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박재한/기자] 한나라당의 '투톱', 박근혜 대표와 김덕룡 원내대표 사이의 불화설이 당안팎에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박근혜 대표의 우경화 노선에 대해 김 원내대표가 강한 불만을 토로하면서, 불협화음이 일고 있다는 전언이다.

"최근 둘 사이에 전화도 안한다"

원내대표단의 한 관계자는 16일 "최근 둘 사이에 전화통화도 안한다"라고 털어놨다. 지난 5월 김 대표의 취임직후만 해도 "애인같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현안마다 긴밀하게 논의를 했던 모습과는 1백80도 동떨어진 모습이다.

둘 사이의 갈등기류는 '이철우 의원 간첩공세' 파문을 거치며 곳곳에서 포착됐다.

'색깔 공세'에 대한 지도부의 '사전 기획설'이 증폭되면서 의혹의 시선이 원내대표단에 쏠리자, 김 원내대표측에선 박 대표의 '암묵적 승인'을 주장하며 공을 박 대표에게 떠넘기는 듯한 인상을 줬다. 김 대표의 한 측근은 "기획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박 대표가 당일 그 같은 발언을 제지하지 않았다. 사실상 방조한 것 아니냐"라고 주장했다.

반면에 박 대표 측은 '5분발언 묵인' 보도가 나가자 "웬만해선 박 대표가 언론보도에는 말을 하지는 않는 편인데, 박 대표가 '묵인 내지는 기획했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말했다"고 상당히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박 대표측은 "5분 발언을 하는 의원들은 원내대표단과 논의하는 것으로 안다"며 책임을 다시 김 원내대표 쪽으로 넘겼다.

"박 대표가 너무 강경해"

당 안팎에선 양측의 사이가 벌어진 이유로 박 대표가 주도하는 '대여강경론'을 김 원내대표가 마뜩치 않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법사위 점거 농성 해제 여부, 임시국회 등원 여부 등을 놓고 격론을 벌이던 17일 한나라당 의원총회장. 소장파 의원들뿐 아니라 맹형규, 강재섭 등 중진 의원들조차 '등원'을 주장했지만, "보안법 폐지를 막을 용기와 배짱을 가져야 한다"라는 박 대표의 강경한 태도앞에 결국 무릎을 꿇어야 했다는 후문이다. 의총 도중에 만난 한 의원도 분위기가 어떠냐는 질문에 "박 대표가 너무 강경해"라면서 혀를 내둘렀다.

원내대표단 관계자는 "박 대표가 왜 이렇게 강경하게 나가는지 모르겠다"라며 "대여협상력도 떨어지게 되고 보수-강경파 의원들이 당에서 목소리를 높이게 되는 것도 당 입장에선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김 원내대표도 이에 앞선 14일 국회 바른정치실천연구회가 주최한 한 토론회 인사말에서 "한나라당 내에서 민주화와 개혁의 길을 가겠다는 의원들이 강경보수로 내몰리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함께 참석한 천정배 원내대표를 향해 여권의 4대법안 밀어붙이기를 비판한 의미일 수도 있지만, 한나라당내 '개혁파'로 분류돼 온 자신이 최근 당 우경화를 이끄는 듯이 비쳐진 데 대한 불만감도 역력했다.

요컨대 김 원내대표측의 불만은 영남 보수파의 덫에 걸린 박 대표가 당의 우경화를 주도하면서 김 원내대표까지 덩달아 욕을 먹고 있다는 것이다.

박대표 우경화가 갈등 원인

양측의 갈등이 최근에 도드라진 게 사실이더라도, 그동안 지적돼온 박-김 앙금설의 내용도 이같은 줄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김 원내대표가 지난 5월 원내대표에 당선됐을 때, 그의 '개혁' 이미지에 거는 당내 기대는 적지 않았다. 박 대표도 당시까지만해도 소장파와의 '밀월관계'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영남권 보수중진과 거리를 뒀다. 이에 따라 소장파 그룹의 지지를 바탕으로 박근혜-김덕룡 투톱 체제는 '찰떡궁합'으로 비쳐진 측면이 많았다.

그러나 박-김 밀월은 지난 8월 박 대표가 '국가정체성 논쟁'을 제기하며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이는 박 대표에 대해 다소 소원한 관계를 유지해 왔던 영남권 중진과 보수층을 결속시킨 효과를 가져왔다. 소장파와 수도권 의원 중심의 정국 대응에 불만을 품어온 영남권 보수 중진들이 박 대표의 국가정체성 논쟁 제기에 적잖은 호응을 보냈다.

이후 여권이 불을 지핀 국가보안법 등 '4대입법' 정국을 맞아 박 대표의 우경화는 가속화됐고, 소장파인 원희룡 의원은 이를 두고 "개혁과 변화의 약속은 모두 퇴색하고 그 자리에 색깔론과 대여 대결론이 차지하고 있다"고 혀를 차기도 했다.이런 흐름이 '이철우 사건'에까지 이어졌고, 결국 한나라당에 엄청난 '역풍'으로 귀결되면서 김 원내대표측의 불만이 참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더욱이 영남권 보수파 사이에선 내년 5월께 있을 차기 원내대표 경선과 사무총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물밑 움직임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점도 김 원내대표로선 곱게 볼 수 없는 대목이다. 벌써부터 영남권의 모 의원이 원내대표 경선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이같은 여러 상황이 복잡하게 얽혀 박 대표와 영남권 보수중진들이 주도하는 당 우경화가 계속될 경우, 향후 한나라당 지도부의 리더십 균열은 심각한 내홍으로까지 비화될 가능성이 없지않다는 게 한나라당의 우려다. 물론 최근 '색깔 역풍'을 맞은 박 대표는 기존의 우경화 노선에 멈칫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무게는 아직까지 우경화 쪽에 두고 있다는 게 지배적 관측이다.

이와 관련, 당의 한 관계자는 "해결의 열쇠는 박 대표가 합리적 보수라는 제자리로 돌아오느냐 아니냐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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