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태성리에서 100년 만에 횃불 봉화가 타올랐다.

강내면 이장협의회와 조동식선생기념사업회는 이날 오후 조동식 선생 묘소 앞에서 '3·1운동·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조동식 선생 횃불봉화만세운동 재현식'이 열렸다.

각계 인사와 주민 등 20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는 식전행사와 1부 기념식으로 진행됐다.

2부 횃불봉화 재현식은 점화식과 행진, 만세삼창이 이어졌다.

이곳에서는 1919년 이날 오후 9시께 조동식(趙東植·1873~1949) 선생이 주민 수십명과 산 위에 올라 봉화를 올리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조동식 선생은 24일과 26일 밤에도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산 위에 올라 봉화를 피우며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 봉화만세운동은 강내면 각 마을은 물론 강외면, 옥산면, 남이면과 충남, 경기 일부까지 파급했다.

4월1일에는 봉화만세운동이 절정을 이뤘다.

청주 일대를 비롯해 강외·강내·옥산·오창·부용·북일·북이 등 8개 면 주민들은 산 위에서 일제히 봉화를 피워 독립만세를 외쳤다.
3월28일 충북도장관이 조선총독부 우사미 가쓰오(宇佐美勝夫) 내무부장관에게 보낸 상황보고를 보면 "3월23일 오후 9시가 지나 청주군 강내면 한 마을민이 부근 산 위에 올라 화톳불(?火)을 피우고 한국독립만세를 외쳤다. 강내면 18리와 동민, 인접한 강외면, 옥산면 일부도 일시에 수십 곳에서 불이 오르고 만세소리가 부근을 동요했다. 청주·조치원 경무관헌과 수비대에서 해산을 명령하고 다음 날인 3월24일 오전 1시에야 전부 집으로 돌아갔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박걸순 충북대 사학과 교수는 봉화만세운동의 진원지로 이곳 강내면을 꼽았다.

박 교수는 "산에서 불을 피우고 독립만세를 외친 것은 전국적인 현상이었지만, 강내면 봉화만세운동은 특별했다"라며 "조동식 선생은 옛날에 봉화를 올려 변란을 알리는 봉화고변(烽火告變)의 예를 정확히 간파해 만세운동의 방법론으로 채택했다"라고 분석했다.

선생은 재판 과정에서 이 같은 봉화고변의 예를 본받아 산꼭대기에서 불을 피우고 만세를 부르면 한층 기세가 높아질 것으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봉화만세운동은 신속한 파급성으로 인근 지역으로 확산해 만세시위의 독특한 전형으로 정착했다"라며 "봉화만세운동은 일제와 직접 충돌했던 격렬한 시위와 함께 지방사적 특징으로 평가해야 한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최근 국사편찬위원회가 구축한 삼일운동 데이터베이스를 중심으로 청주지역에서 일어난 19차례의 3·1만세운동 가운데 가장 먼저 전개한 것이 강내면 봉화만세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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