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명하는 것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벗이 된다. 이제 나는 너희를 종이라 부르지 않고 벗이라 부르겠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모두 다 알려 주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내세운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세상에 나가 언제까지나 썩지 않을 열매를 맺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실 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나의 계명이다. (요한 15, 12-17)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는 당위적當爲的 논리를 우리는 합리合理(Rationality)라고 한다. 합리주의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철학의 근간을 이룬다고 할 수 있겠다. 논리적 근간을 둔 합리를 뛰어넘는, 도무지 피조물인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을 섭리攝理(Providence)라고 한다. 맹목적인 세계관에 대하여 일정한 하느님의 자유로운 의지를 전제한 세계관이라 할 수 있겠다.
합리가 삶의 철학 영역이라면 섭리는 종교적 신학의 영역이다. 섭리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뛰어넘는, 초월적 그 무엇의 이치이다. 우리는 자연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위대한 현상을 두고 기적이라고 하는데 그 기적 또한 섭리의 일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논리로는 도저히 설명되기 힘든, 그러면서도 우리 삶에서 나타나는 부분들을 한 번쯤 경험해 본 기억이 있을 게다. 그 경험은 경외심敬畏心을 동반한다.
“사랑의연수원 개원식 날 폭우 때문에 건물 안에서 미사를 올렸지요. 그때까지만 해도 오 신부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어요. 그런데 저는 오 신부님을 통해 묘한 경험을 하게 됐어요. 저는 밖에서 일을 거들고 있었는데 낮 12시가 되었을 무렵에 오 신부님께서 말씀 하시는 거예요. ‘지금 예언대로 성모님의 은은한 은총이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고 무심결에 산 중턱에 있는 성모상을 쳐다보는데 산 밑으로부터 두 가닥의 안개 기둥이 성모상을 향해 올라가더니 성모상에서 하나로 합쳐지는 광경이 펼쳐지더군요. 그러고나니까 오 신부님께서 ‘이제 끝났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한 번 생각을 해보세요. 건물 안에서 어떻게 산 중턱에 있는 성모상에 벌어지는 이적異蹟을 알 수 있겠어요? 제 눈으로 똑똑히 목도하면서도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더군요. 그날밤 오 신부님께서 번데기를 사오셨어요. 그리고 그동안 고생했으니 먹으라 하시더군요. 오 신부님 말씀이, ‘내가 전부터 예언했는데, 이전부터 성모님의 은은한 은총이 있었던 게야’ 하시더군요. 제 눈으로 똑똑히 봤으면서도 믿기지가 않았어요. 자리도 불편하고 해서 번데기 두 알 먹고는 밖으로 나왔죠. 사제가 어떤 주술적인 힘에 의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구요. 밖으로 나왔는데 머리가 근질근질하고 얼굴이 후끈후끈 달아오르고 무언가 이상해요. 그런데 한 수녀님이 ‘아니, 교수님 얼굴이 왜 그래요?’ 하시는 거예요. 거울을 보았더니 얼굴에 온통 두드러기가 나서 흉칙한 모습이지 뭡니까. 그뿐만 아니라 상반신 전체에 온통 두드러기 투성이에요. 다음 날 강의가 있는데, 참 난감하더군요.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무얼 먹었느냐 묻길래 번데기 두 알 밖에 먹은 게 없다고 하니까 누구와 먹었느냐 하시더군요. 그 자리에서 같이 번데기를 먹은 사람들의 상태를 확인해보니까 그분들은 모두 멀쩡하신 거예요. 다음날 강의를 결국 하지 못하고 오후에 연구소에 가서 교수님들에게 그 말씀을 드렸더니 소장님께서, ‘하하하, 신 교수께서 오 신부님 얘기에 토나 달고 반발하고 의심을 하니까 벌 받은 거요. 앞으론 반항하지 마시오’하시며 웃으시더군요.”
신 교수는 이후로도 오 신부와 결부된 이상한 힘, 어찌보면 오 신부의 영적인 신비한 능력이라 할 수 있는 심상찮은 일들을 많이 보았다고 한다.
“저는 교수입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 제 직업의 밑바탕이지요. 그런데 오 신부님으로부터 나오는 신비한 능력을 자꾸 보다보니까 너무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지더군요. 또 한 번은 미생물학 전공교수와 꽃동네에 온 적이 있는데, 웬 일가족이 할머니 한 분을 업고 오시더군요. 미생물학 교수님이 그 할머니를 보시더니 대뜸, ‘저런 사람을 왜 데려오지?’ 하시는 거예요. 말기 암환자의 냄새가 난다는 거예요. 그래 우리는 종부성사 때문에 모시고 왔는가보다 생각했죠. 일가족이 오 신부님을 찾았어요. 오 신부님이 할머니를 보시더니, ‘할머니 소원이 무엇입니까?’ 물으니까, 할머니께서 ‘전 살고 싶습니다’ 하시더군요. 오 신부께서 저희들을 보시면서 그러면 우리 모두 같이 기도하자시며 친히 할머니께 안수기도를 해주시더군요. 그리고 오 신부님께서 나가셨는데 그 시체 같았던 할머니께서 벌떡 일어나 뛰어가며 오 신부님을 찾는 거예요.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서 말이죠. 미생물학과 교수님이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하면서 로비만 뱅뱅 도시고…… 저는 저대로 어안이벙벙하고. 믿음이 강하신 분은 저런 기적도 행하시는가 보다, 그런 느낌을 받았지요.”
신 교수는 꽃동네의 인도로 신앙적 은총을 입었다고 늘 말한다. 그런데 자신은 한 게 아무 것도 없다고 한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꽃동네가족들을 위해 사랑의연수원 잔디밭에 그 큰 규모의 조각공원을 만들고도 그는 늘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는가 보다.
하루는 희망의집 가족이 신 교수에게 본명이 무어냐고 물어왔다. 요셉이라고 하자 그 가족은 ‘제가 요셉 형제님을 위해 기도해 드릴 게요’ 라고 했다. 신 교수는 그런 가족의 모습을 보고, 이것 무언가 거꾸로 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내가 주어야 될 무엇인가를 거꾸로 그들로부터 받는다는 괜한 미안함이었다.
오 신부는 늘 강론을 통해 말했다.
‘거지는 달랄 줄만 알지 주는 것을 모른다.’
신 교수는 그 거지가 바로 자신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봉사라는 말도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에게는 아직 남아있는 꿈이 하나 있다. 가평꽃동네에 연수원이 생기면 그 곳에도 조각공원을 만드는 것이 그것이다. 꽃동네가족들에게 예술을 이해하게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조형물을 보고 그냥 가슴에 새겨두는 느낌표 하나만 있어도 족하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처음 꽃동네와 인연을 맺고 자주 꽃동네를 찾았을 때 아내 김승혜(레아·45) 씨의 오해도 있었다. 무엇 숨겨둔 게 있어 그리 자주 찾느냐는 의심도 있었을 게다. 그러던 것이 아내를 데리고 꽃동네를 찾고부터는 오히려 그녀가 더욱 꽃동네에 대해 열정적인 애정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런 아내의 열정이 마산에서 꽃동네까지 대여섯 시간이 넘는 먼 길을 한달음에 달려오게 만드는가 싶기도 하다.
“꽃동네를 알게 되면서 저는 새로운 신앙의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 있는 자리에는 무엇이든 이루어집니다. 바로 꽃동네가 그 증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꽃동네에 조각공원을 만든 교수가 아니라 꽃동네로부터 사랑을 배운 키 작은 학생에 불과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