) 조합장은 “도의회에서 도서 입찰과 관련해 조례를 만들어도 결국은 상위법이 있기 때문에 입찰자격을 제한할 수는 없다”고 토로했다.

이에 따라 청주시서점조합은 지난 1월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동반성장위원회에 신청한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청주시서점조합 임준순 조합장은 “생계형적합업종으로 서점을 지정해주면 입찰법 안에서 입찰 참가 자격에 제한을 두는 방향으로 건의해 볼 생각이다. 현재로선 그 방법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는 지난 1월 동반성장위원회에 ‘서적 및 잡지류 소매업’을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신청한바 있다. 정부가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도입한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에 지정되면 해당 업종에는 대기업이 5년 동안 진입할 수 없고, 이를 위반하면 정부에서 매출의 5%까지 이행 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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