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처단하자" 한마디에 '고문死'한 장이기 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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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처단하자" 한마디에 '고문死'한 장이기 열사
  • 박명원 기자
  • 승인 2019.03.18 1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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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대 경영학과 74학번, 보안사서 구타와 고문당해
청주대 민주동문회, 장이기 열사 33주기 추도제 열어
故장이기 열사의 시신이 안장된 이천 민주화운동 기념공원 묘역.

[충북인뉴스 박명원 기자] 예비군 훈련장에서 전두환 정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고문을 받아 숨진 故장이기 열사 33주기 추도제가 지난 주말(16일) 열사의 시신이 안장된 경기도 이천 민주화운동 기념공원 묘역에서 열렸다.

청주대학교 경영학과 74학번인 故장이기 열사를 기리기 위해 마련된 이날 추도제에는 청주대학교 민주동문회는 물론 교수평의회와 직원노동조합도 함께해 그 의미를 더했다.

故장이기 열사는 1986년 3월5일, 안양 박달교장 예비군 훈련장에서 전두환 정권을 극찬하는 정신교육에 대해 분노를 참지 못했고 교육에 참여하던 예비군들을 향해 "정권탈취야욕에 불타 광주시민 수천 명을 학살한 전두환을 처단하자"고 외쳤다.

많은 참가자들이 함성을 지르며 함께 했고 열사는 즉시 군에 체포돼 군 수사기관(수도방위사령부 보안사)으로 끌려가 가혹한 고문을 당했다.

결국 조사관들의 매질에 극심한 고통을 느끼던 열사는 1986년 3월 16일 끝내 숨졌다. 열사의 시신은 죽은 지 하루 만에 부검도 없이 화장되기도 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故장이기 열사 유족들.


부검 없이 하루아침에 화장된 장이기 열사

故장이기 열사의 형수 안경화씨는 "예비군 훈련이 있었던 당일 오후에 전화가 걸려왔다. 시아버님이 '애미야 정보부에서 사람들이 왔는데 이기가 헌병대에 끌려갔다고 한다'고 말했다"며 "이후 백방으로 수소문 했지만 어디로 끌려갔는지도 몰랐고 면회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늦은 저녁, 경찰서 옆 병원으로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안씨는 "병원에 도착해보니 삼촌(장이기 열사)이 너무 많이 맞아 머리가 피에 엉켜 떡이 돼있었다. 엉망이 되도록 두들겨 맞았다"며 "당시 삼촌은 '재우지도 않고 하루 종일 맞았다'며 고통을 호소했다"고 당시상황을 전했다.

결국 장 열사는 가족들이 도착한 뒤 몇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안씨는 "삼촌이 세상을 떠나고 장례문제에 관해 얘기하는데 안기부가 예비군 훈련장부터 시작된 관련 내용에 대해 일체 함구할 것과 삼촌이 급사한 것으로 하라고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장 열사의 시신은 한밤 중 화장된 채 한강에 뿌려졌다.

故장이기 열사는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이후인 2001년 5월29일에야 '민주화운동유공자'로 인정을 받았고, 이천민주화운동 기념공안에 안장될 수 있었다.
 

추도사를 읽고 있는 청주대학교 민주동문회 원종문 회장.


청주대 민주동문회 "선배님 뜻 이어 가겠다"

2017년부터 3년째 열사의 추도제를 열고 있는 청주대학교 민주동문회 원종문 회장은 "선배님은 전두환 정권을 반대해 예비군교육장을 박차고 일어나 항거하다, 가혹한 폭행과 고문에 의해 생의 마지막 숨결을 거두셨다"며 "그때, 차마 그대로는 눈 감을 수 없었을 선배님의 분노를 기억하고자 우리는 오늘 또 이 자리에 모였다"고 말했다.

이어 "상식과 정의가 살아 있고, 서로가 서로를 억압하지 않고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하나 된 나라가 우리가 희망하는 조국이다"라며 "선배님처럼, 용기와 실천으로, 끝나지 않은 이 땅의 민주주의와 통일 조국의 미래를 함께 이루어내고자 한다"고 다짐했다.
 

청주대학교 경영학과 74학번인 故장이기 열사를 기리기 위해 마련된 이날 추도제에는 청주대학교 민주동문회는 물론 교수평의회와 직원노동조합도 함께해 그 의미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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