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공공기관 장애인차별과 갑질 시정해라"
소비자원, "차별? 오히려 배려했다" 맞불 기자회견

[충북인뉴스 계희수 기자] 2011년 장애인의무고용제로 한국소비자원에 입사한 김 모 씨. 김 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얼굴과 팔, 손 등에 화상을 입어 지체상지기능 1급의 장애인이 됐다. 그는 직업을 갖기 위해 웹디자인을 공부했다. 손가락 근육이 크게 손상돼 문서작업은 힘들지만, 웹디자인은 마우스 활용이 주인데다 전문성을 요하는 분야라 취업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포토샵, 컴퓨터 그래픽스 운용기능사 등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고 사기업에서 광고 디자인 업무를 5~6년 간 하다가 소비자원에 입사할 수 있었다.

소비자원에 장애인의무고용제로 입사한 김 씨.

이런 자격과 경력은 업무 배정에도 반영됐다. 김씨는 홍보팀에 배치돼 그간 해온 디자인 업무를 맡아 2년 간 기간제 직원으로 일했다. 이후 상시지속업무를 인정받아 웹디자인직무(정보관리직)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전환 과정에서 그간의 사회 경력을 인정받지 못한 것이 부당하다고 느꼈지만,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그런데 2015년 김씨와 같은 무기계약직으로 입사한 다른 부서 디자이너가 사회경력을 인정받았고, 경력이 호봉에 반영됐다. 김 씨도 형평성을 고려해 사회 경력을 반영해 줄 것을 인사팀에 요구했다. 하지만 인사팀은 ‘장애인 의무고용으로 입사를 했고, 저임금이었기 때문에 임금조정은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주장하자 “현재 임금을 그대로 받고 디자인 일을 하던가 아니면 잡일을 해라”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동일 임금’ 요구에 부당 전보와 비웃음만

김 씨의 떠돌이 생활이 시작된 건 이때부터였다. 2016년 1월 김 씨는 갑자기 상담실(행정지원직 기타)로 전보됐다. 본인의 의사 없이 결정됐던 건 물론, 사전에 장애 정도와 업무 적합성, 전문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이후 디자인 직무에 빈자리가 날 때마다 본래 업무로 복귀 요청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요청할 때마다 전보 조치는 계속됐다. 2017년엔 인사팀으로, 2019년엔 위해정보팀으로 부서가 바뀌었다.

부서를 전전하면서 김씨의 자존감은 낮아졌다. 인사팀에서는 반 년 가량 뚜렷한 업무가 없었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 가끔 시키는 지출결의 업무를 처리했다. 위해정보팀에서는 온라인 상 위해정보를 모니터링하고 데이터를 모으는 업무가 배정됐다. 개인이 소화하는 업무량이 눈에 보이는 일이었다. 부지런히 일해도 동료들의 업무량을 쫓아가지 못했다. 손 근육과 신경에 부담이 가해져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다. 김씨가 달성하지 못한 양 만큼 동료들의 업무가 가중됐다. ‘나는 쓸모없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매일 김 씨를 괴롭혔다. 디자인 업무로 복귀하거나 장애에 적합한 업무를 찾아 전보해 달라고 요청하니 "상담실 일하기 싫어서 손 아프다고 엄살 부리는 거야. 머리 잘 쓰네"라는 말을 들었다.

사람들의 따돌림도 갈수록 심해졌다. 부서 이동을 요구할 때마다 "아무도 받아주기 싫어한다. 팀장들이 00씨 오는 걸 싫어한다"라는 말을 대놓고 들어야 했다. 조롱 섞인 말들과 커피 심부름, 파쇄 등 잡무 지시는 예사였다. 쉬는 날 오전 6시 40분 경 문자와 전화로 일을 시켜 해 놓았더니 이미 다른 부서에서 처리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된 적도 있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경쟁이 ‘공정채용’?

충북여성연대,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12일 오전 충북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충북여성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12일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 의무고용제도로 한국소비자원에 입사한 무기계약직 직원 김 씨에 대한 보복성 부당 전보와 직장 내 갑질·따돌림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무기계약직으로 입사한 다른 부서 디자이너는 사회경력을 인정받았지만 김 씨는 이를 인정받지 못해 이의를 제기하자 오히려 3차례에 걸쳐 보복성 부당 인사 조처를 당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송상호 다사리 학교 대표는 "소비자원의 행태는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에 의한 장애인 의무고용제도 위반이며 명백한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라면서 "공공기관에서 장애인을 위한 제도를 악용했다는 점에서 심각성과 피해가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단체들은 장애인 의무고용제 지도 감독·처벌 강화, 부당전보 노동자 업무 원상 복귀, 직장 내 갑질과 따돌림 책임자 강력 처벌 등을 요구했다.

소비자원은 현재 김 씨가 요구하는 웹디자인 직무로의 전환은 규정상 수용이 어렵고 공정채용의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웹디자인 직무는 채용과정이 까다롭고 호봉 테이블이 일반 행정직보다 높다. 따라서 김 씨가 보수 수준과 체계가 다른 ‘웹디자인직무’에 속해 일하기 위해서는 관련 규정에 따라 경쟁시험을 통해 해당 직무로 채용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김 씨는 웹디자인 경력과 자격증 취득을 인정받아 입사했다. 처음부터 전문성과 장애 특성이 고려돼 홍보팀에 배정됐고 줄곧 웹디자이너 업무만 해왔다. 전보 조치 이전 소비자원이 작성한 자체 문서에도 김씨는 ‘행정 지원’이 아닌 ‘웹디자인(정보)’으로 분류가 돼 있다.

소비자원 문서에 김씨 직무가 ‘웹디자인(정보)’으로 기재돼 있다.

공공기관 장애인 의무고용제는 장애인들이 겪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보정하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신체기능상 비장애인과 경쟁이 불가능한 장애인들에게 별도로 채용의 문을 열어 고용 기회를 보장해주는 것이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비장애인과 동일한 임금을 받지 못하고, 동일한 임금을 받으려면 비장애인과 경쟁해 입사해야 한다는 소비자원의 주장은 장애인고용제도를 무색하게 만든다는 게 인권단체들의 의견이다.

"장애인 차별 없었다" 소비자원 반박 기자회견

12일 시민단체들의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같은 장소에서 소비자원이 반박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은 즉각 해명 보도자료를 내고 기자회견을 열어 "입사 당시 디자인 보조 업무를 맡았던 김 씨의 다른 부서 전보는 본인의 희망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며 "부당 인사 조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이어서 "김 씨와 2015년 입사한 디자이너의 호봉 체계가 달랐던 건 그 해 근로자 처우개선 일환으로 연봉제를 호봉제로 변경하며 입사 전 경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김 씨 호봉이 낮은 것은 임금체계가 개편되면서 발생한 신규 직원과의 의도치 않은 차이라는 것이다.

부서 전보 과정에서도 김 씨의 장애 정도와 특성을 감안해 업무량을 줄이는 등의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김 씨의 업무 복귀에 대해서는 "웹디자인 직무가 2017년 별도로 신설돼 규정상 따로 채용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인사지원팀장 등 상사에게 갑질을 당했다는 주장도 "함께 근무했지만 그런 일은 보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또 김 씨의 업무 부담을 덜기 위해 현 근무부서에 근로자 추가 채용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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